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살려야 합니다. 제발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30 09:56
조회
21

죽더라도 자식은 살리고 죽자
이 땅의 자식들이 죽어 간다는 증거 중 하나는 중독입니다.
어느새 다가온 겨울처럼 어린이 중독자가 이렇게 급속도로 많아질 줄 정말 몰랐습니다. 먹물이지요. 중독은.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교회 상공에 먹구름이 흩날립니다. 중독은 그 선명하던 경계선마저 희미해지게 만듭니다. 타다 만 휴지처럼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재로 흩날리고 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총격 사건, 뉴질랜드 모스크 테러, 서울 PC방 살인 사건 등 각국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는 사건의 배경에 게임 중독이 걸쳐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몇 년 전 일본 고베시의 초등학생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은 놀랍게도 열네 살의 중학생이었습니다. 그 중학생은 지독한 컴퓨터 게임 중독자였다지요. 물론 한국에서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중독에 관한 한 국적은 아무 의미가 없지요. 흐린 물속을 떼 지어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리셋 증후군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셋 증후군에 걸리면 심각한 범죄 행위인데도 게임의 일환으로 착각하거나, 사람을 죽여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망상, 남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죄책감도 리셋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겁니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정말 아프다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 중독을 염려하는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의 뇌가 망가지고 있어 미래가 캄캄하다고 우려합니다. 중독자가 되면 뇌에 문제가 생겨 주의가 산만해지고 감정 조절이 서툴러지며 잔인한 폭력성에 창의력마저 결여돼 남은 인생이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모리 아키오라는 학자는 어린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빠질 경우 약년성若年性,젊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진다고 경고합니다.
미국 록펠러 대학에서 대뇌피질의 체성 감각령體城感覺領에 관해 연구했던 그가 직접 게임 중인 아동을 검사했더니 뇌파가 치매 상태와 같은 것으로 나왔다며 기막혀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치매라니. 누구의 말처럼 망자의 혀가 날름거리는 세상인지….
모리에 의하면 동물의 뇌에는 전두엽 피질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이라고 판단되면 즉시 공격하도록 뇌 구조가 짜여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동물은 급박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자율 신경계에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심박수와 혈압이 최고조로 상승하게 되는데 게임 하는 아이도 이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며, 속히 멈추지 않을 경우 매우 위험해진다고 말합니다.
다른 게임들도 대동소이하지만, 롤플레잉 같은 게임은 정말 위험하다고 그는 외칩니다. 귀를 때리는 음향과 최고급 영상 화면 앞에서 무시무시한 공포를 감당하며 적을 피해 도망가거나 잔인하게 죽여야 하는 이 게임은 도파민이나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흥분성 화학 물질을 분수처럼 배출시켜 뇌 전체를 덮어 버리는데 이는 공황 상태나 중증 불안 상태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중독에 빠진다, 자식의 뇌가 망가진다, 자식이 교회를 떠난다, 생명력, 통찰력, 분별력, 창의력, 변증력을 잃어버린다. 모두 좀비의 특징입니다.
한때 유명한 국회 의원이 국회에서 우리나라 게임 중독자수를 240만이라고 발표했는데 그게 맞다면 코로나바이러스는 댈 것도 아닙니다. 게임 중독 대부분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코로나가 폐를 멈추게 한다면 이건 심장을 멈추게 하는 병입니다. 이제 모든 부모는 자식을 지구 온난화로 죽이던지 바이러스로 죽이던지 게임 중독으로 죽이던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난감하지요. 베르디의 성악 작법은 한 인물의 영혼을 줌인으로 쫓아가는 카메라라고 했던가요. 살리는 방법보다 죽이는 방법이 더 많은 세상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지요. 무슨 소리. 누가 뭐래도 자식을 먼저 죽이면 안 됩니다. 부모인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식을 먼저 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행인 건 지구 온난화와 바이러스는 막을 수 없지만, 중독문제 만큼은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은 정말 심각하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들은 강의에 의하면 중독은 패가망신입니다.
게임 중독은 뇌신경 회로가 형성되는 유아기에 결정되기 때문에 건강한 부모라면 자식이 어렸을 때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도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발달기의 어린아이들은 어떤 정보든 가리지 않고 수집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어린아이를 컴퓨터 앞에 앉히거나 TV 앞에 방치하는 건 중독은 물론, 정보의 범람을 초래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텔레비전, 만화, 컴퓨터, 스마트폰을 통해 입력되는 메시지, 메타포, 이미지가 욕망을 자극할 경우 좀비 될 확률은 말할 수 없이 높아집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밤새도록 책상에 앉아 컴퓨터 게임만 하는 자녀를 둔 부모는 얼마나 애가 탈까요. 애가 타다 못해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 도대체 잠도 재워 주고 학교도 보내 주고 사달라는 건 다 사 주었는데 게임 중독이라니 이해가 안 갑니다. 옛날 같으면 밥만 차려 줘도 좋아서 눈이 튀어 나왔는데 요즘엔 뭘 해 줘도 불만입니다. 옛날엔 아이나 어른이나 할 일이 없어 심심했는데,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만들어 낸 이후에는 시간이 모자라 잠자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전철에 있는 사람 모두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는 모습 보면 좀비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가만히 있던 좀비가 달려들지 무섭기도 합니다. 전철 안에서 좀비가 달려들면 피할 데도 없지요. 이젠 십자가 대신 스마트폰으로 막아 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좀비가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올 때 최신 스마트폰 내밀면 얼른 빼앗아 도망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 사람 피보다 더 맛있는데 뭐 하러 질긴 내 목살을 뜯으려 하겠습니까?

결핍, 상처, 욕망이라는 트리오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면서 미디어 속 좀비가 급속도로 진화한 이유는 관객들이 기존 모습에 익숙해지면서 공포감이나 재미를 덜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영화 속 좀비들이 뛰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전투력은 향상되어 공포감은 배가 되었습니다. 매운맛에 중독되듯 아이들이 공포감에 중독되는 모습은 그 자체가 또 다른 공포지요. 좀비가 업그레이드 될수록 공포에 질식당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나는 중독의 원인인 상처를 가정에서 받기 시작한다는 걸 심각한 문제로 봅니다.
상처란 결핍이지요. 결핍은 욕망을 불러옵니다. 욕망과 상처. 상처와 욕망. 이 둘은 말하자면 기생충이요, 바이러스입니다. 기생충이나 바이러스나 숙주를 필요로 합니다. 노인이면 몰라도 어린아이를 숙주로 삼는 건 비겁한 일이지만 누굴 탓할 게 못 됩니다. 더구나 예수 생명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성도의 자녀가 생명력, 통찰력 부재로 인한 숙주 됨은 비극 중의 비극이지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과 근세(박명훈)는 박사장(이선균)을 숙주 삼아 편하게 살려다 서로 물고 뜯어 파멸에 이르렀습니다. 혹시 우리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좀비되기 전에 살릴 수 있다
좀비는 행동 양식, 지능 수준 등에 따라 종류가 나눠지는데 가장 고전적인 형태는 로메로 영화에서처럼 행동이 느리고 지능이 없는 좀비입니다. 죽은 뒤 부패한 상태에서 되살아난 것이므로 행동이 둔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몸 일부가 절단되어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마치 깨지 못하는 꿈을 꾸는 것처럼.
그러나 감독들의 이론이 맞다면 좀비는 점점 다양한 종으로 변신할 것입니다. 로메로 영화 속 좀비는 벌써 옛날이야기가 되겠지요.
좀비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피로감이나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엄청난 지구력과 끈기를 가지고 있으며 물리적으로 극단의 한계까지 움직인다는 게 좀비를 연구한 감독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이런 특성은 좀비와 대처하는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니아들이 밤낮으로 연구한 특징을 보면 좀비에게 회복 기능이 없어 한 번 망가진 부분은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손가락 하나 남을 때까지 끈질기게 덤벼든다는 것. 신체가 망가져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좀비를 없애려면 뇌를 파괴하는 수밖에 없는데 다른 집 좀비라면 몰라도 우리 집 좀비 잡으려고 뇌에다 총을 쏘는 일은 차마 못할 게 아닌가요.

주님의 부탁
주님은 내 아이들에게 제발 제대로 된 복음을 먹이라고 부탁하십니다.
주님은 내 아이들이 당신의 성품을 가져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내 아이들에게 세상 정신에 속지 않도록 문화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르시는 하나님. 응답하는 인간. 낮은울타리 사역에 이 셋이 다 들어 있는데 아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왜일까요?

낙진에 대하여
나는 영화감독들이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도 좀비 영화감독을 천재 중의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 재산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저런 캐릭터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좀비 영화에 관객이 몰려드는 건 순전히 천재 감독의 공이지요. 씨제이나 바른손이 아닙니다.
그런데 부두교에 등장하는 좀비와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좀비는 다릅니다.
부두교에서는 주술로 조종당하는 존재로 나오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방사능 오염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앗, 그렇다면 나도 천재?
왜냐하면, 나는 오래전부터 핵폭발 이후에 발생하는 방사능 낙진 산성비를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 프로 내가 창작한 건 아닙니다. 의존적 창의력의 결과이지요. 오스 기니스Os Guinness를 모방한 것입니다. 오스 기니스를 만난 건 미국 뉴저지에서였습니다. 오스 기니스에 의하면 핵폭발은 현대화와 탈현대화 즉 포스트모던을 말합니다. 현대화 생성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포스트모던이라는 핵폭발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진리는 더욱 부정당하고 비진리가 진리의 자리를 꿰차는 현실에 이용당할 생명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포스트모던이라는 핵폭발이 일어나자 무시무시한 방사능이 퍼지고 엄청난 산성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진리의 산성비. 철학의 산성비. 사상의 산성비. 문화의 산성비가 폭우처럼 내리고 비성경적 세계관이라는 낙진도 비듬처럼 함께 내렸습니다. 가히 세계관 전쟁이 영적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갉아먹는 좀비가 이 틈을 놓칠 리 없지요. 좀비 바이러스의 등장은 생각보다 어눌했지만 결과는 화려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확진자를 만들어 세를 부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들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지요. 환자 접촉과 면역력 약화가 문제인데 구원의 확신 결여 등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위험을 각오해야 될 것입니다. 혼자 상상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생각이 쉽게 나쁜 쪽으로 흐르니까…. 세계관이 문제입니다. 세계관이 잘못 되면 정체성이 잘못 되고 정체성이 잘못 되면 생명력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왜 다음 세대 양육의 방향을 5JESUS POWER로 잡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시는지요? 세계관을 이론으로 공부해 가지고는 포스트모던에 따라오는 산성비와 낙진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과거보다 더 강한 능력,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좀비가 되지 않으려는 방어적 자세보다 좀비까지 회복시키는 파워를 주님께 받을 수 있는 양육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힘은 5JESUS POWER.

설을 이해 못하면 초보자다
이 시점에서 나는 우리가 그동안 써 왔던 세계관이란 용어 대신 생명력, 통찰력, 분별력, 창의력, 변증력으로 바꿔 사용하기를 권면합니다. 세계관하면 주체가 나지만 통찰력하면 주체가 주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들 ‘내가 세계관을 바꾼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생명력, 통찰력, 분별력, 창의력, 변증력은 주님이 주셔야 하는 것. 노력해서 될 게 있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노력하면 좋은 게 있고 노력하면 죄가 되는 게 있습니다. 역설을 이해 못하면 초보자지요. 예를 들면 죽어야 산다,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도 자충성과 역동성 신념과 의존이 갈라서는 것입니다. 절대 의존은 절대 주권을 전제로 하고 절대 의존은 절대 고독을 낳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은혜는 내가 사라진 지점에서 부어진다는 걸 잊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비롯하여 통찰력, 분별력, 창의력, 변증력 부족하면 좀비가 되는 거고 죽는 거다”라고 말해 주면 대뜸, 그게 죽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상관있습니다. 생명을 얻었어도 생명력이 없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 내면에서 육의 굿판이 벌어지고 자충성은 상처의 파도를 타며 욕망은 도파민의 향연을 즐기는데, 어떻게 해야 생명력으로 충만해지는지 어떻게 해야 통찰력, 분별력, 창의력, 변증력으로 충만해지는지 모른다면 이미 정상이 아닌 겁니다. 문제는 이렇게 정상 아닌 부모들이 교회에 너무 많다고 말해 줘도 고개만 갸웃거립니다. 자식들이 좀비 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부모가 좀비 되는 게 더 무서운 이유입니다.

생명력이 무엇인가?
자동차에 필요한 휘발유입니다. 좀비 바이러스를 이기는 힘.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소명을 깨닫고 소명대로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밥이고, 생수입니다. 오직 복음에서만 얻을 수 있는 양식입니다.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으니까 예수가 밥이요 물입니다. 예수를 먹으려면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연합이 되어야 그와 같이 죽고 그와 같이 부활하게 됩니다롬6:5.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끝이 아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부활을 경험한 뒤 머리에서 발끝까지 마디와 힘줄로 공급을 받아 건강한 존재로 자라가는 것입니다골2:19.
자녀에게 생명력을 얻게 해 주는 일은 간단합니다. 생명력 얻는 곳으로 가게 하면 됩니다. 그게 지성소입니다. 가서 가만히 있어도 되지만, 직면 기도, 호흡 기도를 통해 마음을 지성소로 만들어 나오면 됩니다렘31:33. 하긴 얘기는 쉽지만 실습은 어렵지요. 골프를 이론으로 알아도 퍼팅할 때 번번이 실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예배도 실습이 필요합니다. 생명력 훈련을 통해 어린아이들이, 묵시 속에서 완성된 생명력이 역사 속에서 자라가는 걸 보는 건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신비를 볼 수 없으니 힘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20 7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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