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틴즈흠스 안 하거나 모르거나 바보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5-01-06 10:05
조회
756

요즘 같은 세상에 교회에서 틴즈흠스 안 하는 교회는 정말 바보이거나 무지한 교회입니다.

 

적어도 다음세대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교회에서 틴즈흠스에 관심 없다면

구호만 외치는 교회이거나 알맹이가 빠진 사역을 열심히 하는 교회라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틴즈흠스의 핵심은 직면입니다.

직면은 선악과로 가지 않고 생명나무로 가는 거룩한 결단입니다.

직면은 지성소, 즉 임재의 장소에 들어가 자신의 문제를 다룰 때 하나님 형상으로의 회복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충만해짐을 경험하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직면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어 있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직면은 완벽한 의사를 만나는 것-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사38:16)

직면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직면은 지성소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28:2)

 

직면은 자신이 쌓은 방어벽 허물고 하나님의 다림줄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며(암7:7-8)

직면은 하나님의 선물-우리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고 상처 입은 간호사가 되게 하기 때문

직면은 기경-묵은 땅을 갈아 엎는 것

직면은 가장 아름다운 선택-가장 비극적인 선택은 도피나 폭발로 가는 것

직면은 자충성自充性이라는 죄에서 벗어나는 길

 

직면의 결과로 얻게 되는 생명력의 충만은 마음을 확정하게 하며(시57:7), 깊은 회복의 은혜 속에 주님과의 친밀감을 높이고 건강한 세계관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세계관 교육을 하는 교회가 직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그 중요한 세계관 교육이 자칫 인본주의나 사색思索으로 흘러버리고 말겠지요) 

다윗은 시편 57편에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외쳤죠. 그 확정함이 직면을 통해 우리 자녀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직면은 치유를 보장합니다. 그러나 흠스에서의 직면은 치유를 제1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흠스나 틴즈흠스 사역을 통해 우리가 받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충만해진 다음 뒤이어 주어지는 통찰력과 분별력. 그것으로 말미암아 건강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보다 사망을 더 두려워합니다. 생명의 결핍이 지속되는 상태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직면이 가져오는 결과는 하나님과 친밀감이 깊어지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넘치게 됩니다.

앞서 말한 대로 통찰력과 분별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회복된 간호사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될 뿐 아니라 타인의 삶도 그렇게 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직면사역의 필요성. 직면사역을 꼭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 

이미 충분히 검증된 데다가

회복을 경험해야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없이 교회 다니는 N세대가 얼마나 많고 은혜 없이 교회에 다니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면 놀랄 겁니다.

건강한 생명체가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직면사역이 꼭 반드시 필요합니다(여기 유일한 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이게 맞다면 당신은 얼마나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까?)

자신이 쌓은 벽돌이 무너져야 살기 때문입니다. 벽돌은 방어벽을 말합니다. 하나는 수동성의 방어벽이고 하나는 반항성의 방어벽입니다. 하나는 자살로 가게하는 방어벽이고 하나는 살인으로 가게 하는 방어벽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살아 계실 적에 일찍이 탄원기도에 대해 설교를 하셨지만

직면은 탄원기도뿐 아니라 벽 허물기 기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오늘날 반항심이 가득하고 절망감만이 가득해지는 시대에

부모나 교사나 직면을 모르고는 다음세대를 올바로 양육할 수 없습니다.

게임이나 채팅 등 중독 바이러스가 창궐하는데 훈계나 하며 갈 수는 없습니다.

중독의 세 주요 원인이 상처와 욕망과 대체물 아닌가요?

치유는 하나님의 생명을 전제로 할 때에만 복음적이 됩니다.

 

틴즈흠스는 다음세대가 올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임을 잊지 마십시오.

생명의 통로로 살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는데 왜 외면하십니까?

종교적 열심을 내게 하는 교육이나 행사 위주로는 다음세대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걸 이미 충분히 맛보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씨가 문제가 아니라 땅이 문제입니다.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회복이 경험되야 합니다.

기경을 통하지 않고는 회복이 경험되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직면이 회복을 보장한다면 더 이상 회피하거나 미룰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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