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흠스는 신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회복사역입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7-08-15 00:00
조회
359

흠스는 신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회복사역입니다

강학구/필라델피아 제일 장로교회 담임

 

1. 신상언 선교사와의 만남

내가 흠스를 처음 접한 것은 2년 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 흠스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흠스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에 신상언 선교사가 오신다기에 20여 년 전 한국에서 경험했던 그분의 명성 하나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참석했다. 괜찮은 문화 강의 정도를 기대하고...

그런데 강의 내용은 뜻밖에도 가정회복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 분이 가정 사역 강의를? 홈스도 아니고 흠스는 또 뭐야...’

막상 그 날 오랜만의 강의를 들었지만 워낙 폭이 넓고 깊은 내용에다 특유의 빠른 템포로 이루어져 제대로 소화를 못한 채 끝이 났다. 게다가 집회 전 나눠 준 반절지 크기 앞뒤로 빼곡히 적힌 강의안 내용은 방대하기 그지없었다.

‘이 안에 뭔가 분명히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모든 걸 철저히 파악한 뒤에야 결정하는 내 기질상 쉽게 받아들일 순 없지’

조국과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 미국 역사의 본고장 필라델피아에서 20여년 만에 만난 신선교사와의 조우는 그렇게 끝났다.

 

2. 필라델피아 흠스의 시작

이듬해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목회자 부부 대상으로 흠스를 열고 싶어 하는 낮은울타리 필라 지부장(박가석 사모)의 강력한 요청을 받게 되자 1년 전 들었던 알쏭달쏭 했던 그 ‘흠스’를 직접 경험해 본 뒤 평가를 해도 해 보자는 심산으로 우리 교회에서 목회자 흠스를 열자고 합의를 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필라델피아 흠스가 시작된 것이다. 

막상 목회자 흠스를 8주에 걸쳐 참가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강력한 도전은 아니었다. 아마 아버지 학교를 몇 년 전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짜릿한 감동이 반감되었기 때문인 것도 같았고 강의 내용이 쉽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영상으로 된 강의를 다 소화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특히 다림줄 이론).

그런데 얼떨결에 목회자 흠스를 마친 후 리더에게 주는 매뉴얼과 강의 전체를 천천히 리뷰해 본 결과 다른 가정 사역에서의 이론과 달리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확고한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것임을 확신하게 되자 마음에 강한 여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필요하냐 아니냐 보다 신학적이냐 아니냐를 따져야 하는 목회자로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3.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한 흠스

J. E. Adams 학파로 분류되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상담학(Christian Counseling & Educational Foundation)을 공부한 나에게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흠스 이론은 매력을 끌기에 충분했다.(CCEF의 커리큘럼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상담학 석사 과정이 학점을 공유할 정도로 보수적이고 개혁주의적 신학에 바탕을 둔 이론이다)

가벼운 상담과 나눔마저도 배제하고 예배를 전제로 해서 오로지 단 한 분 완전한 의사이신 하나님께 나가 직접 회복시켜 주시도록 간구하는 직면 기도 원칙이 나의 기질은 물론, 나의 신앙과 신학에 딱 맞는 이론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중 신상언 선교사 초청 “회복사역에서 문화교육까지”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다시 우리교회에서 열었고, 이어 그해 여름 신 선교사님을 우리교회 여전도회 수련회 강사로 초청하여 영상이 아닌, 얼굴과 얼굴을 맞댄 채 집중적인 강의를 들음으로 흠스 사역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되면서 같은 해 가을 필라델피아 흠스 2기(평신도들 대상으로는 사실상 1기) 사역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사실,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아니라 돌다리를 해체해 보고야 건너겠다는 나의 기질상 그해 가을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적극적인 아내의 요청에 못 이겨 시험적으로(?) 한 번 해 보자는데 동의를 했던 것이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 결심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그런데 그 흠스를 통해 우리 교회 교인들 안에 엄청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필라델피아 지역 안에서 안 다녀 본 교회가 없을 정도로 교회 정착을 힘들어하던 부부가 단순히 음식 봉사나 하겠다고 왔다가 첫날 강의를 귀동냥으로 듣더니 바로 다음 주에 두 분 다 정식으로 등록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물론, 여섯 째 주 강의 후 직면 시간에 막혔던 기도가 봇물처럼 터지더니 두 가지 큰 기도제목이 응답 되는 전리품까지 얻게 되자 괄목할만한 역동성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라면 내 마음이 흔들릴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4. 대 폭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점점 더 흠스 사역(가장 성경적이라는)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자 흠스의 기본 원리를 설교에 적용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신 선교사님이 주고 간 흠스 내용 전부를 새롭게 경청한 뒤 30분짜리 설교로 만들어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총 일곱 번의 설교를 시도해 보기까지 했다. 그 후 나는 당회원 한 분 한 분을 강력히 설득하여 앞으로 낮은 울타리 사역은 당회의 별다른 의결을 거치지 않고도 교회에 정착시키기로 마음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금년 봄 필라 흠스 3기가 우리 교회에서 속개하게 되었다.

2기 참석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3기에는 더 많은 분들, 더 다양한 분들이 참석했다.

앞에 소개했던 부부는 참가비를 대신 지불하면서까지 어려움에 처한 친구 부부를 등록하게 했고 나의 아내는 그동안 이러저러하게 만난 주위의 아픈 분들 명단을 놓고 기도하면서 개인적으로 접촉한 뒤 흠스 참여를 권하기 시작했는데 웬만해선 마음을 열지 않으려던 분들이 하나씩 참여하여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특히 7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큰 충격에 싸여 힘들어하고 있던 자매의 회복은 정말 놀라웠다. 이 자매는 죽은 남편이 자기를 떠나지 않고 육체적으로 함께 있는 것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한 자매였다. 아내로부터 받은 사랑의 강권에 못 이겨 딱 한 번 참석해 보고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하고 왔는데 첫날 흠스 강의만 듣고 모임을 빠져나가 집 주차장에 이르러 주차를 하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돌덩이 같은 게 터져 나오면서 차안에서 통곡의 기도를 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 자매는 너무 급해 직면이 그런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입을 모았다. 그 이후 그 자매가 보여준 평안의 모습은 기적 그 자체였다. 더구나 그날 이후로 자기에게 붙어있던 남편의 영혼이 떠나갔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 부부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흠스에서 한 번의 강의만 듣고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8주차를 고스란히 경험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회복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싶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선교사였지만 부부 갈등, 자녀와의 갈등 문제로 고민하다가 단순히 ‘살기 위해’ 스스로 찾아왔다는 유명 선교단체의 선교사 부부, 같은 교회 교인에게 사기 당해 중풍과 시력 장애까지 얻어 마음의 분노가 가득 찬 부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들에게서 가시적인 회복의 결과가 봇물 터지듯 일어나자 나의 마음은 점점 더 확신으로 차오르게 되었다.

 

5. 점점 깊어가는 확신

물론, 이와 유사한 일들은 전에 내가 경험했던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심지어 뜨레스디아스라는 모임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나 그런 사역들과 흠스의 결정적 차이는 하나님 중심이냐 사람 중심이냐 하는 것과 지성소 예배가 핵심이냐 아니냐에 있었다. 흠스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예배를 통해 지성소에 들어가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려는 어떤 시도, 그룹 안에서 사람끼리의 나눔은 없고 오직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만 있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여타의 사역보다 훨씬 심플해 보이고 진도는 더디게 나갈 것처럼 보이는 데다 나눔에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쉽게 경험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렇지, 하나님만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자라는 신학에 기초한 흠스의 직면 기도와 지성소 예배가 답이라는 것은 일선 목회자로서 흠스를 직접 체험하면 할수록 드는 확신이다.

사실 오늘의 목회현장에서 고민하는 것은 필요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역들이 성경적이지 않거나 인본주의와 혼합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선택하기 힘든 것은 결과는 있지만 과정에서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다.

아니면 성도가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한다던가 경비가 많이 든다던가 하는...

그러나 흠스는 이런 목회자로서의 고민을 말끔히 씻어준 대단히 반가운 사역이었다.

확인하고 확인할수록 성경적이었다.

거기다 성령의 역동성까지 있었다.

 

필라에서의 첫 만남 이후 확신을 못해 주저하던 나에게 흠스 강의(절대로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 전부를 선뜻 전해 주신 신선교사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두 번의 적은 시도에도 눈에 보이는 강력한 증거로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면을 빌어 목회자의 양심을 걸고 간증하고 싶은 것은

다윗의 손에 들려진 물맷돌처럼,

흠스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임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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