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주님, 감사합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4-12-16 10:05
조회
387

어제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시골교회 교사 강습회에 강의를 갔다 왔습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최악의 날씨라고 예보가 되어 있어서 가기 전부터 고민했던 게 '무얼 타고 가나?'였습니다.

서울에만 눈이 최고 8센티나 온다고 하고 그 밖의 지방엔 최고 20센티나 눈이 온다는 예보에 차를 가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대중교통을 알아보니 돌아도 한참 돌아가는 코스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가용으로 가면 한 시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인데 기차로 가면 사당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4호선 전철로 서울역까지 간 뒤 무궁화호를 타고 평택역에 내리면 거기서부터 교회 차로 30분이나 걸려야 강의장소에 도착한다니, 가는 건 그래도 문제가 없으나 자정 넘으면 대중교통이 끊어짐으로 올 때가 문제일 것 같아 과감히 자가용을 이용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저녁 7시에 강의 시작인데 4시도 되기 전에 길을 떠났죠.

남태령을 지나 과천으로 해서 수원 고속화도로 쪽으로 나가는데 구름이 잔뜩 껴 컴컴한 날씨에 눈이 섞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벌써부터 긴장되기 시작했죠.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란 표현이 딱 맞는 군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습니다. 낮은울타리 시작하고 26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참 많은 곳에 강의를 다녔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길이 얼어붙지 않아 집을 떠난지 1시간 20분 여만에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작년에 처음 찾아왔을 때 내비게이션이 공동묘지 앞에서 멈춰 혼비백산했던 곳입니다.

가끔씩 보내준 주소를 입력하면 엉뚱한 곳이 나오곤 하는데 그 날이 바로 그랬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라는 내비게이션 음성을 듣고 차를 세웠더니 으슥한 산길 공동묘지 앞이지 뭡니까?

 

그 때는 늦여름이라 도착한 시간이 깜깜하지 않아 멀리 보이는 십자가를 향해 산길 논길 굽이돌아 교회를 찾아갔는데 이상하게 조용하여 혼자 있는 사모님께 여쭈어보니 강의장소가 여기가 아니라는 말. 다시 알려준 주소로 차를 몰아 찾아가는데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이 공사장과 겹치는 바람에 진흙구덩이에 빠지고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하며 고생고생 찾아갔던 기억이 추운 날씨와 겹쳐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강의장소인 교회는 동네 변두리 한적한 곳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는 데다 좁은 길로만 연결이 되어 있어 자칫 차가 논길로 빠질 수 있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길은 좁고 군데군데 눈이나 얼음으로 덮여있어 운전을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정대로 7시에 강의가 시작 되었죠

날씨 탓인지 예상했던 숫자는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교사들이 교육관을 가득 채웠습니다.

밖의 날씨가 어떤 것도 잊고 열심히 아주 열심히 강의를 해나갔습니다.

 

당신의 자녀는 건강하십니까?

 

도전적인 질문이었죠

자녀나 제자가 건강하기 위해 부모 교사가 건강해 져야 하는데 건강함의 첫번 척도는 마음 뺏기지 않는 것,

잠언 4장 23절은 마음 뺏기면 생명 뺏긴다 했으니 생명과 생명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지키도록 도와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대체물이 너무나 많다는 것.

유혹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

무엇보다 미디어가 욕망을 자극하고 키워나가기 쉬운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

역기능 가정에서 상처 받고 아파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 교회학교가 옛날 수준에 머물러 있어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일어난다는 것.

 

내가 워낙 말이 빠른데다 용어들이 자주 쓰는 게 아니어서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강의에 욕심을 내는 게 나의 고질병입니다.

거기다 교육이란 용어 자체가 자칫하면 인본주의로 흐를 위험마저 있어 역할만 강조하다가 복음의 본질을 벗어나면 큰일이라는 압박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겠지요.

 

마음 뺏기는 문제 뿐 아니라 생명력과 통찰력과 분별력을 키우는 문제, 정체성 세계관 안정감 다림줄을 세워 나가는 문제 등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어떻게 생명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 것인지...

말하는 저나 듣는 분들이나 몹시 숙연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9시 반이 넘어 강의를 끝냈고 기념사진까지 찍고 나니 열시가 가까워 얼른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런, 깜빡했던 날씨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네요. 집에 돌아가는 게 문제였습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꼬불꼬불 논길을 겨우 빠져나와 동탄 봉담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눈발이 날리는데 가만히 보니 길이 살짝 얼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내 몸은 초긴장 상태가 되어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차하면 차가 미끌어져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두운 하늘 한 가운데 최저 속도가 오십키로 이상이라는 표지판이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엉금엉금 기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대부분의 도로에 가로등이 없는데다 공사구간이 많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도로를 이탈하거나 길막이로 세워놓은 시설물을 들이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제자가 사 준 차는 수명을 다 해 가는지 언제부턴가  앓는 짐승처럼 그르릉 거리기 시작했고 의자의 스프링은 노인의 그것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날씨에 중간에 차가 서 버리기라도 하면... 아예 상상도 하기 싫은 시나리오였습니다. 왠일인지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확하고 나가는 바람에 다시 설정하느라 잠시 휘청거리기도 했습니다.

 

등에 식은 땀이 흘렀습니다.

눈이 어찌나 많이 오는지 눈을 크게 뜨고 와이퍼를 최고 빠른 속도로 돌려도 앞이 잘 안보였습니다.

바람을 타는지 이따끔씩 차는 뒤뚱거리고

"오, 주님" 이란 탄식인지 기도인지 모를 단어가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주님.

그러고 보니 이십 육년동안 수도 없이 밤 길을 운전하고 다녔는데 사고 한 번 안내게 하신 주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그동안 나는 주님이 늘 나와 동행하신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위험구간에서도 지켜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날씨가 화창하거나 눈 앞이 환할 때는 그런 사실을 잠시 잊기도 하지만 오늘 같은 밤에는 절대로 잊어먹을 수가 없습니다.

 

평택 길음리에서 서울 봉천동까지 오는 동안 인생이 십년은 길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다녀본 길로 치면 그리 멀지도 않은 길을 내내 나는 주님의 팔에 안겨서 와야 했습니다.

내가 운전한 게 아니라 주님이 운전하신 것입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차가 미끌어질 뻔 했는데 사고가 안 난 것은 내 운전실력이 아니라 주님이 지켜주신 덕분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아차 하면 끝날 수 있는 인생인데 하루 더 연장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아직 이 땅에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신앙은 아직도 초보 중에 초보입니다.

남에게는 믿음 가지고 살라고 강요하면서 내게는 믿음이 눈꼽만큼도 없다는 걸 이럴 때 실감합니다.

 

드디어 험한 밤길을 달려 남태령을 넘어 사당사거리에 이르자 어깨에 들어있던 힘이 스르르 빠지는데 "이젠 살았다" 라고 한숨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살았다, 라니....

이젠 살았다, 라니...

 

오늘 같은 밤은 특히나 천국 가는 게 기다려져야 할 텐데 아직도 죽는 게 무서우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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