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멤피스에서 만난 엘비스 프레슬리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4-11-12 10:05
조회
392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하와이 호놀룰루로 해서 테네시주의 멤피스, 뉴저지와 메릴랜드의 볼티모어, 노스 캐롤라이나의 랄리까지 무려 다섯 주를 돌아 집으로 왔습니다.

 

그동안 머무는 곳에서 간간이 피터의 편지를 쓰고 싶었으나 빠듯한 일정과 체류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야 편지함을 열게 되었네요.

 

이번에도 가는 곳 마다 주님의 은혜와 지체들의 사랑을 풍성하게 경험하였음은 물론입니다.

하와이에서는 이세 삼세 아이들을 위한 큐 밀리터리 캠프가 은혜 가운데 마쳐졌고 이어서 큐 밀리터리 스페셜팀이 결성되었는가 하면 멤피스의 3일간 부흥집회에는 도전에서 오는 은혜를, 뉴저지와 볼티모어에서는 부모와 가정을 향하신 주님의 섭리하심을, 볼티모어에서 기차를 타고 7시간 40분만에 도착한 랄리에서는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랄리Raleigh 한인장로교회는 담임 목사님이 새로 오신지 얼마 안 되는 데다 여러가지 행사가 겹쳐 세미나 형식의 집회 갖기가 쉽지 않았으나 나이 많으신 어른 세대는 물론 금요모임에서의 청년들에게 은혜의 단비가 내려 다음 집회를 예정 받을 정도로 과분한 대우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나만큼 사역자와 나그네로서의 삶을 풍족하게 경험하고 사는 이도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놀룰루 코너스톤 교회의 구제영 목사님은 나에게 바울과 같은 전도자로 불러주셨다지만 감히 사도 바울에게는 비교할 바가 못 되고 그냥 부름 받은 떠돌이에다 흠과 흉이 많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순회 사역자 정도로 불리움 받는다면 족할 뿐입니다.

 

요즘 부름 받아 가는 곳마다 전하는 메시지는 <건강함>과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입에서는 소명이나 사역의 중요성 보다 생명이나 생명력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과 주님 주시는 통찰력을 자식에게 흘려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하려는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마음 뺏기는 것의 위험성과 마음 지키는 것의 중요성(잠4:23)을

2.생명력과 통찰력 유지의 중요함을,

3.생명력 통찰력 분별력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가를,

4.거기에 정체성 세계관 안정감 다림줄이라는 주님 은혜의 결과물을 부모와 자녀에게 소개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이름하여 건강하게 되는 4가지 요건이 되는 셈이지요.

 

결코 자화자찬이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한 시간 한 시간이 전보다 풍성하고 은혜로워짐을 경험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생명력에 관해 전할 때마다 내 자신이 정리되고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하니 얼마나 좋은지요.

처음 가는 곳, 혹은 처음 보는 이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노라면 전해지는 것 보다 거꾸로 내가 받는 은혜로 인해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를 깜빡깜빡 잊어버리게 됩니다.

 

때로는 시차 때문에 서서도 눈이 감기고 때로는 새로운 숙소나 새로운 음식, 기후에 적응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막연함 두려움이나 회의감 같은 것이 밀려올 때도 있으나 매번 그런 것들이 다가오는 은혜의 파도를 막아내지 못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번에도 그러했습니다. 나가 있는 기간이 장기간인데다 무거운 짐을 혼자 들고 지고 새로운 공항, 새로운 터미널을 옮겨다녀야 하는 육체적 노동까지 겹쳐 다른 때보다 피로감이 극심했으나 전해지는 은혜 보다 받는 은혜로 인해 그 모든 피로는 감격과 감동으로 변해 버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 방문지인 멤피스에서 인상 깊었던 것 하나,

시간이 없는 중에도 부랴부랴 코나 열방대학에서 디티에스 중에 들었던 주기도문송의 주인공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가를 방문하게 되었던 점입니다.

그 전 날 저녁 강의 전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현장을 돌아본 것도 다소간의 충격이었으나 마지막 날 엘비스의 생가를 돌아보게 된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에 죽은지 그렇게 오래 된 사람을 아직도 기억하다 못해 숭배하러 모여드는 사람들의 인파(인파라는 표현이 맞습니다)라니...

그가 생전에 쓰던 식기 하나 나이프와 냅킨 하나에서도 경의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

그가 자던 침대, 그가 타던 차, 그가 마시던 찻잔 하나하나를 숭배의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의 얼굴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장에서 내가 본 엘비스는 신이었고 그의 음악은 종교였습니다.

 

엘비스의 생가를 둘러보는 데만 두세시간, 마당에 있는 전용기에까지 들어갔다 나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는 투어였지만 나는 떠나야 하는 한계도 있고 해서 아주 짧게 투어를 마쳤습니다. 

어느 대통령 어느 왕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살다가 약관의 사십대에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가족 무덤 앞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권력, 명예, 인기, 돈이란 무엇인가 하는 케케 묵은 주제가 떠올랐던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그의 무덤 앞에 세워진 십자가와 쓰여진 글귀는 한마디로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는 솔로몬의 독백을 생각 나게 했습니다.

특히 그가 탔었다는 갖가지 모델의 최고급 승용차며 일본제 오토바이, 딸에게 주었다던 어마어마한 전용기 안까지 들어갔다 나오며 그에 관해 추억하는 일은 나에게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의 삶은 헛됨>이라는 한마디였습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잘 먹고 잘 살려고 온 게 아니라 하나님 백성 되는 훈련 받으러 왔다>는 메시지를 더 강력히 외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려는 마음이나  이 땅에서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잘 못 되었다기 보다 그것을 추구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위험하고 헛된 추구인가를 엘비스는 죽어서도 잘 웅변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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