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1-02-05 15:26
조회
230

“내가 시카고 근처의 그 교회에 갔을 때는 핼러윈 시즌이었다. 핼러윈은 귀신 복장을 한 아이들이 초콜릿을 얻으려 동네를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밤새 귀신과 하나 됨을 축하하는 파티요 축제다. 교회에서는 뜰 위에 호박을 쌓아 놓고 파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사서 속을 파내 파이를 만들어 먹고 껍데기로는 유령 얼굴을 조각하여 그 안에 촛불을 켜 놓는 ‘잭 오 랜턴Jack o lantern’을 만들어 집을 장식한다. 귀신들의 축제 핼러윈을 교회에서 즐기는 모습이 나에게 낯설었지만 ‘하나님은 호박’이라는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더욱 놀라웠다. 호박을 팔아 불우 이웃을 돕는 것이니 호박이 사랑이고 호박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귀국한 국내의 유명한 필자가 일간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이 글의 배경은 미국이지만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모습이요 들을 수 있는 설교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웃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핼러윈이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위해 내 몸도 내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거지로 분장해 우리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런가요?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는 이유는 이백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소원 성취, 재화 획득, 목적 달성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란 점입니다. ‘구제나 봉사가 우선순위가 아니라’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인식하고 의존하여 그의 생명력으로 충만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기독교는 신이 만들었다는 걸 낮은울타리 독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일 겁니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 복을 비는 일반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신이 인간을 찾아와 ‘너와 내가 결혼했음’을 알려 줄 정도로 신인神人 간에 친밀감이 높다는 것도.
일반 종교는 선행을 중히 여기고 그에 따라 받을 상급이 다르다고 가르치지만 기독교는 아닙니다. 간혹 기독교인 안에서 긍휼, 자비, 사랑하는 마음이 나올 때도 그건 주님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영접할 때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날에 양과 염소 심판대 앞에 서 있는 기독교인에게 하나님이 “그때 물 한 잔 줘서 고맙다”라고 하실 때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요” 하는 건 작은 선행조차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종교가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기독교는 죽기 위해 삽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게 없습니다.
겨자씨 믿음이 대단한 것처럼 떠드는 사람이 있지만 실상은 ‘없음’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없는 믿음을 의미하지요. 다만 기독교인은 매일 묵시의 공격으로부터 폭로당하는 자일 뿐입니다.

묵시默示, Απōκάλυψις, apocalypsis, 아포칼립스라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을 말합니다. 그 계획을 택한 자에게 알려 주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성경은 묵시로 가득 차 있지요.
예를 들어, 오바댜서는 오바댜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묵시입니다.
오바댜 선지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오바댜서는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본문이지만 이 세상의 심판과 주님의 영원한 나라를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묵시 복음입니다. 묵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라고 우기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묵시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묵시의 세계는 영원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통일된 세계입니다. 땅의 일을 역사라고 하면 하늘의 일은 묵시입니다.
묵시는 계시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묵시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면 계시는 재림에서 완성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인간이 역사를 주관하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 묵시가 역사를 함몰시킨 채 진행해 가거나 결정할 뿐입니다.
땅의 일로 하늘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늘의 묵시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산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간 후 그 밑을 구름으로 가리우는 장면이 나오지요. 거기서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한 다음 이 땅 다스리는 법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모세가 올라가 있던 구름 위를 묵시의 세계라 한다면 구름 밑 세상을 역사라고 합니다.
구름 아래 역사는 구름 위에서 일어나는 묵시의 세계를 포착하지 못합니다. 구름 위의 모습은 창세전 언약이 맺어지는 상황과 거의 똑같습니다. 초자연적 묵시의 세계를 인식하도록 제한된 이성 가진 인간에게 주신 것이 계시의 말씀입니다.
묵시가 내려와 성도의 삶을 끌고 간다는 얘기 들어 보셨습니까? 그건 창세전 언약인 묵시의 세계에 의해 역사가 장악되어 간다, 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구름이 움직이면 이스라엘이 같이 움직였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 인간의 역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환영幻影입니다.
먼지이며 그림자입니다.
종내는 불 타 없어질 것입니다.
그저 묵시 속에 함몰되어 있을 뿐,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를 보지 못하고 계시를 읽어 내지 못하면 거듭난 신자라도 헛것에 취해 죽음 같은 삶을 살고 말겠지요.
누가복음의 탕자가 갔던 돼지우리 기억나십니까. ‘아, 이게 아니구나.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구나!’가 깨달아진 지점. 아버지에게 돌아가야 살 거라는 믿음이 발현된 지점. 자녀만이 아니라 어떤 부모는 성령으로 거듭났으면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돼지우리로 몰아내기도 합니다. 비극이 아닐 수 없지요.
이 땅의 역사가 묵시에 의해 움직여 가지 못한다면 종착지는 돼지우리가 될 수밖에 없으니 우린 그것을 묵시에게 공격당하는 역사, 라고 말할 수밖에요.
묵시는 역사 속으로 뚫고 들어와 하나님 백성을 폭로시킨 다음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줍니다.

묵시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과 구속사가 보여야 합니다.
묵시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나의 행위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예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먹고 예수에게 먹히고 예수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라면 묵시가 역사를 잡아먹는 것처럼 예수에게 먹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으니 딱한 일입니다.

묵시는 쉬지 않고 역사를 공격합니다.
역사 속에서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애쓴 사람들은 묵시 속에 들어가 하나님이 완료해 놓은 은혜의 세계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묵시는 역사를 공격해 자기애에 빠진 사람을 폭로시켜 놓아야 합니다.
묵시는 처음 자리.
없음으로 폭로당하는 자리.
하나님 절대 의존 상태.
그런데 주님의 구속 역사에 의해 구원받은 뒤, 주님과 연합되어 거룩한 신부로 살아가야 할 자가 폭로당함을 거부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창세전에 제물로 바쳐지도록 구별된 자가 거룩이 구별임을 모를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 끔찍한 일이 이 땅에서 신난 듯 벌어지다가 코로나로 잠시 주춤합니다.
묵시와 언약, 묵시와 역사, 묵시와 계시, 묵시와 카이로스의 관계를 모르면서 기독교인이라 자랑하는 이를 조심하십시오. 크로노스가 그저 흘러가는 시간, 인본주의 죽음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는 시간, 생명의 시간 아닙니까. 기독교인에게 시간 개념은 아주 중요합니다. 천국과 지옥, 창조와 종말도 시간 개념이니까요. 눈으로 본다고 다 똑같은 게 아니지요.
크로노스의 사람이 에이도ειδω 하고 살아간다면 카이로스의 사람은 호라오ōράω하고 살아갑니다.
크로노스의 사람이 그림자에 불과한 역사 속에서 신념을 강화시키는 삶을 산다면 카이로스의 사람은 묵시 속에서 하나님이 완료해 놓으신 영원의 세계를 끌어와 성화라는 옷으로 덮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한 번에 완료하신 세계가 묵시이고 인간이 이루어 놓은 게 역사입니다. 역사는 날마다 발전한다고 자랑하지만 묵시는 인간이 개입해 발전을 일으키거나 성공한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모든 걸 다 만들어 놓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인간의 도움이 필요했으면 첫날부터 인간을 만들어 놓고 동참시키셨겠지요.
하나님의 첫 창조는 완전한 세상의 모형이며 묵시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반복하신 것입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 같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연속해서 “보기 좋다”라고 하셨으니까요.
아직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여전하고 뭍과 물이 나뉘어 존재하는데도 하나님이 일부러 각 날의 끝에 보기 좋았다는 말을 적게 하신 건 “창조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내가 완료한다.”
그렇게 완료해 놓으신 묵시의 세계는 카이로스 시간, 즉 수평이 아니라 수직 형태가 됩니다. 한 번에 완료되어 영원한 현재만 있는 세계.
그 수직으로 쌓여 있는 묵시가 그림자를 드리워 쭉 펼쳐지는 걸 역사라고 하니까 역사는 묵시라는 씨앗이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펼쳐진 것, 재활용도 안 되는 포장지와 같은 것. 한심한 인간은 내용물을 보지 못하고 포장지만 애지중지합니다. 그러다가 허무한 듯 종말을 맞이합니다.
묵시를 펼치면 역사가 되고 역사를 돌돌 말아 축약하면 묵시가 되는 의미를 이제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묵시는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의 상징인 역사를 고발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리하여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 위에 덮이게 되는 하나님 은혜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간의 행위는 기각당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오롯이 서게 되는 묵시의 세계로 오늘 당신을 초대하고 싶은 건 종말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사람도 자칫 아파트 값 오르는 것에 마음 뺏기고 인공 지능, 빅 데이터에 눌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결혼은 똑같이 중요한데도 여론에 속아 넘어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려는 자식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묵시와 계시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묵시와 계시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야 합니다. 인식의 조건은 오직 하나, 주님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여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묵시의 세계는 물론, 그것을 풀어낸 계시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가서의 신부처럼 연합되지 못하면 거룩한 백성 됨, 하나님 나라 완성에 관심도 없고 역동성은 일어나지 않아 무척 괴로운 상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적혀 있지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여기 풍성함을 물질적이며 현세적인 것에 초점 맞추려는 사이비가 많으나, 진정한 풍성은 묵시가 계시로 인식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물론 자신의 부정적 성격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교체된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 나는 당신을 풍성한 하나님의 세계, 인간의 행위로 갈 수 없는 영원의 세계, 유한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한 세계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당신보다 당신 자녀를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어려서부터 묵시와 계시와 언약을 안다면 욕망에 성실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복음사역, 회복사역, 문화사역의 현장에 부모 자녀 함께 초대하고 싶습니다. 복음변증학교에만 오셔도 5 JESUS POWER로 충전되고 묵시와 역사를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골1:27
그렇습니다.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연합되지 않고 묵시를 이해하거나 묵시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건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 심리학은 물론이고 오체투지나 초월 명상 같은 거로는 어림이 없습니다. 그 묵시 안에 인간과 관련해서는 언약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묵시의 현장이라 할 교회 학교에서 봉사와 헌신을 강조하고 그로 인한 복 받음, 강대 앞에서 호박이 하나님이라는 엉뚱한 말이나 하고 계시에 눈 어두운 아이들에게 율법주의로 협박하는가 하면 달걀 팔아 이웃 돕는 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우기니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월간 낮은울타리 2021년 2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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