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생각해보면 부끄럽습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5-01-07 10:05
조회
662

생각해보면 회복사역에 대한 밑그림 없이 문화사역 하겠다고 덤벼들었던 지난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문화가 죽어간다.

문화가 썩었다.

문화를 다스리자.

문화에 세례 주자.

문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게 하자.

 

정말 많은 말들을 하고 다녔죠

지금 와서 그런 말들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안목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생명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앞으로 배달된 교계 신문을 읽는데 안양대학교 교수라는 분이 과거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그분은 기독교 문화활동 하기로 제법 이름난 분인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문화가 넘쳐나는 것에 대한 대안을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비기독교적인 콘텐츠를 무작정 비판하기보다 미디어의 정의로운 유통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면서

"근본적인 기독교 세계관은 왜곡된 음반시장의 구조가 바뀔 수 있도록 보다 건전하게 바뀌도록 노력하는 일"이라고 대답을 하셨더군요.

 

뿐만 아니라, 같은 지면에서 또 다른 문화선교단체 대표라는 분은 "비기독교적이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세상미디어는 금지하고 기독교 신앙에 도움이 되는 문화, 예수님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미디어에는 집중하는 미디어 회복운동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더군요. 이를 위해 미디어 금식과 미디어 가려 먹기 운동을 제안한다는 조언과 함께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는...

 

이 외에도, 특집을 꾸민 신문의 기자는 오늘날 우리 주변의 청소년들이 자극적인 대중문화에 깊이 매몰된 것은 '이를 대체할 만한 수준 높은 기독교 문화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더 이상 안 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함께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복음의 가치를 전할 수 있는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 아니냐며 끝을 맺더군요. 

 

그래요

문화가 문제죠

썩은 문화가 문제입니다.

썩은 문화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오염되어 가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문화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요?

앞으로 기독교인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세상의 문화가 좋은 문화로 바뀔까요?

 

특집기사 중 기자가 대안이라고 제시한 내용을 보면, 갈보리 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와 Jesus Rock을 만들어낸 최초의 CCM 아티스트들을 예로 들면서 백석대학교 최 모 교수의 말을 인용

"기독교 세계관을 교회학교 교육과 연계해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며 신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라는 문화명령을 주셨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의 문화 속에 새로운 기독교문화를 창출해 성경의 가르침에 적합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적실성이 있는 문화를 창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크리스천 청소년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을 형성하도록 양육하고 돌봐야 한다'는 말로 강조되면서 특집기사가 마무리되었는데 그 글을 읽으며 잠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여기 인용된 말들이 이십육년 전 내가 하던 말과 토씨 하나 안 틀리는지

낮은울타리 시작하고 이십육년 지났는데 문화사역 전문가나 교수라는 분들이 처음 내가 하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지...

 

그래요 

뭐든 해야지요

이대로 가만 있을 수는 없지요

세상이 죽어가는데

밥을 퍼주든가 꿈을 퍼주든가 문화를 퍼주든가 해야지요

 

그러나 잠시라도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을 가만히 묵상해본다면 위의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것도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칠 겁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자충성을 전제로 하고 깨달음과 선한 행위를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충성을 죄라고 정의합니다.

성경에 만들라는 말보다 견디라 인내하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이 물음 하나로 나를 극단주의 문화 배격자로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그동안 충분히 상처받았으니까요)

 

사도 바울이 정의한 대로라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내 안에 들어와 내 대신 살기 원하십니다.

그 분의 삶은 일부가 아니라 전체입니다. 개조가 아니라 교환입니다.

주님의 일차적 관심은 문화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생명력입니다.

구약의 내용을 인용하면 우리를 백성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명력으로 충만해지기까지 썩은 문화 나쁜 문화도 이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좋은 문화를 만들라고 촉구하는 게 아니라

왜 좋은 문화를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문화사역은 회복사역 없이 혼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회복에 대한 전제 없이 문화창조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자충성의 죄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세계관보다 우선되는 것은 생명력입니다.

생명력 없는데 세계관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실은 문화창조보다 시급한 게 문화소비 아닙니까?

문화소비는 생명력에 이은 통찰과 분별에서 올바르게 시작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통찰과 분별의 핵심 용어가 <마음>이라면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믿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게 맞습니다.

 

문제는 문화가 아니라 사람이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행위로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었던 자가 사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생명을 받아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자가 생명력을 받지 못하면 그를 통해 나오는 문화 역시 죽은 문화가 됩니다.

 

생명은 영접을 통해 얻지만 생명력은 회복을 통해 얻습니다.

기도는 마시는 기도만 있는 게 아니라 시편 102편처럼 토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라면 제대로 된 를 해야 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생명력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기도를 우리가 직면기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부르스 톰슨의 다림줄 덕분이지요. 흠스나 틴즈 흠스는 부르스 박사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청소년 N세대는 교육되기 전에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밭을 먼저 갈아야 씨 뿌리는 게 효과가 있는 법

밭을 갈기 위해 농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CURE는 주님이 하시지만 우리는 CARE할 수 있습니다.

교사보다 간호사가 시급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복은 치유의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것입니다.

회복사역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에야 통찰력 교육이 필요하고 세계관 교육도 필요한 것입니다.

 

애꿎은 문화만 건드리는 것은 복음의 핵심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만약 청소년들에게 세계관 교육을 시키고 문화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면 틴즈흠스부터 경험하게 하십시오. 그래야 순서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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