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또 하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5-02-03 10:05
조회
872

또 하나의 역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번겨울 두 번의 청년부 수련회 인도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인천에 있는 신성 성결교회 청년부이고 또 한 번은

안산에 있는 기쁨의 동산교회 청년부(사진)입니다.

그들과 보낸 며칠은 힘들고도 축복된 여행이었습니다.

두 번 다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환경은 따뜻하거나 아늑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견딜까?

했는데 결과는 내가 잘 쓰는 표현대로 와우였습니다.

    

흠스를 가지고 청년부 수련회를 한 건 처음이라 나도 긴가민가 했지요.

 

원래는 다른 주제로 쳥년부 수련회를 인도해 주십사고 부탁 받았던 것인데 내 제안을 받아들여 미니 흠스 형태의 수련회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우는 청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형제들이

그렇게 빠른 시간에 얼굴이 바뀌는 청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아픈 자매들이

 

요즘 청년들이 아프다는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신자나 불신자나 막론하고 너무 아파서 비명도 지르기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오래 전부터 청년에게 관심이 많았던 건 청년 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편 119편 9절의 말씀이지요

그 구절을 달달 외우면서도 어둠의 자식이 되어야 했던 나의 청년시절

 

그래요

나의 청년시절은 화려하기도 했지만 몹시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청년시절은 아프리카가 있었지만 도피형이라는 벽도 있었습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고 혼자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내면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해 허둥대야만 했던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상처와 욕망이 나에게 흘러오는 생명력을 가로 막고 부르스 탐슨의 말처럼 벽을 쌓게 한다는 걸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그저 끓는 마음에 외국에 나가 선교활동을 하거나 민족 복음화를 위해 이 한 몸 바쳐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했을 뿐 하루하루의 삶은 바람의 파이터 그거였습니다.

 

어느 날 주님이 흠스HMMS라는 기가 막힌 사역을 주셨고 이번 겨울 그것을 청년부 수련회에 적용해 보았는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이미 아신 분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흠스의 매력은 직면에 있지 않나요?

상담이나 내면치유가 아니라 직면

그것도 CONFRONTATION이 아니라 ENCOUNTER

    

직면은 완벽한 의사를 만나는 것

직면은 대면

직면은 계시에 대한 거룩한 반응

직면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어있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사랑) 안에 들어가는 거룩한 행위

직면은 지성소에 들아가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믿음의 행위

사랑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자신이 쌓은 벽 허물고 하나님의 다림줄로 가는 유일한 방법(암7:7-8)

직면은 선물

직면은 기경

직면은 자충성이라는 죄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방법

 

직면의 성경적 근거 중 하나는 시편 102편입니다

직면도 중요하지만 직면 전 지성소에 들어가는 예배는 더 중요합니다.

직면도 중요하지만 직면 후 직면 그룹 안에서 행해지는 세레머니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 세레머니야말로 지체를 성령 안에서 하나로 묶어주거든요

 

동쪽 문을 열고 들어가 뜰을 지나고 성소를 지나고 휘장을 지나고 지성소에 들어가 주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경험이 흠스에 있습니다.

원가정에서 받은 상처로 오랫동안 벽을 쌓고 살아왔는데 그 견고해 보이던 벽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던 경험이 흠스에 있습니다.

 

나도 놀랬습니다.

그렇게 빨리 청년들이 직면을 배우고 따라 하고 얼굴이 바뀌고 삶이 바뀔 줄은...

겨우 몇 시간 만에 그들의 얼굴표정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해 했습니다.

 

윤리 도덕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주님의 성품으로 바뀌는 게 정말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로써 장년보다 청년, 청년보다 N세대가 더 빨리 직면을 통해 기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살아계신다는 게 또 한 번 입증이된 것입니다.

변변한 강사진도 없이 거의 나 혼자 그 많은 시간을 인도했는데 결과는 <주님이> 살아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게 더 감사합니다.

 

어줍잖은 설교나 인생 훈계나 도덕적 변화 촉구가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인식하고 의존하는 법만 알려줬을 뿐인데 그걸 성실하게 따라하던 고마운 청년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요즘 청년들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정말 아프구나,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원가정 안에서 부모와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모태신앙인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그리고 그렇게 아파하는 형제와 자매들을 지성소로 데려가 주님을 만나게 해 준 보람이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오직 지성소에서 일대일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도피의 벽을 쌓고 혹 반항의 벽을 쌓고 순응 형과 할 수 없어 형과 경쟁 형과 비판 형의 삶을 살아왔던 지난 날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거룩한 영혼의 호흡을 밤늦게 이어 나가던 아름다운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래요

아픈 사람에게는 회복이 먼저 아닌가요?

그래요

딱딱하게 굳어진 밭은 먼저 기경을 해야 하지 않나요?

그래요

교회는 인간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오직 주님 십자가만이 해결책 아닌가요?

 

물론 일반 은총에 속한 영역을 무조건 배제하자는 게 아니지만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주님이 멀리 있고 십자가는 보이지 않고 보혈의 은혜는 화석으로만 남아있는게 문제 아니던가요?

 

청년들에게 꿈이나 말하고 비전이나 외치고 높은 곳에 올라가 영향력을 발휘하라고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아프니? 얼마나 힘드니?

자네가 힘든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약해서야

주님은 자네 안에 들어가 내주하시기를 원하고 자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시기를 원하신다네.

영혼의 호흡을 하지 못하면 질식하게 된다는 것 잘 알잖나?

원가정의 문제를 외면하고 신앙생활을 사는 건 현명한 자세가 아니지

원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만들어나갈 가정의 문제도 어려워지기 쉽거든

우리를 통해 사랑도 흘러가지만 상처도 흘러간다는 걸 잊지 말아주게

다림줄은 율법이나 규칙이 아니야 오직 주님의 생명, 주님의 사랑, 주님의 은혜의 영역이야. 같이 가지 않겠나?

 

그 추운 방에서 외투 하나 걸치고 지성소 예배를 드린 후 조별로 직면을 체험하던 귀한 청년들에게 사랑의 헌사獻辭를 보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겨울은 사랑하는 청년들과의 미니 흠스가 있어 너무 따뜻했습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변해가는 영혼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나에게 청년부를 맡기고 알아서 해달라는 두 분의 목사님

허영신 목사님과 최만석 목사님 고맙습니다.

 

믿고 따라와 준 청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더 많은 청년부에서 이런 수련회가 이루어지고 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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