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아, 샬롬치과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7-29 11:02
조회
327


역삼역 근처에 ‘샬롬 치과’가 있습니다.
오래전 오규명 원장 때문에 알게 된 병원인데 벌써 십 년 넘게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임플란트를 하나 했고 두 개를 덧씌웠으며 이래저래 잔고장 큰 고장 난 치아 여러 개를 치료받았습니다. 오늘 간 건 지난주 받았던 잇몸 치료 후속과 스케일링 때문이었는데 늘 그렇듯이 아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몸에 힘을 주었는지 집에 와서 보니까 옷에 땀이 흥건하게 배었습니다.
난 치과가 무섭습니다.
이에다 무엇을 대기만 해도 온몸이 오그라 붙습니다.
더구나 마취를 하기 위해 바늘로 찌를 때면 눈앞이 아득해지기까지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치과 병원 의자에 영원히 묶여 있게 될 것입니다. 의사가 수술 도구를 사용해 찌이잉 소리가 나면 빨리 숫자를 세어야 울지 않고(?) 참아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빨리 세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오늘은 먼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세 시간 전 처음 시작한 필라델피아 복음변증학교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지구 반대편, 비행기로 가면 열네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사는 분들이 줌zoom에 서른다섯이나 들어와 있었습니다. 복음 변증 1과는 서편제를 통해 본 한의 문제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으로, 처음 시작한 거라 딱딱한 주제와 분위기였는데도 다들 잘 들어주었습니다. “참 귀한 강의였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준비된 변증적인 접근이지만, 이 강의는 믿는 자들에게도, 가정주부, 사업가, 심지어 목회자에게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되어지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저희 교회에서 네 가정의 젊은 엄마들이 처음 참여를 하는데, 자녀 양육에 지친 그들에게 생수가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필라 지부 고수지 자매 통해 받은 피드백 중 하나입니다. 감사. 또 감사. 참 기막힌 세상입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개발한 비대면 수업 프로그램 줌으로 방안에 앉아서도 지구 곳곳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양육도 가능해졌으니 말입니다.

전라도 보성 땅 소릿재 마을.
어느 해 가을, 소리를 하는 쉰 살 넘은 아비와 열다섯 정도의 어린 딸아이가 이곳에 이주하여 소리를 하며 살았는데 소리꾼 아비가 병들어 죽은 후 그 소리가 어린 딸에게 전승, 그 딸의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천상 아비의 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수군거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소리꾼에는 의붓딸 말고 의붓아들도 있었는데 아들에겐 북을, 딸에게는 소리를 가르쳐 데리고 다니다가 아들이 집을 나가 버리고 맙니다. 아들이 떠난 후 의붓아비는 약을 먹여 딸의 눈을 멀게 하는데 일부러 멀게 한 것은 좋은 소리를 가꾸기 위해 가슴에 말 못 할 한을 심어 줘야 했을 거라는, 암시를 주며 끝이 나는 영화가 서편제입니다.
서편제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남매의 가슴 아픈 한과 여기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예술을 그린 이청준 원작 임권택 감독의 작품입니다.
서편제는 소리꾼 아비의 죽음과 그 딸의 실명이 비극의 정점을 이루는데 실명의 원인에서 야기되는 두 가지 대비적 관계는 원한과 한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한에 대한 의식은 소리와 어우러져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습니다.

아,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치과도 아니고 서편제도 아니고 복음변증학교 사역 이야기입니다.
이 사역은 경성대 마지막 학기로 인해 이루어진 일이니, 하나님 섭리하심이 오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비기독교인이 95%나 되는 경성대 채플 강의를 맡은 건 두 해 전 일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원 수업받을 때부터 실감 나게 경험했던 미션 스쿨의 부정적 분위기를 잘 아는 터라 학생들에게 욕먹지 않으려고 부드럽게 수업을 이끌어 나갔더니 예상대로 큰 인기는 얻었지만, 복음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하에 마지막 학기는 제대로 복음을 변증해 보자고 마음먹을 무렵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지요. 대학에서 연락 오기를 캠퍼스에 오지 말고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하라고… 그때 줌ZOOM을 처음 알았습니다. 한 번에 125명의 학생이 ZOOM으로 연결, 비대면 수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서울에서 강의 영상을 찍어 줌 프로그램을 이용,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지요. 그때 제1강이 바로 서편제를 통해서 본 한의 문제, 구원의 문제였던 겁니다. 전 학기에 비하면 상당히 무거운 주제였습니다. 바로 직전에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법’ ‘마음속 슬픔 이겨내기’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 ‘타이타닉 영화 속 사랑’ 등이었는데 이번에는 첫 시간부터 ‘왜 구원이 필요한지 알아?’ 하는 식으로 강의가 진행되니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지요. 그러나 예상외로 학생들의 피드백은 뜨거웠고 이에 자신을 얻어 2강, 3강 진행하는 동안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3강쯤 나갔을까, 낮은울타리 간사들 사이에서 이 내용을 브이아이피 가족에게 소개하자는 건의가 나와 그렇게 해 보자 했는데, 이게 시기적으로 가장 필요 적절한 우리 다음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경성대는 경성대대로 진도가 나갔고, 복음변증학교는 복음변증학교대로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을 열자 부산 대구 LA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볼티모어에서 수강생이 들어와 함께 듣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서편제는 한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였지요.

이란,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또는 그에 처하는 편집증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 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를 말합니다. 원한은 억울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을 뜻하는데, 결국 한과 원한은 같은 범주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변증학교 1강을 한으로 잡은 것은 구원의 필요성을 말하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한을 조사하다 보니 원망이 최악 상태여서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미움과 복수의 응어리를 말한다, 라고 사전에 적혀 있더군요.
한은 화가 나고 억울한 상태로부터 비롯하여 좌절과 자책의 단계를 거쳐 체념에 이르는 변화 과정을 겪으며 슬픔과 피해 의식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고도 적혀 있었습니다.
한 맺힌 사람의 가슴에 덩어리 같은 게 있고 답답해서 한숨이 자주 나온다고 말하는 경우가 바로 이것입니다. 국회 의원도 한이 있다 말하고 영화배우도 한이 있다 말하고 사업하는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에서 시집온 사람들까지 한이 있다고 말하는 요즘. 정말이지 우리나라는 한이 넘쳐나는 한의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한의 뿌리로 샤머니즘을 드는 학자도 있고 지나친 신분 차별로 유명한 유교 문화, 부의 편재를 낳게 한 근대화, 역기능 가정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샤머니즘의 기본인 우주적 숙명론은 한을 팔자소관으로 돌리게 만들었죠. 팔자 의식이 한을 더욱 한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유목 민족 사회는 샤먼이 그 공동체 중심에 있어,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 죽고 신기神氣 있는 여자가 무를 맡아 한을 풀어 주는 역할을 했지만, 성경적 세계관으로 볼 때 영의 세계를 잘 모르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해결책이었죠.
여기서 나는 한 맺힌 사람들이 내세를 그리워한다는 것과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에 강의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현실도피나 팔자소관, 액땜이나 한풀이 굿으로 과연 이 문제가 해결될까, 라고 의문을 던지면서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모든 한을 씻어 내기에 적합하다는 논리를 펼쳐나갔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논리적으로 우리보다 나은 데가 있어 한의 문제를 굿판, 액땜, 살풀이춤으로 해결된다고 보지 않을 거란 예측이었는데 이게 맞았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는 건 대학생에게 씨도 안 먹히는 얘기인데도 샤머니즘이 기독교 안에까지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있다니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우선 기독교 안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불교의 49재나 빙의 치료, 방생 문제, 유교의 폐단을 없앤다고 남아 선호 사상 배격 같은 걸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들의 허세를 침착하게 다루어 나가기 시작했지요. 철학에서 강조하는 초자아, 초인내, 초월 명상 같은 것도 진부한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기독교의 은혜를 들고나오면 귀를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예수천당, 마귀지옥 식이었으면 인기 없는 수업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학생들은 자기가 수강 신청을 했으면서 기독교를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던 터라 어떻게든 자연스럽지 않으면 변증 수업을 망치게 될 거라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성경 속 은혜, 은총이란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설명하자 모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습니다. 서편제 영화가 보여지고 미션의 한 장면, 텔레비전 드라마의 ?글자 빠짐 등을 적절히 섞어 구원의 필요성을 설명해 나가면서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는 자연, 인간, 문화, 역사 등에 주어지는 하나님 선물이지만 특별 은총 영역에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수여되는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 은혜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여기에 다 쓸 수 없어 주요 내용만 요약했지만 적당한 곳에서 영화가 나오고 적당한 곳에서 음악이 들리고 적당한 곳에서 감성을 건드리는 화면 구성.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정말 놀랐습니다.
첫 시간부터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2교시에서는 부활이란 문제를 다루었고 3교시에서는 죄와 의를 다루었고 4교시에서는 성경적 종말론을 다루었는데도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면 말 다한 것 아닙니까?
이것을 가지고 크리스천 부모와 자녀에게도 오픈을 했는데 반응이 비슷하게 나왔다는 건 고대하던 변증 수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와우.

경성대는 앞으로 세 번의 수업이 남았습니다.
아마 이 글이 들어간 8월호가 인쇄되어 나올 때쯤 경성대에서의 수업은 모두 마쳐져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서울대를 비롯하여 서울여대, 아세아 연합신대, 총신대, 장신대, 고신대, 세종대 등 국내 대학뿐 아니라, 보스턴에 있는 고든 콘웰을 비롯하여 펜실바니아 주립대 등 해외 유명 캠퍼스에서의 모든 강의 사역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물론, 학교가 아닌 교회 강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이 생각나는군요. 들판에서 뛰놀던 소년 프란츠가 그날도 늦게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 쓰더니 프랑스어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울먹이던 장면. 아, 물론 나는 인생에서 수업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년에 걸려 대학 강단에만 서지 못할 뿐이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낮은울타리 줌 프로그램을 이용해 복음변증학교를 더욱 강화할 생각입니다. 이것을 위해 31년을 하나님이 훈련시키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중에도 낮은울타리 후원자 가족으로 남아 계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달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꽤 여러 분이 낮은울타리 구독 중단을 선언하셨습니다. 1989년 10월호를 시작으로 359권째 월간지를 만들면서 떠나간 이들에게 감사하고 남아 있는 분들에게는 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그 사랑과 관심 기도와 후원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 복음변증학교 사역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 드립니다. 이글을 정리하는 중 제40번째(대략) 저서인 『죽더라도 자식은 살리고 죽자』가 깨끗이 인쇄되어 나왔네요. 월간지 구독자들께 한 권씩 무료로 드리고 싶으나 이 책의 판매 대금이 저희 사역의 젖줄이라 그러지 못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사역의 스피릿인 5 JESUS POWER를 잘 정리해 놓았으니 바쁘신 중에도 일독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신청은 전화(02-515-0180)나 홈페이지로 하시기 바랍니다.

거리에 나가면 온통 마스크를 쓰고 바삐 걷는 사람들….
얼굴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는 그들을 스쳐 가면서 ‘아, 이제 거리에서 전도하고 버스에서 아는 척하는 시대는 지나갔구나….’
70년대 후반 CCC에서 배운 대로 사영리 책자를 들고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전도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거리나 공원이나 버스 안이나 학교에서 사영리를 읽어 주기만 해도 펑펑 울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던 시절은 까마득한 전설이 되어 버리고, 이제 어디를 봐도 기독교에 호의적이거나 진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에 낮은울타리 위해 중보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가족이 아직 꽤 많은 걸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납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이제부터는 복음 변증입니다. 물론 그 안에 회복 사역과 문화 사역이 융합되겠지만 복음을 변증하는 일에 남은 에너지를 다 쓸 생각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디모데에게는,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1:8”라는 말도 기억합니다. 세상에 사랑이 식어지고 욕망만 하늘을 찌를 듯 높아 가는 세상. 불안과 허무가 안개처럼 뒤덮여오는 세상에서 낮은울타리 독자들께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홈페이지에 담아 놓은 여러 자료와 사역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자녀를 건강하게 양육하시기를 빕니다. 나중에 천국에서 뵈면 감사의 뜻으로 밥 한 끼 사겠습니다. 부디 샬롬을.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20 8월호 편집인의 글

전체 2

  • 2020-08-21 22:59

  • 2020-08-25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