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자식에게 잔소리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4-12-01 10:05
조회
404

미국

피츠버그의대와 UC버클리, 하버드대의 공동 연구팀이 평균 연령 14세의 어린이 32명에게

자신들 어머니의 잔소리를 녹음한 음성을 30초 정도 들려주고

뇌의 활성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시행했다고 하는군요.

 


연구팀이 주목한 뇌 영역은

①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한 영역(대뇌변연계 등)과

② 감정 조절에 관련한 영역(전두엽),

③ 타인의 관점과 사고 방식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한 영역(두정엽과 측두엽의 접합부)까지

 3개라고 합니다.

 

연구결과는 이렇습니다.
아이들이 잔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은

①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한 영역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②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영역과

③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는데 관여하는 영역의 활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이는 잔소리를 듣게 된 아이들의 뇌가 사회적 인식 처리를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부모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있는 것이지요.

 

어린아이가 만 오세가 될 때까지 부모에게 최소 만 번 이상의 질문을 한다는데 사춘기가 되면 그 모든 질문이 뚝 끊어지는 이유가 일부 설명된 셈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communication소통입니다.

함께의 라틴어 cum조달하다, 도와주다 란 뜻의 라틴어 munire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조승연 오리진 보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의식 관습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는 도시국가라 공동체끼리 뭉쳐야 살 수 있다는 의식이 투철했지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책을 읽어보면 그리스의 작은 도시 국가들이 당대 최고의 제국이던 페르시아의 파상공격에도

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부자들은 돈을, 학자들은 리더십을, 상인들은 물자를, 일반인들은 몸바쳐 싸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국가 위시에는 각자 자기의 소중한 것들을 내놓아 상생하는 게 공동체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것을 함께cum 쓰기 위해 조달하는 것munire이 바로 공동체community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커뮤니티가 잘 유지되려면 개인간 정보교환이 무척 중요했지요.

그 당시 사람들은 정치지도자를 뽑을 때 그의 인품, 리더십, 자질 등에 대해 동네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리더를 잘 못 뽑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어 시민들은 후보자들의 정보를 철저히 공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아고라, 로마인들은 포럼이라고 부르던 동네 광장에 자주 모여 개개인이 가진 정보들을 서로 나누며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 역시 서로 정보를 조달하는 행동이어서 점차 community의 동사형인 communicate라고 부르게 되어 오늘날까지 소통하다 라고 쓰이게 됐다는 것입니다. 

 

N세대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1.이해과정

2.접속과정

3.소통과정

4.양육과정

5.파송과정으로 나누어

부모와 교사들에게 설명해 드리곤 합니다.

 

이해과정에서는 선교대상자로서의 N세대를 이해할 것,

접속과정에서는 접속의 장애요인을 먼저 제거하되 특히 상처문제를 해결할 것,

소통과정에서는 선교원리를 적용할 것. 즉 가급적 상대방의 언어와 문화를 사용할 것.

양육과정에서는 생명력 사역과 통찰력 교육을 구체화할 것.

그리고 파송단계에서는 이중문화지도자로 세상에 내보낼 것 등입니다.

여기가 바로 낮은울타리 사역의 초점이자 핵심이기도 하지요. 

 

소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비N세대와 N세대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통이 끊어지면 관계도 끊어지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생명력은 흘러가지 않게 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와 가정에서 이런 비극을 겪고 있는지 말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역을 한마디로 말하면 소통이요 내가 하고자 힘쓰는 것도 소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나 선배로부터 소통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나로서는 무척 어려운 과제이기도 합니다.

 

강의가 주요사역인 나는 지난 한 달 동안에도 소통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부산 수영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소통도 그렇고 북경 이십일세기 교회에서의 소통도 그렇습니다.

특히 이십일세기 교회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최근 방문한 강사 중 최고였다는 찬사를 온 몸에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 때문에 다음 달 다시 재방문해 달라는 부탁도 있었습니다.

수강생과의 소통에 성공하면 반응이 파도처럼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이번 북경 방문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씁쓸한 상황도 경험합니다. 

중독과 동성애 변증을 주제로 지방 순회 세미나를 가지면서 꽉 막혀 있는 교회나 단체들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가 성도를 보내주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자녀를 키우는데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해도 마음 문을 닫고 있는 교회나 개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울산의 어떤 교회는 어떻게 신성한 교회에서 동성애 변증 같은 주제를 다룰 수 있느냐면서 성도는 커녕 교회당 빌려주는 걸 아예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교회는 필시 다음세대가 숨 막혀 죽어갈 것입니다.

가족 안에서는 물론 성도와 성도 간에도 이차대화를 전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차대화는 조금 하겠지요.

그러나 진짜 대화, 커뮤니케이션은 이차대화를 말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용어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시작이 됐다고 해도

감정이나 핵심감정을 다루는 이차대화를 하지 않는 한 전부

잔소리가십gossip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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