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18 09:49
조회
20

 

고난에 대하여
자식 키우는 게 고난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건 원인이 복합적입니다.
요즘 아이들 말 안 듣는 건 기본이지요. 덩치를 굽힌 채 느릿느릿 부모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든 가정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아이가 사춘기로 설정된 어떤 시기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항변해도 원래 그런 것이라 세뇌된 탓이기도 합니다. 또래 문화에 끌려 양심 죽이는 일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저지르는가 하면, 욕하고 거짓말하고 부모의 권위에 반항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풍조에 잠겨 삽니다. 무엇보다 중독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인터넷 게임은 물론 인터넷도박 중독, 인터넷음란물 중독, 인터넷쇼핑 중독, 채팅중독이 날로 늘어만 갑니다. 스마트폰 중독까지 합치면 두세 명 건너 하나 걸릴 정도라니 심상치 않은 징조 아닌가요. 좀비의 대유행. 좀비 얘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가정이야 그렇다 쳐도 생명 자체가 바뀐 성도의 가정마저 비슷해져 가니 하나님의 언약이 무색해질 정도입니다. 이런 형편에 어떤 부모는 사춘기라는 허울 좋은 가설에 따라 자녀의 죄와 오염을 당연시합니다. 사회 구조와 연관하여 입시 제도 역시 자녀의 영혼을 파괴하는데 못 본 체합니다. 입시 하나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적 손실이 막대합니다. 사랑이 침묵으로 전해질 수 있을까요. 심각한 것은, 자녀 교육에 대한 문제를 부모들이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설사 문제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대안을 모릅니다. 실로 고통의 시대, 고난의 시대입니다. 날카로운 비명.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언약言約이란, 말로 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일방적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信實하고 성실誠實하게 이루어 내십니다. 신실은 말에 열매가 있다는 뜻이고 성실은 말을 이루어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25:1.” 하고 외쳤습니다. 다윗도 노래하기를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시119:90,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시89:1-8.” 요한계시록에도 신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계21:5.” 예레미야도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3:23.”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창조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이하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 ‘아들의 피로 내 백성을 흠 없이 만들겠다’가 바로 창세전 언약입니다. 창세전에 언약하신 내용이기에 당연히 사람과 언약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창조보다 하나님의 언약이 먼저입니다. 하찮은 문장이 난무하는 세상에 안부 같은 언어들. 물론, 창세전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새 언약을 목표로 진행이 됩니다. 이것을 계시복음로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이 창세전 언약은 정확히 갈보리산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언약을 품을 수 있다면 이미 구원받은 게 아닐까. 투명해서 포근한 단어들, 헤아릴 줄 아는 지혜, 안식, 은총, 확신, 카이로스의 시계 위로 날아오르는 계시.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로운 분이었습니다요17:5.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누가복음 24장 26절,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영광을 택한 자들로 보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요17:4. 시편 97편 6절,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늘 착취해서 벌어먹고 사는 우리는, 그래서 할 말이 없다엡2:16.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거기서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과 함께 산 자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언약이 창조보다 먼저 있었다
바울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그렇게 약속을 잘 지키십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나야, 신실하잖아”
시쳇말로 하나님은 신실 빼면 시체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어떤 틈입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몇 번 의심과 의혹의 눈길을 보낸 사람이라면 잠시 무거운 외투를 벗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면 좋을 것입니다. 약속을 받을 당시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믿음이 연약한 상태에 있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정확한 때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공모하여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었지만, 하나님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21:12.”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이 왜 중요한가?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9장 8절에서,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4장 28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라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언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낮은울타리 사역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자녀라고 부름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역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사는 이들을 위한 사역입니다. 특히 자녀를 위한 언약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영적인 자식이든 육적인 자식이든 자식은 하나님의 기업임을 잊지 않는 사람들 위한 사역입니다. 정제된 언어에 깃든 아련한 향기처럼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128:3.” 한 번도 감람나무를 본 적이 없지만 나는 늘 톱밥 냄새가 싱그러운 이유를 궁금해 했었지요. 말의 정체를 찾아가는 길은 여행과 같아, 성경에서 감람나무는 의인 혹은 의인의 후손을 의미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그렇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하나님의 속성과 약속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인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도 자식인 우리가 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간절한 소원을 편지에 쓴 것처럼, 어미 아비가 제일 먼저 구하는 게 뭔가요. 자식 건강하게 해 달라는 것 아닌가요. 특히 영적으로 건강하게 해 달라는 기도 아닌가요. 나는 하나님이 그 기도를 틀림없이 들어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마모되지 않는 약속. 그렇습니다. 결항缺航의 흔적 같은 건 잊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잊지 마십시다. 그동안 잊고 살았다면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든든히 가지기를 바랍니다. 오죽하면 그러겠나마는 자식은 절대 부모의 원수가 아닙니다. 상급입니다시127:3. 선물입니다약1:17. 운명입니다잠23:24. 편지입니다고후3:2. 슬그머니 피어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약속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것저것 말을 많이 했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생명을 가진 부모에게서 생명이 나오고 생명력이 충만한 부모에게서 생명력이 흘러넘친다는 것. 부모 통해 자식이 살면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성경에는 옛 언약창12:1~이 나오고 새 언약렘31:33,34이 나옵니다. 백성 됨의 언약벧전2:9이 나오고 자녀에 대한 언약이 나옵니다. 자녀에 대한 언약 중 몇 개를 보겠습니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다사54:13.”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다엘2:28”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9”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시17: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3.1:4”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시147:13”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다신28:4”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롬9:7”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4:4”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4:28”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고전4:14

물론, 자녀와 부모 향한 경고의 말씀도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렘2:30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성경에 7천 개 넘는 언약이 나옵니다.
그중 6대 언약은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사야 41장처럼 말씀으로 주어졌지만 많은 경우 이야기 형태로도 주어졌습니다.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 노아가 방주를 만든 이야기, 모세가 홍해를 건넌 이야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이야기 등.
이 모든 것이 언약입니다. 오늘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여러 번 자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말씀하고 보여 주시고 확인 시키십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맹세까지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사4:2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시110:4”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되리라.렘44:26.” 하나님의 맹세는 인간의 맹세와 다릅니다. 아브라함하고 맺은 맹세창15:17를 지키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후손을 천대千代까지 베풀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문화에서 천대란 영원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6,7.” 창세기 13장 16절에는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싸락눈들이 까르르, 비유입니다. 이미지입니다. 웃으면서 뛰어오르듯 생명의 약속은 일기 예보처럼 정확합니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던 샛강. 새로 갈아 끼운 가로등. 외연外延을 넓힌 시인의 언어. 성경의 그 수많은 언약 중에서도 나는 창세기 49장 22절을 좋아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야곱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자식이 샘 곁의 무성한 가지로만 살아도 감사한데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무성하다니. 그것도 푸르고 푸른 가지, 싱싱한 상태로. 와우.
아무튼 자식 키우기가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 힘들어진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라면 하나님 언약이 주는 위로에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왕으로서 자녀를 사랑하되 경건을 연습하게 하고 진리에 눈이 뜨이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 수 있도록 잘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햇살이 날아와 앉는 날렵한 가지처럼, 하나님이 능력 주시기를 바랍니다. 맞습니다. 능력입니다. 마음으로 원해도 능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실 낮은울타리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능력입니다. 서점에 가서 자녀 교육에 관한 책을 사 보면 거의가 부모의 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낮은울타리 사역은 의무보다 부모가 받을 가장 놀라운 선물, 5 JESUS POWER라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핵심입니다. 이 5 JESUS POWER는 선물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정말입니다.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20 6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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