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죽더라도 자식은 살리고 죽자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16 11:05
조회
99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땅에 못 묻습니다. 가슴에 묻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는다는 건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죽는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달라도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의 죽음이란 호흡이 끊어지는 상태를 말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의 죽음이란 생명력 부재를 말합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력 부재란 거듭난 영이 밀리는 모습이 되면서 육이 들고 일어서는 형국을 말하지요. 기독교인만 아는 사실이지만 육이 살면 영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주 죽는 게 아니라 죽은 것처럼 힘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같은 대가가 로마서 7장을 예수 믿기 전 상태라고 잘 못 해석했지만 나는 아닙니다. 그 부분은 분명 거듭난 이후의 우리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영의 힘이 빠질 때 육의 본질인 욕망이 날뛰기 시작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소위 대적질입니다. 내면 안에서 한판 굿을 벌이려는 음모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욕망이라는 무당이 벌이는 굿은 사실 푸닥거리 수준밖에 안 되지만 나름 힘이 있어 약식이라고 깔보다간 큰일 납니다.

요한일서에 보니까 굿의 주재료인 욕망은 세 가지로 나오는데 제일 먼저 육신 자체에서 나오는 욕망,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안목의 욕망, 그리고 이생의 자랑 등입니다. 우리 어린 자식들은 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욕망에 약합니다. 물론, 어른은 셋에 다 약합니다. 이것들이 살아 활동하기 날뛰기 시작하면 입에서 단내가 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는 탄식이 나오고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 줘”라는 비명이 터집니다. 그게 살았으나 죽은 상태입니다. 살아 있는데 죽은 상태. 좀비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 좀비Zombie입니다.

 

좀비란 말은 아이티 민간 신앙인 부두교 전설에서 유래했는데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하도 많이 나와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존재입니다. 부두교뿐 아니라 힌두교 경전에도 ‘그는 무덤으로부터 나오나니 육신이 벌레와 오물의 둥우리로다. 조심하라. 그는 살아 있는 송장이니…’ 하는 문장이 나오는 것으로 봐 생각보다 넓은 지역 사람들이 좀비의 존재를 믿어 온 것 같습니다.
한동안 드라큘라 같은 뱀파이어 흡혈귀 영화가 유행하더니 요즘은 좀비 영화가 유행입니다. 뱀파이어는 좀비와 달리 낮에 자기 일을 하다가 밤에만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혼이 아이들을 죽이기도 하고 젖소에서 우유를 짜 먹고 과수원의 과일을 훔치기도 합니다. 이런 뱀파이어가 유행하더니 요샌 좀비가 대세입니다. 아이들 팬 수에 따라 뱀파이어냐 좀비냐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건 자신이 좀비가 되어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라면 그렇게 흉측한 좀비를 극장에 돈을 주면서까지 볼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 아이들 상당수가 좀비로 살고 있고 더 많은 아이가 좀비화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의학적으로 좀비는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마구 난도질을 해도 살인죄 같은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 아이가 교회에 잘 나가는데 좀비가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밥이 넘어가겠습니까?
네. 넘어갈 것 같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잘 것 같습니다. 어른 한 명 줄어들면 난리 나지만 아이 열 명 줄어들면 묵묵부답인 게 그 증거 아닙니까?
“집사님, 아이가 예배 안 나왔어요.” 하고 전화하면, “목사님, 시험 기간이잖아요.” 사뭇 당당한 목소리에 “알겠습니다.” 그러고 “당분간 고등부 못 나가요. 우리 아이 대학 갈 때까지만 봐주세요.” 하면 쩝쩝하고 돌아서는 게 그 증거입니다. 중등부 회장까지 하다 그만둬도 학원 원장에게 전화 걸어 왜 우리 아이 빼 가냐고 전화 걸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능력한 교회 관리자들보다 세속화된 부모가 더 문제입니다.
자식이 영적으로 죽어 가는데 대학만 잘 가 주면 신앙생활 접어도 별 얘기 안 하는 게 문제입니다. 구십 년대 이후 뼛속까지 세속화된 교인들은 자식이 일류 대학만 들어가면 유다처럼 예수를 팔아도 분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극소수의 깨어 있는 성도들 혹은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 중독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입니다.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하는 자식을 보며 눈물짓지만, 해결책이 없어 보입니다. 중독에 빠지면 대학 입시도 물 건너갑니다. 허구한 날 게임 하는데 공부가 될 리 없습니다. 대학 간다고 교회 안 나가는 아이도 좀비지만 교회 나오면서 게임만 하는 아이도 좀비이긴 마찬가지. 이래저래 좀비가 늘어나는데 목사님들 만나면 무슨 소리냐고 우리 교회 아이들은 전혀 문제없다고 항변을 합니다. 그런가요? 저분들 귀엔 썰물처럼 아이들 빠져나가는 소리 안 들리나 봐요. 예배당 입구에서 강제로 뺏지 않으면 예배 시간마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아이들이 좀비 아니고 뭔가요. 설교 시간에 와글와글 떠들다가도 스마트폰만 돌려주면 일시에 조용해지는 아이들이 좀비 아니고 뭔가요. 잠잘 때나 길을 갈 때도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걷는 아이들이 좀비 아니고 뭔가요(하긴 얼마 전 똑똑한 사람 하나가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성해 ‘스몸비’란 말을 만들어 유행시킨 적이 있지요). 비기독교 가정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기독교 가정에서 살고 있는 좀비는 대부분 주일에 교회도 나가고 큐티도 하고 심지어 찬양단 활동까지 한다는 점에서 뱀파이어류와 전혀 다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뱀파이어는 밤에만 활동합니다. 십자가를 들이대면 놀라 도망가는 게 뱀파이어 흡혈귀입니다. 뱀파이어 아이라면 십자가 달린 예배당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좀비는 다릅니다. 좀비는 비틀거리면서도 교회도 가고 수련회까지 따라갑니다. 참으로 괴이합니다. 물론, 수련회장에 가서도 스마트폰 타령이지요. 뺏으면 집에 가겠다고 협박까지 합니다. 그래도 수련회까지 따라와 준 게 어디냐 담당 교역자는 눈물까지 보이며 옛날 하던 방식으로 산중 철야 기도회를 시작하는데 반응이 차갑습니다. 대부분의 아이가 찬양도 따라 부르지 않습니다. 몇 아이들은 앉은 채로 잠들어 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가 오겠지. 사람이란 다 때가 있는 거야. 세상에 뺏기지만 않으면 돼. 그런데 웬걸. 고등부까지 잘 나오던 아이 열 명 중 여섯 일곱 명이 대학 가면 떠나 버리니 이건 좀비뿐 아니라 뱀파이어와 합성된 변종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버린 게 아닌가요.

 

좀비 바이러스는 세계를 놀라게 했던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오염되면 자각 증상 없이도 좀비가 됩니다. 열도 안 나고 기침도 안 나는데 확진 판정받으면 그가 지나간 장소는 일시에 쑥대밭이 됩니다. 좀비가 되는 속도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면역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서서히 진행되거나 빠르게 진행됩니다. 좀비의 종류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는 믿었는데 생명력이 없는 경우-A형 좀비
생명력은 있는데 통찰력이 없는 경우-B형 좀비
통찰력은 있는데 분별력이 없는 경우-C형 좀비
분별력은 있는데 창의력이 없는 경우-D형 좀비
창의력은 있는데 변증력이 없는 경우-E형 좀비

만약 자식이 A형이라면 직면이 문제입니다. 직면은 예배를 통해서만 가능하니까 지성소에 들어가는 예배 맛을 보게 해 주고 틴즈 흠스나 키즈 흠스를 통해 가슴에 박힌 못을 빼 주면 되는데 그걸 모르는 부모가 허다합니다.
만약 자식이 B형이라면 훈련이 덜 된 것입니다. 다행히 생명력엔 지장이 없으니 아이가 좋아하는 문화 중심의 통찰력 학교를 열어야겠습니다.
만약 자식이 C형이라면 조금 심각합니다. 겉으로는 성경도 읽고 큐티도 하고 문제없어 보이는데 사생활 면으로 들어가면 게임하느라 밤을 새는 등 뒤죽박죽이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게 왜 문제인지를 모르거나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학교 친구들 모두 그러고 사는데 왜 나만 갖고 난리를 치냐고 대들기라도 하면 맥이 쑥 빠진다는 유명 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분은 은퇴한 뒤에도 사춘기 아들을 키워 보지 않은 사람과는 밥도 먹지 말라고 외치십니다. 아니 설교는 그렇게 잘하시는 분이 용어는 잘 못 쓰셨네요. 사춘기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분별력이 부족한 거지. 분별력은 결정이나 선택을 돕는 힘이에요. 요즘처럼 선택이 중요한 때가 어디 있었어요. 아마 목사님 자랄 때는 선택하고 말고도 없었을 걸요. 주면 먹고 안 주면 못 먹고 밖에 나가면 사방치기나 술래잡기고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밖에 할 게 더 있었어요? 외식을 해도 아버지가 주방에 대고 짜장면으로 통일. 곱빼기냐 아니냐만 결정하면 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한식이냐 양식이냐 치킨이냐 스테이크냐 허니 머스타드냐 사우전 아일랜드냐 아니면 발사믹이냐. 하도 선택할 게 많아 결정 장애 환자까지 생기는 판에 어려서부터 분별력 훈련 안 시키시고 사춘기 타령만 하니 답답하기만 하네요.

그래요. 문제는 담임 목사님 모르면 다 모르는 구조로 교회가 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분별력 훈련이 필요 없는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 수준으로 교회 학교를 운영하려니 AB C형 바이러스 환자를 구분조차 못 하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얼마큼 바이러스에 오염되었는지 측정하는 진단 키트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큰 문제는 교회가 다음 세대를 키울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걱정이 됩니다. 많은 교회가 우왕좌왕입니다. 도대체 과거보다 수십 수백 배 선택할 게 많아지고 변종 바이러스 종류로만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파급 속도가 빠른 나라에서 우리 같은 전문 사역자 무심하니 시간 지날수록 어려워질 밖에요. “러브 유어 셀프”를 외치는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제패하고 계급 투쟁 <기생충>이 칸느를 비롯 아카데미를 석권하는 판에 영화 읽기 하나 제대로 못 해 주고 어른 숫자만 챙기는 교회 어른을 어떤 아이가 신뢰하겠습니까. 지나간 시절 우리나라에 꽤 괜찮은 전문 사역 단체와 전문 사역자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중에도 교회를 돕고 죽어 가는 청소년 살리기 위해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들이 눈에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가 세속화되면서 다음 세대 전문 사역 단체가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다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 잘 나가고 찬양단에서 드럼까지 치던 아이가 갑자기 두문불출하더니 게임 중독 좀비로 변질되고 좋은 대학 간다고 공부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불가지론자나 동성애 지지자로 돌아서기도 합니다. 예배 시간에 집중 못 하고 찬양 시간에 입 다무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건 불길한 징조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죽습니다.
부모가 먼저 죽으면 조금 슬프다 마는데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어 두고 죽을 때까지 가슴앓이를 해야 합니다. 엊그제 뉴스에도 세월호에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고 나왔습니다. 세상에 그 난리 난 게 벌써 언젠데 아직도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시고 있었더군요. 주위 친구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이젠 잊어버리라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면서도 잊지를 못했습니다. 그게 부모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그런 사랑을 주셨습니다. 자식이 잘되면 곱게 눈을 감고 자식이 잘못되면 눈도 못 감고 죽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자식도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됩니다.
나는 이 땅의 모든 부모가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은 부모들에게 죽더라도 자식은 살리고 죽자는 말을 하기 위해 이 사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낮은울타리 간사들과 어려운 중에도 다음 세대 살리는 사역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주님이 내 아이들에게 제발 제대로 된 복음을 먹이라고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아이들이 주님의 성품을 가져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아이들에게 세상 정신에 속지 않도록 문화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려운데 이번 달에도 함께 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정적으로 힘든데 자식 살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겠다며 힘내라는 분, 낮은울타리가 아직도 살아 있어 고맙다며 전화 주시는 분, 기도하다 생각나 피 같은 헌금을 보내주시는 분 때문에 우리는 이번 달에도 갈 길을 갑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이 횡행하더라도 부디 평안하시길 빕니다. 샬롬.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20 5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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