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이랜드 프랜차이즈 식당 자연별곡 앞에서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5-02-11 10:05
조회
1013

지난 주 토요일 순복음 강북교회에서 시작된 부모 통찰력학교 첫번째날 강의를 마치고 미아 사거리에 있는 현대 백화점 내 자연별곡에 갔었지요.

함께 한 미애 간사가 수고를 많이 해서 위로도 해 줄겸 오늘은 비싸더라도 좋은 식당엘 가보자 해서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장사진을 치고 있고 접수 보는 직원이 적어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그냥 나와 근처의 다른 식당에서 만두와 국수를 먹고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이랜드는 손 대는 것마다 이렇게 잘 되는가?

 

그 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겼다 없어진 것도 많겠지만 아무튼 자연별곡이라는 프랜차이즈형 부페 식당 앞에 장사진을 친 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랜드를 알게 된 건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남서울교회 청년부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보고 그 교회 다니던 본부장급(나중에 나와 함께 일하기도 한) 직원이 나를 이랜드 강사로 초대하는 바람에 연거푸 몇 년을 강사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이랜드는 말 그대로 풋풋했습니다.

강의 장소에 모인 직원들 분위기는 어느 중형교회 청년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했습니다.

내가 맡은 강의 제목은 이 시대의 문화읽기였는데 지금도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터에 당시는 더 그랬는데도 그게 먹혀 들어갔으니까요

 

보통 회사라 하면 아무리 설립자가 크리스천이라 해도 근본주의 색채가 강한 문화강의에 반발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인데 당시 이랜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느끼기에는 웬만한 교회 청년회보다 찬양도 더 뜨겁게 하고 나와 같은 강사의 강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히 인기 만점이었죠. 그래서 이랜드 본부 직원뿐 아니라 브렌따노나 언더우드 헌트 등 다른 계열사 직원들 교육시간에도 열심히 강의를 하러 다녔지요. 아마 내 기억으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곳은 여성 의류를 만드는 로엠이었을 겁니다.

 

그 때만 해도 이랜드나 나나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라 오가기가 편했습니다.

더구나 기독교를 표방한 회사라 내 강의를 그대로 갖다 놔도 먹혀 들어가 더 편했습니다.

보통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 때는 기독교 용어를 거의 쓰지 않고 강의를 하는데 이랜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렐루야 하면 곧바로 아멘이 나오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본부에서 하는 전직원 수련회에 강의를 했는데도 사례를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멀리 강원도까지 왔는데 차비도 안 주는가 하고 친한 직원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당신은 이미 우리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사례비 책정이 안 되었다는 겁니다.

대신 스키복용으로 값 싼 비닐 점퍼와 바지, 가족이 마음놓고 탈 수 있는 스키장 이용권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기분이 좋았다는 것은 어느새 나를 한 가족이라 불러 주는 것이고 안 좋았다는 것은, 그래도 그렇지 오가는 교통비며 사례 받아 생활해야 하는 나의 상황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다니, 였습니다.

아무튼 그 정열적인 회사의 분위기에서 인기 만점의 강사로 계속 불려다닌다는 것만으로 감사하자.

그리고 내 형편에 무료 스키가 웬 떡이냐 하고 넘어갔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작고한 청소년 사역자 김 모 전도사를 만나면서였습니다.

그는 십대들의 쪽지라는 걸 만들어 사역하던 전도사였는데 나를 만나자마자 자랑부터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자랑의 내용은 자기도 이랜드에 강의를 나갔는데 첫 강의 현장에서 박성수 회장이 껴안더니 내가 도와줄테니 나랑 사역하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동생 삼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했는데  두번 세번 같은 자랑을 듣다 보니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나고 그랬습니다.

 

나한텐 강사 사례비도 안 주면서 저 양반은 뭐가 잘나 저런 대우를 받나?

더 부러운 건 어려운 사역 잘하라고 시내 한복판에 이랜드 매장 하나를 내주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걸어가던 중 형님에게 라는 쪽지를 쓰더니(나 보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박성수 회장이 묵는 방의 문틈에 슬쩍 꽂아 놓고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벌써 여러 지인이 나보고 왜 박회장을 찾아가지 않느냐고 성화를 대고 있던 중이었죠.

낮은울타리 사역은 다음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역이니 박성수 회장을 찾아가면 만드시 도와줄거다 빨리 찾아가 봐라면서 등을 떠밀다시피 한 사람도 있던 터였는데 김 전도사의 그런 모습을 보니 속이 넓은 사람이다 생각 들어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별안간에 학교 교사를 그만 두고 주먹만큼의 퇴직금 받은 걸로 근근히 버텨오던 터였는데 나도 매장 하나 정도 지원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는 안 되지만 순전히 김 전도사의 모습을 보고 나온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김 전도사는 자기가 만드는 쪽지에 갈 곳 없고 돈도 없는 젊은이라고 자기를 소개했고

나는 간사들 생활비를 지원할 생각이며 장래 희망이 영화 만들고 뮤지컬 만드는 게 희망이라고 밝혔으니

외형적으로 도와줄 마음이 날까? 하는 염려 아닌 염려도 들었습니다.

 

만,

드디어 강원도 용평 스키장에서 열렸던 이랜드 전가족 수련회 강사로 또 다시 초대된 터에 이번엔 박회장을 꼭 한 번 찾아 이야기나 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질적으로 도와달라는 얘기가 아니라도 해보자. 이 정도 오래 강사로 왔으면 나와 낮은울타리 사역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 기독교 마인드를 표방하고 코스타 강사로도 유명해진 큰 회사 설립자에게 좋은 충고라도 몇 마디 들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 때 우연인지 박회장 묵는 방이 바로 내 방에서 몇 걸음 안 떨어진 곳에 있었고 같은 강사로 와 있던 이동원 목사님이 격려까지 해 준 터라 용기를 내어 박회장 방문 앞에 가 똑똑하고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자 희한한 모습이 보이더군요

본부장급 직원들에 둘러싸여 박회장이 침대에 다리를 걸친 채 바닥에 누워있는 겁니다.

쭈삣거리고 들어가 한참을 뜸 들인 후에 사정을 말했죠.

나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강사로 불러줘서 고맙다. 낮은울타리 사역 초기에 이랜드 강사로 오가는 게 자랑스럽다. 더구나 회사 분위기가 싱싱하고 순수해서 동질감을 많이 느낀다.

그러면서 이미 잘 아시겠지만... 으로 시작해 낮은울타리 사역 소개와 어려운 점 몇 가지를 더듬더듬 늘어놨죠.

가장 어려운 게 멘토가 없는 점이었는데 박회장님이 멘토가 되어 주시면 고맙겠다.

솔직히 그 당시엔 김 전도사 정도의 지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잘 하셨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사역이 필요하다. 나도 특별한 회사를 운영중인데 이렇게 저렇게 해봐라. 언제 한 번 밥이나 같이 먹자" 라고 어깨를 잡아주고 방향지시만 해 줬어도 날개를 달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자 한참을 노려보더니(설마 노려봤겠습니까마는 눈빛이 하도 예리해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대뜸 "성공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게 아니겠습니까?

성공할 수 있냐니?

아니, 내가 자기처럼 회사를 차린 줄 아는 건가?

뉴키즈 온더 블록 공연에서 여학생이 깔려 죽는 걸 보고 의연히 일어나 시작한 사역이라는 얘길 전혀 못 들었나?

이건 돈 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돈 까먹는 사역이라는 걸 경영서적 사천 권이나 읽었다는 저 똑똑한(?) 양반이 하나도 모르는 건가?

 

그리고 내 입으로 오늘 다시, 낮은울타리는 N세대를 위한 문화 사역단체고 나 혼자 퇴직금으로 세운 거라고 설명을 분명히 했는데

성공할 수 있느냐니?

만약 씨씨씨나 아이브이에프 같은 선교단체 설립자를 만나도 그렇게 물어볼 건가?

목사님 성공할 수 있습니까?

 

벌써 잘 나가는 기업인이 된 분이라는 건 알겠는데 불모지에 뛰어든 문화 사역자에게 성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당황해서 "자신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바로 이어서 박회장이

"그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오줌을 쌀 것 같았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계열사 사장단이 주욱 둘러앉은 방에 회장이 침대에 발 올려놓고 거꾸로 누워있는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소?" 한 마디와 "자신 없습니다"에 이어 "그럼..." 하고 끝난 게 답니다.

 

단 세 마디

아무리 말하기 싫어도 강사 신분에 자기 방까지 찾아가 노크를 하고 들어갔는데 본인은 그 두 마디 후에 눈을 감아버리는 박회장의 모습과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임원진의 모습은 오줌을 싸도 여러 번 싸게 만드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고 방을 나서는데 창피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괜히 찾아갔다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해 이랜드 강사로 나가다가 어느 날부터 회사 분위기가 바뀌면서 강사로 부름 받는 일도 중단되었지만 아는 사람들이 아시안 미션이라는 이랜드 선교부는 이런 일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부서다. 재정이 어려우면서도 왜 그냥 있느냐? 내가 아는 누구도 지원 받았고 누구도 지원 받았다. 등 떠밀듯이 반 강제로 내게 해서 '그래 주님의 사역인데 내 기분 따라 사역하면 도리가 아니지. 전에 그런 일이 있다 해서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지' 하며 이랜드 선교부에 사역 소개와 지원 요청을 해봤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되어, 갈수록 후회감만 쌓여갈 뿐...

 

그게 이랜드와 나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 번 퇴짜를 맞은 것입니다.

이번엔 지원 요청이 아니라 돈을 쓰러 갔다가 퇴짜 아닌 퇴짜를 맞은 것입니다.

 

추운 데서 세 시간 이상을 강의하느라 속이 허할 대로 허해진 상태에서 물어물어 찾아간 터였는데 "한시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딱 한 마디.

이렇게 쓰면 그 직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봐 조심스럽지만 나에겐 차갑게 들리는 한마디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그 옛날 "성공할 수 있소?'가 떠올랐던 건 우연이었을까요?

 

물론 그 뒤로도 박회장의 말이 간간히 들려오긴 했습니다.

그 중 하나. 이랜드 직원 교육 시간에 어쩌다 우리 얘기가 나왔는데 "낮은울타리 같은 촌스러운 이름이 뭐냐" 했다는 말에 씁쓰레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랜드도 내가 보기엔 촌스럽구만 뭐. 이대 앞 네 평짜리 매장이었던 잉글랜드 줄인 말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하고 말았지만 어쩌다 거리를 걷다가 이랜드 계열사 매장을 지나치기라도 하면 그말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언더우드, 헌트, 쉐인, 로이드, 로엠, 올리브 스튜디오, 이랜드 크루즈, 최근에 내가 뉴코아 아울렛에서 오십 프로 세일하는 품목을 골라 사 입은 이랜드 옷  브랜드는 읽기도 어려운 까르테 블랑체였습니다(CARTE BLANCHE라고 영어로 써있던데 발음이 맞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순수 한국어를 썼고 이랜드는 순수 외국어를 썼습니다.

완전 외국어였습니다.

낮은울타리는 사역의 복합적 의미가 있어 뜻도 좋은 데다 일부러 순전한 한국말 고르느라 온누리교회 청년들과 삼개월을 씨름해서 찾아낸 이름이었는데 한국 교회의 대부 홍정길 목사께서 극칭찬한 그리스도인 사업가 그 유명한 분이 "성공할 수 있소?"에 이어 "촌스럽다"는 한마디를 더 보태 기분이 멍했던 기억이 자연 별곡 앞에서 뭉실뭉실 살아나더란 얘깁니다.

 

그런데 자연별곡이라니

와우

처음 듣는 순수 한국말이 아닙니까?

이랜드가 개발한 한국 부페 프랜차이즈 식당 이름이 드디어 순수 한국말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서 소위 대박이 터진 것입니다.

그리고 추운 몸을 하고 찾아갔는데 입구에서 한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돌아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요

오늘 편지는 이랜드나 박성수 회장을 비판하려고 시작한 게 아닙니다.

 

이 피터의 편지는 특별한 격식 없이 그때그때 마음을 따라 슬픈 일 외로운 일 즐겁거나 감격적인 일을 적어 멀리 있는 친구나 동역자들에게 써보내는 편지일 뿐입니다.

물론 다 솔직한 건 아닙니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사연은 물론

박 회장뿐 아니라 더 유명한 분들에게 거절당하고 상처받은 일이야 많지만 있는 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만,

오늘 이랜드 이야기는 순전히 자연별곡 때문이었습니다.

4주 연속 예정인 순복음 강북교회에서의 첫날 강의 결과는 환상적으로 좋았지만 추운데다 배가 너무 고픈 상황에 물어물어 그 먼 데를 찾아갔는데 씁쓸하게 돌아서야 했던 경험이 불쑥 옛날 이야기를 꺼내게 했습니다.

 

오해하시지 말 것은 내가 이랜드에서 상처받은 것 때문에 이랜드를 거절하느냐?

천만에 말씀입니다. 내가 가장 자주 찾는 곳 중 하나가 이랜드 계열사인 뉴코아 아울렛이고 내가 즐겨 사입는 옷 중 하나가 이랜드 옷입니다. 그리고 자연별곡도 신문에서 이랜드 신규 브랜드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갔던 것입니다.

 

나는 이랜드 제품이라면 싸서 좋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어제도 뉴코아에서 오십프로나 세일하는 이랜드 계열사의 겨울 옷을 사고(내년을 위해) 옷 소매 수선하는 동안 아내와 같이 근처 이랜드가 운영하는 피자집에 들러 싸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던 터라 자연별곡도 그러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찾았던 것입니다.

 

물론 박 회장 기대(?)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2005년 들어 쫄딱 망한 처지인데다(지금은 오히려 망한 것 때문에 사역내용이 깊어져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한때 가족이라며 강사료도 안 주어 서운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랜드 강사로 뛰어다닌 기억이 더 소중하지 도움 못 받은 게 한스럽진 않습니다.

 

어떤 땐 박회장의 그 말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성공할 수 있소?"

 

 그 말은

"주님 일이라고 함부로 덤벼들어 대강 하면 안 됩니다"로 들리거든요

 

아무튼 불원간不遠間에 특별한 날이 오면 우리 간사들 데리고 뉴코아 매장 안에 새로 오픈한 자연별곡 식당에 꼭 한 번 가 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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