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은혜도 이런 은혜가 없습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5-02-06 10:05
조회
990

이번주부터 잠실 주님 기쁨의 교회에서 연속 10주간의 다림줄 설교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2000명 가까이 모이는 교회의 수요예배에서 연속 10주간이나 다림줄에 관한 설교를 하게 된 건 정말 은혜로운 일입니다.

내가 이런 중요한 설교를 하게 되리라고는 2005년 전 까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2006년도에 코나에서 두번 째 DTS, 그러나 이번엔 간사로 섬기고 나서 곧장 밴쿠버로 가 FMS를 하게 될 때만하더라도 다림줄을 이해하는 건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DTS에서 다림줄 사역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내용이 어렵게 느껴진 건 이 사역이 갖고 있는 무게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2005년과 2006년은 나에게 기념비가 될만한 해였죠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낮은울타리 사역 전체가 땅으로 꺼져버린, 한마디로 내 생애 가장 끔찍한 공황상태였었습니다. 날마다 울고 날마다 한숨을 쉬고 날마다 죽음을 묵상하던, 그래서 주님 저 앞에 오는 트럭이 내 차를 들이 박게 해 주세요. 오늘 여기서 이 괴로운 생을 마감하고 하고 싶습니다. 제발 마감하게 해 주세요. 를 미친 사람처럼 외치고 다니던 때였습니다.

 

할 수 없이 한국의 사역을 모두 내려놓고 빈털털이 실패한 사역자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던 시절.

정치적 망명보다도 비참한 처지가 되어 비행기를 타야 했던 그 때의 심정이 아직도 내 심장에 남아 두근거리게 합니다.

실패의 심연深淵, 인생의 밑바닥에 가보지 않은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 못하겠지만 어쨌던 내 인생의 심연이었습니다.

어둡고 춥고 외롭고 절망감만 느껴지던 심연이었습니다.

세상에, 내가 거길 갔다 온 것입니다.

 

그 때 우연하게 토론토에서부터 마이애미까지 강의가 잡혀 미 동부 쪽을 주욱 타고 내려온 뒤 하와이로 가 돈 안 드는 간사 생활을 할 때도 눈 앞이 캄캄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오던 낮은울타리 모든 자료와 설비와 후원자를 다 넘겨주고 빈털털이로 와 앉았으니 하와이 바닷가가 눈에 들어올리가 있겠어요?

 

일년여 동안은 먹고 잘 때가 있었으니 괜찮았는데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가 무엇을 해야 하나, 눈만 감으면 좌절감에 모멸감에 실패감에 땅으로 꺼져만 가던 시절이었죠.

그렇게 싸울 필요가 없었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조그만 문제 하나 가지고도 죽을듯이 싸웠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이었습니다.

 

간신히 일본 아웃리치까지 마치고 DTS 간사를 내려 놓은 뒤 초라한 모습으로 밴쿠버에 가 FMS를 하게 된 것도 기적 중에 기적이었습니다.

그 얼마 전에 볼티모어 벧엘교회에서 강의할 때 1만불을 헌금한 이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이네도 풍족한 살림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런 거액을 헌금할 수가 있었을까?

 

코나에서 보다 더 지독하게 방황과 다툼과 분노와 괴로움으로 FMS를 끝 낸 뒤(그 때 상황을 돌아보면 정말 부끄러워 눈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할 수 없이 한국에 다시 돌아와 집도 아무 것도 없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한 달씩 선교사 숙소를 이년여간이나 전전할 무렵 영동교회 정현구 목사님의 배려로 논현동에 연립형 원룸과 자그마한 사무실을 얻었었죠.

자, 새로 시작이다. 그런데 무엇부터 해야 하지?  

코나에서 함께 DTS를 했던 김지연 사모를 초청해 N세대 중독 예방을 위한 사역을 짜자고 했죠.

김지연 사모는 똑똑하고 슬기로워서 지금 우리 시역의 기초를 잘 만들어주고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무렵 마침 신림동의 어느 교회에서 4주간 연속 강의부탁이 왔고 내가 3주를 한 뒤 FMS 간사였던 이승연 자매를 불러 한 주간만 강의해 달라고 했던 게 다림줄을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격스러운 건 호놀룰루 로고스 교회의 담임인 남일현 목사께서 주선해줘 YWAM 호놀룰루 베이스에 가 한 주간 다림줄 강의와 사역을 했던 게 정말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이미 HMMS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흠스를 중심으로 한 다림줄 강의의 틀을 잘 잡을 수 있었지요.

그렇긴 해도 DTS 본 고장으로 가 한 주간의 다림줄 강의와 사역을 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한 주간의 강의를 준비하는데 머리의 반이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아무튼 이미향과 서안나 자매를 데리고 호놀룰루로 가 강의와 사역을 마친 후에 봉천동의 시냇가 푸른나무, 잠실의 주님 사랑의 교회에서 매달 한 번씩 일년 넘게 다림줄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아예 매주 한 번씩 10주 연속 설교를 하라는 부탁을 받은 것입니다.

 

다림줄은 낮은울타리 3기 사역의 중심을 잡아준 HMMS의 핵심입니다.

다림줄은 그 어두운 시절 나의 폐부 깊숙히 들어와 가장 아픈 데를 찔러댔던 무자비한(?) 은혜였습니다.

다림줄은 이전에 내가 듣도 보도 못했던, 정체성 파악의 실제였습니다.

다림줄은 나의 원가정에서 받은 상처와 그로 인해 무너져 내린 핵심감정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데 크나큰 도움을 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다림줄은 낮은울타리가 재정적으로 망해 밑바다까지 내려가서야 발견할 수 있었던 태평양의 진주조개였습니다.

다림줄은 날마다 죽게 해주세요,를 노래처럼 부르고 다닌 끝에야 볼 수 있었던 밤하늘의 별이었습니다.

망막의 비늘이 벗겨지고 오만의 외투를 벗어놓고 선입견의 비늘까지 벗어진 다음에야 나에게 다가왔던, 기가 막힌 선물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한 번의 DTS와 또 한 번의 DTS 간사를 하게 해 준 코나의 김모세 형제에게 감사 드리고 FMS를 엉망으로 마쳤는데도 수료증을 주며 격려해준 밴쿠버 FMS의 박윤호 형제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무엇보다, 다림줄은 커녕 두레박줄도 내릴 줄 몰랐던 철부지에게 이런 귀한 사역의 현장으로 데려가 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화사역만 할 때는 나의 정체성 자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몰랐습니다.

문화사역만 할 때는 가정의 소중함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텐스텝으로 성경공부를 수없이 인도했지만 상처와 욕망, 핵심감정의 위력이 이렇게 큰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다림줄은 완전히 망하고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을 때 내려주신 하나님의 생명줄이었습니다.

그 다림줄 설교를 연속해서 10주간이나 합니다. 

 

10주간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1-에덴의 동쪽. 타이타닉과 핵심감정

 

2.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2-견습환자. 상처의 힘을 넘어서기

 

3.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회복된 순응형

 

4.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4-호밀밭의 파수꾼.회복된 못해형

 

5.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5-바베트의 만찬.회복된 경쟁형

 

6.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6-어린왕자.회복된 비판형

 

7.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7-자기 앞의 생. 간호사형 부모의 중요성

 

8.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8-슬픔이여 안녕. 고난의 유익. 직면기도의 실제

 

9.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9-성냥팔이 소녀. 역기능 가정의 유혹

 

10.회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다림줄10-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내 인생의 권위자들

 

이제 첫 주를 시작했으니 현장에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싶은 분은 잠실 신천역 앞 트리지움 아파트 내의 영동일고에서 드려지는 주님 기쁨의 교회 수요예배로 오시고 아니면 영상으로 잘 편집하여 낮은울타리 홈페이지 피터의강의에 올려 놓을테니 온라인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쉬운 건 VIP들만 허용된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VIP 회원들은 시간 날 때 들어오셔서 함께 해주시고

부디 핵심내용을 잘 전할 수 있도록,

오직 주님의 마음만이 나타나도록,

하늘에 계신 그 분께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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