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신상언의 사랑의 편지 21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2-03-20 10:05
조회
707

오늘도 더 이상 잠을 자기에는 틀린 것 같습니다. 

시차 적응하기가 갈 수록 힘들어집니다. 

이번 선교여행에서는 시애틀 1기를 오픈했고 LA 오픈강의를 했으며 볼티모어 3기 졸업, 버지니아 1기 졸업을 마쳤습니다. 

시애틀은 이경철 목사님과 배진원 사모님이 맡으셨고 LA는 김다윗 목사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가는 곳 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만 사단의 공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이민사회에서의 흠스란, 상처로 인해 부서지기 쉬운 저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만져 주시는 것, 먹고 사느라고 바쁜 이민생할에서 놓치기 쉬운 자녀와의 문제를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다는 의미라는 걸 이번 여행에서도 확인하고야 말았습니다. 

 

흠스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상담도, 내적치유도 아닌, 직면학교라는 것.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 특히 매주 소그룹 안에서의 직면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이민 사회의 지체들이 받고 있는 상처와 아픔은 대단하다는 생각. 그것이 흠스에 와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져 나가기를 소원합니다. 

시애틀은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데 흠스가 따듯한 홈처럼 여겨져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안정감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LA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N세대가 방황을 많이 하는 곳인데 흠스가 그들의 방황을 줄이거나 멈추게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애틀에서 이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미국의 어떤 도시보다 복음화율이 낮다고, 뿐 아니라 교회에 다툼이 심해서 성도들이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LA에서 인진한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 청소년들의 약물, 가출, 컴퓨터 중독 문제가 심각한데 특히 성적인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그러던 중에 LA에 있는 나성 한미교회에서의 오프닝 강의는 극적인 데가 있었죠. 

 

첫 날 저녁 집회는 힘들었습니다. 

우선 참석자들의 연령이 높은 데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내가 도착하기 전 날 비바람이 친데다 폭풍이 몰려온다는 예보까지 있어 참석인원이 예상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정성껏 오픈강의를 마쳤는데도 흠스 신청자가 딱 한 명 뿐. 김준곤 목사님의 사위였던 장로님 한 분만 신청서를 쓰고 가, 이런 역시 LA는 안되는구나. 서부지역은 동부에 비해 영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더니 역시 맞구나. 그 날 숙소인 쉐라톤 호텔로 돌아와 잠을 자는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교회가 얻어준 비싼 호텔도 부담으로 다가와 자는 둥 마는 둥 헤매다가 다음 날을 맞이했죠. 볼티모어로 떠나기 전의 마지막 새벽 강의를 하러 컴컴한 호텔을 나서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학교는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열어 주셔야 가능합니다. 제가 오늘 강의할 때 조금도 제 감정을 나타내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만 온전히 전하게 하소서. 

편안했습니다. 

그토록 LA를 오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여러 번 그 길을 막으셨다가 흠스 사역 시작한지 일년이 넘어서야 어렵게 어렵게 LA를 방문했으니 하나님이 하실 거라는 믿음만 잃어버리지 말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 정말 하나님이 참석자들의 마음을 만지신 것 있죠. 

우선, 단 위에 올라갔는데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와 앉은 것도 그렇고(여전히 폭풍주의보는 발효중인데)  한 말씀 한 말씀 전할 때마다 쭉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 나는 갈 수록 담담해졌고 사람들의 표정에 관계없이 어떤 말이 하나님이 하고 싶으신 말인가에만 생각을 집중했습니다. 

결국 두 번짼 날 새벽기도가 끝나자 갑자기 밀려오는 감동의 도가니. 

울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는 크게 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씩 예배당을 나서면서 신청서를 내기 시작했고 나중에 물어보니 삼십명이 넘는 인원이 신청을 하여(더구나 담임 목사님 사모까지) 다음 달 22일 LA 흠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샌디에고에 살고 있는 은희 자매와도 연락이 닿아, 

사년동안이나 어머니 학교 총무를 했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켜 주셨다는 생각. 그걸 확인시켜 주듯 단 이십분간의 만남을 위하여 우리가 볼티모어로 떠나는 날 아침 샌디에고에서 LA 공항까지 달려와 준 자매. 자매 또한 이 학교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샌디에고 뿐 아니라 샌 버나디노 샌호세 샌프란시스코 산타 바바라나 산타 모나카에서도 이 학교를 열기를 원합니다. 이 학교가 컴퓨터나 마약에 중독되어가는 N세대를 살리고 역기능 가정을 회복 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백 배의 용기를 내게 합니다. 

십여년 만에 만나 회포를 푼 인목사님과도 그렇고 은희 때문에 의미있어진 샌디에고에서도 학교를 열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극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사실 할 수만 있다면 샌디에고는 내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을 할 만큼 마음이 가는 동네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나는 LA에 가고 싶었습니다. 

동부 보다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고 불법 체류자는 더 많고 사막에 세워진 도시라 풍경도 떨어지는 LA에 마음이 있었던 건 인진한 목사님과의 추억 등 많은 사연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때, 벌써  십오년도 전에 LA의 청년과 한국에서 온 청년들을 모아놓고 문화 리더십 캠프를 하며 가졌던 시간에의 추억은 나를 자연스럽게 LA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볼티모어와 버지니아, 린치버그와 마이애미에서까지도 흠스가 진행되는 동안 LA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누가 오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김다윗 목사님. 

그를 통해, 그의 담임 목사님이 버지니아 열린문의 부목이었던 기막힌 사연을 통해 LA의 조그만 교회에서 흠스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 

사역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하나님 빨리 데려가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제 버릇이 되어버렸습니다. 

더구나 지난 번 엄청난 재정의 어려움을 겪은 다음부터는 조금만 어려움이 몰려와도 “하나님 그만 하라는 싸인인가요?” 라고 물으며 예민해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그만” 하면 얼른 손을 놓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니 좋은 점도 있지만 때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다만, 이게 내 일이 아니기에 감정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 할 뿐. 이지만 이 편지를 쓰면서 한 가지 죄송한 건 그 결심이 버지니아에 와서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버지니아. 

기대를 크게 가졌던 때문인지 마지막 리더들과의 모임에서 그만 내 감정을 드러내고 말아, 함께 있던 누군가로부터의 원망 아닌 원망, 그로 인해 생긴 아내와의 불협화음. 

오랜만에 아내를 동부인하여 가졌던 여행인데 적절치 못한 감정의 표출로 인해 기분이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정말 버지니아 학교가 다른 곳 보다 잘 되기를 바랬었죠. 아마 조승희가 살던 마을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요? 버지니아에서는 처음 하는 학교라 그랬나요? 잘 되든 안 되든 하나님께 맡기자 그래놓고 떠나기 전 마지막 모임에서 아쉽네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 순간, 한 자매가 발끈하며 공격(?)을 해왔고 나중 그들이 돌아간 후(물론 잘 끝맺음을 했습니다만) 그 일로 아내와 말다툼까지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경청과 공감학교 한대면서 잘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해요 어쩌구 하며 지적해 오는 순간 나도 발끈해서 여봐 잘 들어주는 게 그냥 네네 하는 것만은 아니잖아? 하는데 갑자기 쉬익하고 우울증 같은 게 몰려오는 거 있죠. 지난 번 낮은울타리 재정 파탄 이후 조금만 말다툼을 해도 정서가 푹 가라앉아 버리는, 급격한 변화였습니다. 

아마 그 모임 가지기 직전 서울서 날아온 이메일을 보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죠 . 

디자이너가 몹시 아파 낮은울타리 마감이 늦어지고 포스터 제작 등 많은 일들에 차질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사무실에 와 이렇게 아이를 혹사시키면 우짜노? 하는 안 좋은 얘길 하고 갔다고... 

전에 재정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간사의 가족 몇 사람이 찾아와서 악덕업주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밀린 월급 내 놓으라고 공격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나는 그 메일을 받는 순간 기분이 푹 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그 놈의 돈만 있으면 디자이너 세 사람쯤 더 뽑아서 널널하게 일을 맡길 텐데. 편집 디자이너 뿐 아니라 기자들과 영상팀 간사들이 툭하면 밤새워 일하는 거 볼 때 마다 무능력과 자괴감. 나는 또 “하나님 이제 그만 하라는 사인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말이 없으시고 내 가슴만 타더군요. 

이제 오늘 열한시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다음 날 대전 2기 졸업식 하러 갔다가 그 다음 날인 주일 저녁 시드니로 갑니다. 시드니 2기 졸업과 수정교회 3일 캠프 인도, 후에 공개적으로 3일간의 시드니 직면 학교를 인도하게 됩니다. 

시드니는 미국이나 국내와는 전혀 다른 분위여서 몸은 피곤하지만 거기 가는 일이 설레이게만듭니다. 

아둔하기 짝이 없는 내가 시드니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부를 난 알 수 없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연출하고 계시다는 느낌만은 강하게 받습니다(아마 다음 번 편지에 이번 시드니 방문 건을 보고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 다니는 게 미안하고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어 아내를 동행시켰는데 잘 나가다가 다툰 것도 그렇고 두 사람의 비행기 값이 많이 나와 걱정도 되었는데  정 장로님 내외의 큰 헌금과(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가는 두 분의  헌금을 받을 때마다 얼마나 송구한지) 여기저기서 받은 사례 등으로 잘 채워진 것도 그렇고 매일 시차가 안 맞아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직면 강의안, 직면학교 강의안과 시간표, 월간지에 실을 편집인의 글. 흠스의 정체성과 역할, 거기다 이번 사랑의 편지까지 다 쓰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전에는 강의 끝나고 떠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학교 하는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오래 만나며 교제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한 이삼년 동안 재정적 어려움 사람의 어려움을 크게 겪으면서 심장병 초기 증세와 우울증 초기 증세를 얻게 된 건 비극이지만 그 덕분에 흠스를 할 수 있게 된 건 축복이라 여깁니다. 

흠스 사역은 할 수록  열매도 있고 보람도 커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강합니다. 

다만, 문제는 아직도 연약한 제 자신입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1. 디자이너가 없으면 모든 일이 올스톱입니다. 유나가 건강이 안 좋아 걱정입니다. 지난 번 췌장이 문제 생겨 수술하고 한 달여 쉬고 나왔는데 아직까지 완전한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긴급 기도를 요청합니다. 

2. 드디어 예라어하 큐티를 발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 씩 부모와 자녀용으로 나가는데 반응은 좋지만 아는 사람이 적어 어떻게 홍보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편지를 받으시는 분 중에 아직 예라어하 큐티가 안 가는 분은 홈페이지나 전화로 요청해 주십시오. 또 가까운 곳에 이 큐티를 받을만한 N세대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3. 12월 16일부터는 시드니에서, 1월 17부터 19까지는 서울에서 직면학교를 엽니다. 준비하는 제가 설레일만큼 기대감이 있습니다. 꼭 와야 할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4. 저희의 이사문제와 협력교회를 위해(할 수 있다면 이 사역을 맡아 할 좋은 협력교회에 낮은울타리 사역을 다 넘겨 드리고 싶습니다) 

5. 필요한 만큼의 간사를 리쿠르팅할 재정을 위해 

6. 흠스의 영상강의를 다시 찍고 편집하고 있습니다. 너무 양이 많다. 목소리가 작아 잘 안들린다 등의 피드백이 많아 사정상 1과부터 7과 까지를 제가 강의했습니다. 시애틀 1기부터 새 영상과 새 커리큘럼이 가는데 반응이 좋았으면 합니다. 영상강의를 통해서도 주님의 역사하심이 있기를, 특히 영상으로도 직면이 가능하고 역동성이 일어나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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