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안식에 대하여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1-07-05 13:29
조회
128

하나님은 안식일을 매우 중하게 여기셔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셨지요(출31:14-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그런데, 놀랍게도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행20:7-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주간의 마지막 날이 아닌 첫날에 교회로 모였다는 기록, 고린도전서 16장 1~2절에도 나옵니다(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안식일이냐, 주일이냐. 영화 ‘핵소 고지’로 유명해진 안식교는 구약에 언급된 대로 토요일에 안식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장 10절 말씀에 나타난 ‘주의 날’이라는 의미를 살펴보면 안식일은 토요일도 일요일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의 주체이심으로 주 중 어떤 한 날이 아닌, 삶 전체가 안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신다는 게 복음의 핵심입니다.

한국어로 안식이라 번역된 히브리어 샤바트는 ‘그치다, 중지하다, 쉬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맨 처음 이 단어가 나온 곳은 창세기입니다.

창세기 2장 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누리신 안식은 우리가 섣불리 생각하듯, 일이 힘들어 도중에 그만두거나 지친 몸을 달래는 게 절대 아닙니다.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대로, 창조 사역을 완벽하고 완전하게 마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 안식이 어떤 안식인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수고도 필요 없는 상태, 풍족하고 충만한 상태, 너무 거룩해서 죄와 병이 없고 아픔과 슬픔 없는 완전한 상태. 하나님이 이루신 창조 세계를 누리기만 하면 되는 상태. 아시다시피 여섯째 날 창조된 인간은 바로 다음 날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영원히 누리며 살 수 있었건만,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자격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인류 최대의 불행이랄 수밖에 없는 안식 부재는 불순종으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거룩에서 타락으로 생명에서 죽음으로…. 타락 후 인간이 얼마나 비참해졌는가는 성경 안에 처절할 만큼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안식 없는 상태로 역사가 이어져 오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한 후 광야를 지날 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엄청난 계명을 주셨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계명은 죽음 같은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에게 사랑의 언약을 추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0절,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11절,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에덴에서 추방된 후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안식 없이 헤매던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고 40년 뒤,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너희를 구해 낸 나 여호와를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켜라’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그 감격이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신명기 5장 12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신명기 5장 14절,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신명기 5장 15절,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악한 이집트인의 손에서 구해 내 아름답고 넓고 기름진 가나안 땅에 들이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출애굽기 31장 14절을 비롯해 앞에 적은 신명기 말씀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너와 나 사이에 한 약속의 표징이다’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일주일에 하루 쉬는 정도의 개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창조의 역사, 구속의 역사와 관련 있음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밝히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만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원하시며 진정한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구나’를 깨닫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죽이시므로 이 언약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안식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멸망만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에게 학습시키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 내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들여보낸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류 구속의 역사를 모형으로 보여 주신 것 아닙니까? 안식일 역시 이와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안식일이 가지는 특징을 살펴보면 안식이 구원과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매우 깊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안식일은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주기의 생활 패턴을 가진 민족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시기 전까지는 안식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안식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만 특별히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그것으로 인한 영생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만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이라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안식일은 수고롭게 일한 엿새 뒤에 맞는 마지막 날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5절에 보면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노동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은 창세기에 나와 있듯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지요. 아무리 땀 흘려 업적을 쌓아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처럼 하찮은 존재, 죄로 인해 무서운 심판으로 이어지는 역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인도하는 구원의 여정을 거친 후에야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안식일 자체를 복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일했기 때문에 복을 주겠다’가 아니라 안식일이라는 어떤 특정한 시간을 복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해진 그 시간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복을 누리게 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의무나 조건 없이 그 시간대에 이스라엘 안에 들어와 있다면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으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안식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약속받은 안식은 일시적이고 육체적인 것일 뿐 영원한 안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도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육체의 평안함조차 누리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3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할 것을 미리 아셨고 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안식을 누리지 못할 것도 아셨다고 했습니다(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인간은 안식 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이 갖는 비극은 안식 없이 무언가에 쫓겨 다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저주받은 것입니다. 안식하지 못하는 인간은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안식하지 못하는 인간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좀비처럼 햇볕을 피해 어둠 속을 기어 다니는 징그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좀비들로 인해 이 세상이 얼마나 비참해졌는가는 철학자나 기후학자는 물론, 문화 생산자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 보는 영화에까지 절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걸 보십시오. 자충성의 덫에 빠진 인간이 앞다투어 핵무기를 만들어 내고 온갖 쓰레기로 자연을 오염시켜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남보다 좀 더 잘 살려는 욕망이 모두를 무한 경쟁의 파국으로 몰고 가는 건 또 어떻고요. 안식은커녕 불면의 밤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절망에서 빠져나와 은혜로운 안식을 누릴 수 있는지 알려 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영적인 안식, 즉 완전한 안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2장 16~17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이 그림자라는 얘기는 유대인이 들으면 기겁할 말이지만,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단언합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자신을 통해서만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8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하나님께 직접 안식에 대한 언약을 받았으면서도 율법의 테두리 안에 가둬 버린 유대인만큼 비참한 민족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비난과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신 것은 자신만이 인간의 죄를 해결할 자요, 자신만이 완전한 안식을 베푸는 자임을 드러내신 것 아닙니까. 그 당시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은 단지 모형일 뿐인 안식일을 규례대로 지키는 것에 집착해 안식일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예수가 오심으로 더 이상 율법적인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예수가 십자가 달려 죽었다 부활하심으로 그 안에서 완전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이 나왔는데 바로 우리, 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주제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만 하면 기막힌 안식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 안식을 날마다 깊이 경험하기 위해 하나님을 ‘야다’로 아는 복음사역에 참여합니다. 안식을 빼앗기게 하는 상처와 욕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복사역에 참여합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를 세속화에 빠지게 하려는 세상 정신에 속지 않기 위해 낮은울타리 문화사역에 참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막 예배를 통해 우리 마음을 지성소로 만들고 생명의 역동성을 충분히 경험하기 위해 안식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브리서 4:11~14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고 안식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복된 소식 아닙니까? 더러워진 우리 마음이 거룩한 지성소가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상태, 신의 성품으로 교체된 상태가 되면 천국의 맛을 보게 된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 아닙니까? 이 복음을 믿어 자기 것으로 삼는 자는 절망 그 자체인 세상에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기쁜 소식 아닙니까? 안식에로의 초대. 안식에로의 귀환.

그래요. 이 땅에서 누리는 안식도 풍성한 삶을 보장해 주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낮은울타리의 모든 사역은 바로 이 안식에 초점 맞춰져 있음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월간지만 받아보시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복음사역·회복사역·문화사역을 자녀와 충분히 누리십시오. 특히 흠스와 틴즈 흠스, 키즈 흠스를 통해 안식을 빼앗아가는 결핍의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 받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마음이 계속 지성소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신의 성품으로 회복되는 경험이 많을수록 이 땅에서 깊고 오래 풍성한 안식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시고 웬만하시면 주님 오실 때까지 후원자 자리에 계셔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저희에게 주시는 것을 나눠 가질 수 있지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어려워서 그런지 수십 년 브이아이피 후원자로 계시던 분이 하루아침에 떠나가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월간 낮은울타리 2021 7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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