피터의 편지

“축하합니다. 보약으로 알고 드세요”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1-03-15 16:41
조회
240

한국 화이자에서 생산한 노바스크 5밀리그램이라는 혈압 강하제는 삼 년째, 한국 아스텔라스 제약에서 생산한 베타미가 50밀리그램은 일 년 반째 먹고 있습니다. 수년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약을 복용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혈압 체크를 하면 늘 정상치를 밑돌았고 몸이 약해도 대소변 가리는 데는 천성적으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주 가는 내과 병원 의사 말씀대로라면 내년쯤에는 콜레스테롤 조절제나 간 기능 향상제, 신장 치료제를 첨가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서 잘 못 먹었기 때문일까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복용 약 수가 늘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대한민국 노인 상당수가 먹고 있다는 노바스크는 혈액 순환계 카테고리의 혈압 강하제입니다. 모양은 흰색 팔각형, 성분은 암로디핀베실산염이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 약의 효능을 살펴보니, 고혈압과 관상 동맥의 고정 폐쇄가 원인인 안정형 협심증 또는 관상 혈관계의 혈관 경련과 혈관 수축으로 인한 이형 협심증에 의해 나타나는 심근성 허혈증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와 있더군요. 처방전 받으러 가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비좁은 병원 안이 늘 환자로 가득해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땐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기다려 겨우 일 분 면담하고 처방전 하나 받아 와야 합니다. 처음에는 한 달 치밖에 처방전을 안 주던 의사에게 사정을 하니까 두 달 치를 끊어 주어 담뱃갑처럼 생긴 노바스크를 전리품처럼 쌓아 놓고 큐티QT 하듯 한 알씩 빼어 먹고 있습니다. 이미 경험한 분은 아시겠지만, 일정 시간 하루도 빠짐없이 약 먹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먹었나 안 먹었나 헷갈릴 때가 많아 아예 10개 단위로 포장된 알루미늄 뒷면에 매직펜으로 일일이 복용 날짜를 써 놓았습니다. 찢겨진 달력처럼 약 포장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구멍이 뚫려 나가고 투두둑 알약이 빠진 사이로 너덜너덜해진 날짜는 이 세상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다봅니다. 하나하나 약이 줄어들수록 이 세상에 머물 날도 줄어드는 거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한솔 내과에서 처방전을 받아 단골인 그랜드 약국에 갔을 때 동네에서 가장 친절해 보이는 약사 부부는 “축하합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먹어야 하니까 보약으로 알고 드세요” 하며 웃었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런데 이 약을 먹으면서 이상하게 기운이 빠지고 불면증에 잠 못 이루는 날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연이겠지 했는데 인터넷에 들어가니 여러 부작용 사례가 적혀 있더군요. “안녕하세요. 누가 저에게 대답 좀 해 주세요. 저는 지난 수요일부터 이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그다음 날인 목요일 아침에 조금 어지러웠지만 약빨 떨어져서 그런가 하고 얼른 노바스크를 먹었습니다. 먹은지 2시간쯤 지나자 몸이 무거워지면서 두통과 흉통이 왔습니다. 단순 몸살감기인 줄 알고 금요일에 한 알 또 먹었는데 조금 더 심해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몸살 약과 함께 복용한 뒤 한잠 푹 자고 일어났는데 증상이 더 심해지고 홍조와 복통까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 약을 먹은 지 일 년 정도 되었습니다. 몸무게가 10킬로 이상 빠지고 기립성 저혈압이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세상에 완벽한 약은 없다지만 만약 저게 사실이라면 복용을 중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의심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약에 대해 알려진 부작용은 망막하 출혈, 심계 항진, 빈맥, 혈압 상승, 손발 마비, 의식 장애, 폐렴, 과량 투여 시 전신성 저혈압,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 등이었는데 우리나라 식약청에서는 사망과 폐렴 발생은 인과 관계가 없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저혈압 발생은 이미 허가 사항에 반영, 혈압 상승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찰 중이라는군요. 오랫동안 저혈압으로 살아온 내가 갑자기 치솟은 고혈압 환자가 되어 혈압 강하제를 죽을 때까지 복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날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혈압이 높아졌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로나바이러스 창궐 전에는 부산 지부에 일주일마다 내려갔었지요. 부산 지부 지체들이 얻어 준 아파트가 광안리 해변 근처에 있습니다. 하루는 사역 끝내고 아파트에 돌아와 혼자 과일을 깎다가 아차 하는 순간 왼쪽 엄지손가락을 심하게 베고 말았지요. 너무 당황해 피 철철 나는 손가락 누른 채 몇 사람에게 전화했더니 한 자매가 지체 없이 달려와 동창생이 원장인 소아과 병원으로 바람같이 데려다주었습니다. 처음 보는 여의사는 고맙게도 파상풍균에 감염되면 큰일 난다고 퇴근도 미룬 채 한 시간 넘게 소독을 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는 ‘혈압을 재어 보니 평균치를 훨씬 넘어 그냥 두면 큰일 난다’며 경고에 경고를 거듭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백 오십에 구십이라던가,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높았습니다. 정말 놀랐죠. 평생 저혈압 상태로 살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자주 가는 내과를 찾았죠. 담당 의사 말씀은 똑같았습니다. 놀라는 얼굴로 속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처방해 준 게 화이자의 전문 의약품 노바스크 5밀리그램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약 볼 때마다 캐나다 동부에 있는 노바스코샤가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빨강머리 앤의 고향으로, 키 크고 잘생긴 영민이가 아버지와 여름휴가 갔었다고 자랑한 그곳. 중학생 때 토론토로 이민 간 영민이는 잊지 못할 내 제자였고 그 아버지 윤진호 씨는 평생 친구로 삼을 만한 이름 대라면 제일 먼저 떠오를 사람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슈나이더 베이컨과 캐나다산 호밀빵으로 멋진 식사를 차려 주던 윤진호 씨와 훤칠하게 잘생긴 아들 윤영민.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보고 싶기만 한 그들 부자가 놀러 갔던 멋진 휴양지를 떠올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이 약을 먹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혈압 때문이었네요. 어느 날 갑자기 퍽하고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지내다가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6.25 때 목숨 걸고 피난 내려와 평생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사인이 고혈압이었다는 얘기를 듣자 담당 의사는 가족력이 있으니 더 철저히 약을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더군요.

문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복용하는 혈압 약 때문인지 전에 없던 피곤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걸 종종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온몸에 힘이 쑤욱 빠져나가며 눈가가 나른해지고 영혼육 전체가 땅 밑으로 가라앉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뿐 아니라 전에 없던 야뇨, 빈뇨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라는 얘기를 하자 의사 선생님이 과민성 방광 증상이 생겼다며 하나 더 처방해 준 게 베타미가 서방정 50밀리그램입니다. 모든 약이 그렇지만 이 약도 안전성이 보장되진 않은가 봅니다. 주의 사항을 보니 임산부는 물론 중증의 고혈압 환자나 심각한 심장 질환자에게 투여하지 말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뿐 아니라 선천성 또는 후천성 QT 연장 환자에게는 신중히 투여해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여기 QT가 Quiet Time이 아닌 건 알지만 매일 하나님 말씀으로 QT하는 입장에서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문제는 약의 임상 실험 중 이중 눈가림과 위약 대조 실험에서 이상 반응이 여럿 발생했는데 빈맥과 구강 건조, 요로 감염, 오심, 변비, 설사, 요저류(오줌이 모두 배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증상), 혈관 부종, 불면증, 두통 등이었다고 합니다.

맙소사! 올해 들어 부쩍 그런 증상이 늘어날 때마다 나이 들어 그런가 했는데 약에 의한 부작용일 수 있다니 보약은커녕 기분이 안 좋더군요. 그래요. 모든 게 시간 탓이겠지요. 어느새 세월은 살 같이 흘러 신의 경지(어르신)에 들어갈 만큼 나이를 먹자 안구를 비롯한 신체 대부분의 노화가 눈에 띌 만큼 빨라지긴 했지만 이렇듯 혈압 약과 과민성 방광 약으로 부작용을 겪어야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어디 있으랴마는 무엇인가 내 몸의 한 부분을 서걱서걱 갉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황야의 무법자 주제가가 퍼져 오르더군요. 더구나 올해 새로 시작한 복음변증학교 피피티 제작과 매일 온택트로 이어지는 지부 사역으로 인해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하루 열 시간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급격한 체력 저하는 스스로 생각해도 심각할 지경입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했는데 나는 백이십은커녕 칠십도 안 되어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5절에,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잠깐 자는 사이에 인생이 다 가 버렸습니다. 숱이 너무 많아 곱슬 같던 머리는 조선 파뿌리처럼 거의 다 빠지고 파릇하던 피부에는 거뭇한 버섯까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피아니스트처럼 희고 여리던 손가락은 물에 불린 것처럼 굵어져 있고, 반항인 양 츄욱 늘어지는 뱃살에 툭하면 밥알 흘리기, 미끄러지기, 넘어지기, 가물가물 기억 안 나기가 무한도전처럼 펼쳐집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찌나 신속히 날아가는지 눈이 돌아갈 정도입니다. 복음 아니었다면 수고와 슬픔만 남았을 겁니다. 주의 복음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어 주지 않았다면시119:105 나는 이미 무덤에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욥기 5장 26절,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라는 말에 비관할 뻔 했는데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46:4라는 주님의 약속이 어두운 가슴에 불을 밝혀 줍니다. 이게 바로 반전이라는 겁니다. 극의 흐름이 어느 순간 역전되어 형세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 소설이나 영화 작법에서 자주 나타나는 반전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중요한 기제인데 택함 받은 성도에게는 영적인 의미의 반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모든 반전은 극적인 데가 있어,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나도 절대 절망하지 않을 것.

피터의 밥집 이야기를 해 볼까요? 셰프의 오마카셰가 인기 있는 이유가 뭐냐구요? 살아오면서 요즘만큼 복음으로 충만한 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신비할 만큼 복음 정리가 잘 되고 있습니다. 구속사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 개념이 세워지고 지성소 예배 중심으로 회복의 은혜가 축복의 샤워처럼 쏟아집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바탕으로 변증 강의 수백 개가 일렬로 늘어서는 경험은 실로 경이롭기만 합니다. 묵시의 세계 천직 찾기는 또 어떻구요. 욥기에 보니까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12:12라고 하셨더군요. 와우, 주님이 늙은 자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19을 부어 주시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에베소서 1장 17절부터 19절까지를 낮은울타리 사역 목표로 삼은 게 예삿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성경은 죽음과 삶, 육과 영, 젊음과 늙음이 다 주의 장중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사람은 시편 49장 17절을 허투루 듣지 않을 겁니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17~20

무엇보다 오늘 나는 이사야 40장 6~8절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자기 편지에서 인용한 적이 있지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 복음은 육체, 풀, 꽃과 비교할 수 없이 귀하다는 베드로의 외침에 전적 동의합니다. 이런 복음으로 내게 오는 이들에게 매일 영혼의 양식을 먹일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어제도 형아와 예분을 비롯한 여러 지체들이 내가 전하는 복음 한 끼로 인해 인생이 풍성해졌다는 문자를 보내 주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형아는 내가 전하는 복음을 먹고 전쟁터 같았던 결혼 생활이 안정되고 묵시 속에 들어가 완성되어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으며 어린 자녀들까지 복음의 맛을 알아간다는 고백을 들을 때 나는 고혈압 환자라는 걸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계시가 없으면 묵시가 없고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도 깊이 공감합니다. 방자란 내 멋대로,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사는 태도를 말하지요. 묵시가 역사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방자의 극치를 달리고 있을 겁니다.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이렇게 복음이 내 입에서 술술 풀려나가고 체계가 잡히는 걸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초점, 관점, 지향점이 분명해지고 복음사역과 회복사역 문화사역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며 자충성이 역동성으로 바뀌는 걸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세 사역이 어우러지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던 복음 체계를 알아먹는 지체들이 늘어나는 건 정말 감동입니다. 이제야 양육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심장 문제든 방광 문제든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강물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이 나의 변변치 않은 몸을 갉아대는 바람에 혈압은 제멋대로 올라가고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도 주께서 높여 주시는 영적 지각력으로 작정하심과 예정하심, 섭리하심과 경륜하심을 실감하게 하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지체들과 몇 년째 요리해 먹는 아가서. 아가서가 이렇게 맛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천국에 가서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돼지우리가 아닌 침실, 종이 아니라 신부, 여기가 아닌 저기, 순간이 아닌 영원,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극치, 어린 양 혼인 잔치를 기다리며 육체가 아닌 영으로 살라는 신랑의 음성을 그 옛날 갈릴리 사람들만큼이나 실감나게 듣다니 기적 아닙니까? 요즘 나는 복음변증학교와 피터의 밥집 운영하느라고 하루 스물네 시간이 부족합니다. 가끔 약으로 인한 부작용은 있어도 매일 먹는 혈압 강하제 덕분에 아버지처럼 쓰러지지 않고 맡겨 주신 사역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71:18

그렇습니다. 아무리 잘 가꾸어도 육체는 육체 아닙니까. 나 같은 인간 뭐 팔리게 가슴 떡 벌어지고 복부에 빨래판 있다고 자랑하는 일은 안 한다 칩시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지옥 갈 사람들이 이 땅에 벗어놓을 허물을 우상화하는 모습도 부러워하지 않겠다 칩시다. 주의 성전을 관리하듯 조금씩이라도 운동하려는 노력은 보여야겠지만 늙어가는 일로 은혜를 까먹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세월로 인한 노화 때문에 복음 먹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누가 좋아할까요. 어찌 보면 늙음은 선물이고 병듦은 축복인 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연합을 소망하기 때문 아닐까요.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71편 기자도 혈압 강하제를 먹었을까요? 젊어서 쓴 시가 아닐 텐데. 그러고 보니 노바스크를 소재로 이런 글을 쓰는 건 나밖에 없을 겁니다. 삼십삼 년째 편집인의 글을 쓰다 보니 혈압 약뿐 아니라 과민성 방광염까지 등장하는군요. 코로나나 암이 아닌 게 다행이지요. 아무튼 이번 달에는 나와 함께 늙어가는 모든 분들에게 힘내시라는 인사를 드리며 사랑의 편지를 마칩니다. 험한 세상에 부디 샬롬의 평화가 있기를….

 

<월간 낮은울타리 2021년 3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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