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창조보다 언약이 먼저였습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16 10:24
조회
12




 

2006년 가을, 2년여 만에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절망과 혼돈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재정적으로 완전히 파산했는데 한국 최초의 문화사역자란 직분만 가지고 어쩌겠다는 것인가.
외부 지원 없이 엄청난 뮤지컬팀 창단하고 그 많은 간사 생활비 지원하고 실용음악원이며 와우큐 영상이며 문화 사역 학교며 화요 교사 대학, 뉴에이지 연구소 등등을 운영하다 보니 생각보다 적자 폭이 엄청 늘어나기 시작, 이러면 안 되는데 하다가 댐이 무너지듯 무너져 버린 상황.
완전 타의에 의해 울며 떠난 미국에서 이 년여를 방황하다가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빈털터리로 돌아와 “교육관이 완성되면 방 하나 주겠다.”는 정 목사님 말을 기억하고 찾아갔더니 “생각보다 완공된 건물이 협소하여 들어오란 말 못 하겠다, 대신 사무실 임대료 얼마를 보조하겠다.”하여,
간신히 서울영동교회 근처 논현동 언덕배기에 작은 방 두 개를 얻어 하나는 살림살이를 하나는 사무실로 사용하며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식사 거르고 잠 못 자고 온 세상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십 칠 년 간 노력이 완전 물거품이 되고 비싼 기자재와 북적거리던 인력 중 뭐 하나 남은 게 없어 그저 막연하기만 하던 시절, 사역을 물려준 후배가 상의도 없이 낮은울타리 대신 새 월간지 내는 바람에 그 많던 구독자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쉴 새 없이 두 어깨를 내리누르던 트라우마는, 월급 안 준다고 노동청에 고발했던 간사들 얼굴, 초청 강의에 응하지 않는다고 욕까지 해댔던 무례한 목회자들, 파산 당했다는 소문이 돌자 냉정하게 돌아서 버리는 지인들….
거절감과 상실감이 상처의 두 축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죠.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거절감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던 것을 다 빼앗겨 버렸다는 상실감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나 하셨나. 부모는 왜 그렇게 일찍 내 곁을 떠나게 만들고 씨씨씨는 왜 그렇게 이른 나이에 데려가 말도 안 되는 선교사 헌신을 하게 했으며, 안 될 줄 알면서 낮은울타리를 하게 하셨을까. 낮은울타리 대표라는 직함으로 이게 천직이구나 싶어 죽어라고 뛰었는데 재정 파탄이 웬 말인가… 가까운 사촌들만 해도 가만히 앉아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걱정 없이 사는데 왜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뺏겨야 하는지….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밥은 먹었지만, 가슴이 먹먹해 늘 소화 불량인 상태로 서울 강남의 한복판이라 불리는 논현동 작은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데 직면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막힌 방법으로 흠스HMMS 라는 사역이 탄생 되었고 그로부터 한참 후 NCS와 JPA라는 주말 학교를 열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하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쓰윽 하고 올라오는 떡잎 같은 것.
처절하게 무너진 곳으로 눈송이처럼 내려오는 은혜의 파문波紋 같은 것.
“죽어야 살고 망해야 산다.” 그 음성을 듣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죠. “내 이름 위해 죽임 당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너를 구원했다” 주님이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 바울에게 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처럼 살자”는 용덕 형제의 말속에는 처절하게 죽자는 의미가 숨어있는 거네요. 어제 부산 지부 빌더스 모임에서 “예수 믿고 왜 이렇게 안 풀리나 불평하는 사람은 구원의 의미를 하나도 모르는 셈”이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찡하게 울려 왔습니다. ‘너나 잘해라 인마.’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밀려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안 끌려가려고 애를 써댔구나.

흠스가 없었다면 낮은울타리 문화 사역은 그저 기독교 엔터테인먼트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복음 한 끼』 같은 복음 사역이 앞서지 않았다면 아직도 뉴에이지나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었을 겁니다. 흠스나 틴즈 흠스, 키즈 흠스 통해 회복의 강을 건너도록 도와주지 못했다면, 거듭난 사람조차 짐승처럼 변해 버려 밤마다 들판에서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흠스의 열매를 확인할 때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논현동 사무실에서의 눈물을 기억하곤 합니다.
흠스는 이번에도 놀라운 은혜를 참석자들에게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만난 혜미 자매.
그녀의 LA 흠스 5기 직면 프랙티스 간증문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11살 때 미국에 이민 온 후 12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열심히 믿겠다는 신념을 갖고, 말로만 크리스천인 삶을 살고 있었다. 예수님을 영접했으니 천국행 티켓은 따놓았다 생각했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착하게 행동해 내려 주실 복 우아하게 누리기를 원했다. 당연히 그 목표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깨가 우쭐했던 시절. 독선적이라 두려운 존재였던 아버지 곁을 속히 떠나고 싶은 마음과 하나님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고 싶었는데, 놀랍게도 선교 비전이 같은 사람을 교회에서 만났고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감행했다.
그는 누구보다 신앙이 좋았다. 아니 지금 와서 보니 종교 생활을 뛰어나게 했던 사람이다. 하루 3시간 넘게 기도하는 일에서부터 새벽 기도나 가정 예배를 단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고 엄청나게 부담되는 헌금 생활은 물론 거의 매일 한두 끼를 금식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였다.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종교인. 끔찍하게도 가장 사랑을 실천해야 할 가정에서, 그는 불행한 성장 과정에서 생긴 분노와 폭발로 나와 아이들을 점점 파괴해 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이들을 때리나… 나의 불찰은, 3개월이란 짧은 기간 안에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이란 잘못된 확신으로 결혼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엉망진창인 가정사와 부정적 성품을 결혼식 마친 후까지 숨긴 것이었다. 자라면서 받은 상처로 인한 부정적 자아상으로 인해 전형적인 동반 의존자의 삶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15년이란 긴 세월을 고통받으며 지내야 했다. 수시로 이어지는 가정 폭력은 나를 완전히 지치게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나는 마취 주사를 맞고 희미한 안개 속에 사는 듯했다. 소망이란 털끝도 보이지 않아 이러다가 암으로 죽을지, 미쳐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마침내 벼랑 끝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나와 세 자녀를 살리기 위해 이혼을 택했다. 그동안 티 나지 않게 잘도 숨겨 왔지만, 그칠 줄 모르는 남편의 언어 학대와 신체 학대에 두 손을 번쩍 들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겠다는 꿈이 산산이 깨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에 갇혀 하루를 보냈다. 어둠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카운슬링을 3년 넘게 받았고 목회자는 물론, 위로해 줄 만한 사람들 모조리 찾아 기대어 보기도 했지만, 답은 아니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사는 게 너무 괴로웠다.


그러다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HMMS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이 세상 속 의지할 만한 사람들에 대한 허기를 다 내려놓게 하시고 만나게 해 주신 HMMS는 첫 시간부터 나를 강타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표면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던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심한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고 안타깝지만, 지금 나는 똑같은 상처를 내 아이들에게도 주고 있었다. 순응형인 나 자신의 상태를 인정한다.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로 인해 생긴 나의 부정적 성격과 폭력적인 남편의 영향이 그대로 흘러 내려가, 우리 집은 heaven on earth는커녕 ‘화’의 지배를 받는 지옥이 되고 있었다.
HMMS를 만났을 땐 나와 세 아이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던 때였다. 폭력적인 아빠와 남편이 없는 상태인데도 죽음의 공포 앞에 마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HMMS에 와 직면하면서 깨달아졌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 그러니까 전 남편과 똑같이 이중성격을 가진 자라는 사실이 인식되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어떤 면으로도 다듬어지지 않은, 순식간에 화가 터져 나오는 더럽고 악한 죄인이 바로 나였다. 한 주 한 주 지성소 예배와 강의, 직면의 장소에 나아가면서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끼워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왜, 어떻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어떤 핵심 감정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 어떤 쓴 뿌리가 나를 그런 성품에 얽매이게 하는지, 허물어야 하는 내 벽이 무엇인지, 앞으로 나 자신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다림줄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그리고 내가 바뀌고 채워짐으로 우리 세 아이를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맞닥뜨린 직면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봤더니, 직면은 내 의지와 지혜로 평생 노력해도 경험하지 못했던 은혜 지침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며 사는 삶 그러면서 구원받은 참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내 인생의 커다란 레고 박스를 뜯어 놓고 임의대로 이리저리 맞춰 보았지만, 항상 실패하고 제자리에 머문 채 방황해야 했던 이유를 알았다. 엄연히 지침서가 있는데도 그 지침서를 참고할 생각하지 않고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노만 젓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두 끼를 금식해도 하나님 성품으로의 교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드디어 지성소 예배와 직면이 실제화되면서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지만 뿌연 안개 속에 살며 답답했던 이유는 하나님 성품으로 교체되고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모든 것이 6주 만에 다 해결됐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지난 6주 동안에도 감정은 업엔 다운이었고 감정이 올라올 때 얼른 지성소로 달려간 적도 있지만 실패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에는 막연하기만 하던 것이 이제는 분명해진 것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지성소 예배는 축복의 선물. 도피나 폭발 직면의 장소로 가 주님의 성품인 사랑을 가득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 그래야 우리 찬양이, 소중이, 예린이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료식 간증을 여기에 옮겨 적고 보니 현장에서 듣는 만큼 뜨겁지 않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영이 운영하는 캘리포니아 플러톤 시내 블루리본 아카데미 제 일 강의실. 시차 때문에 가물가물한 눈을 간신히 견디며 듣고 있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오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내 가슴을 울리고 있었던지.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역사의 현장에 서고 보면,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있습니다. 그 울컥함과 뿌듯함을 몇 줄의 글로밖에 전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JPA!
복음 사역과 회복 사역과 문화 사역 통해 세상 정신에 눌려 죽어 가는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는 소망 위에 탄생한 JPA.
JPA는 5 Jesus Power Academy의 약자로 예수님의 능력인 생명력, 통찰력, 분별력, 창의력, 변증력을 풍성히 받아 누리게 할 뿐 아니라 이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도록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주말 학교 이름입니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해합니다. 부모들은 놀라워합니다.
문화로 옷을 입힌 복음, 복음으로 파악하는 문화.
역동적인 예배,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수업!

그래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들 안에 주님의 생명력을 중심으로 통찰력 분별력 창의력 변증력 지수가 쑥쑥 올라간다면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돈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인력도 많이 필요 없습니다. 모든 노하우와 자료를 우리가 다 공급해 드리니까 재주 없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이 다 하신다고 아이들 앞에서 외치지 않았습니까.
하루가 다르게 교활해지는 세상에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 다음 세대를 살리자고 외치는 교회라면 키즈 흠스와 JPA에 대해 정보라도 받아 가시도록 격려해 드립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쓰레기에서 장미를 피어나게 하시는 주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자에게 흠스와 틴즈 흠스, 키즈 흠스 JPA 같은 엄청난 사역을 주시는지… 베드로 같고 도마 같은 자를 믿고 맡겨 주시는 선물에 감격할 뿐입니다.


요즈음 나는 전보다 풍성하게 맺히는 사역의 열매로 인해 정말 행복합니다. 2005년 전까지 엉성하기 짝이 없게 문화만 파고들다가 이제 복음의 핵심과 깊이를 깨달아 양육 수준이 완전 달라진 느낌. 눈물 속 논현동 언덕서 받은 흠스 사역으로 피양육자들과 함께 회복의 바다에 나아갈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요. 나에게 주신 이 은혜를 사랑하는 지체들과 나누지 않는다면 화가 임할 것입니다. 악화의 속도가 왜 이리 빠른지요. 필요한 곳에 속히 흘려보내지 못하면 어어 하다가 통로가 막혀 버릴 것입니다. 세월이 너무도 수상해, 분명히 말하지만 무덤 파기 작전은 제대로 진행 중입니다. 오스 기니스에 의하면 LA와 서울이 적의 제일 공략 지 아닌가요. 그렇다고 다른 지역은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자의 방법이 아니라 여우의 방법으로, 칼이 아니라 문화로, 무너뜨림이 아니라 비틀거림으로, 소낙비가 아니라 안개로 갈수록 교묘해지는 적의 공격 앞에서도 주님의 승리를 맛보려면, 자녀와 함께 묵시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세속주의보다 무서운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묵시를 보지 못한다면 생기 없는 신앙으로 버텨 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착각은 위험. 어벤저스처럼 엔드게임은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쓰러지거나 죽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 낮은울타리 살려 주신 의미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벤허에서도 아리우스 제독이 그렇게 말했지요. “네 하나님은 너를 살리기 위해 로마를 살렸다.” JPA를 왜 강조하는지 아십니까? 생명력과 통찰력으로 충만해지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돼지우리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발 머루와 다래 쥐엄 열매와 키위를 혼동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아버지)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게 율법주의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렸죠. 만날 때마다 개념을 강조하는 이유는 초점, 관점, 지향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려면 용어부터 정확히 쓰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부터 확실하게 심어 주십시오. 모든 종교는 변화를 지향하지만, 기독교는 교체, 교환, 덮음, 채움, 연합이라는 걸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이젠 교육이란 용어 대신 양육을 선택하고, 변화가 아니라 교체, 부흥이 아니라 계시로 가야 한다는 것 명심하십시오. 아직도 아이들 앞에서 부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올드 패러다임인 겁니다. 성경 공부가 아니라 복음 공부. 적용이 아니라 언약. 아, 맞아요. 창조보다 언약이 먼저였지요. 언약과 계시가 체계화된 게 묵시의 세계.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 물질이나 관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 주님의 시간. 영원의 시간. 진행 중인 역사와 달리 완성되고 완료된 계시. 정체성이 확립되고 소명이 사명과 만나는 생명의 영역. 어린아이 때부터 이 묵시의 세계를 드나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유혹의 집중포화를 견디게 하겠습니까.

 

이번 호의 특집을 눈여겨봐 주십시오.
자녀편 표2에 알려 드린 JPA 설명회와 키즈 흠스 설명회에 꼭 와 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만이라도 저희에게 주신 이 풍성한 은혜를 같이 누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발 죽기 전에 자녀에게 생명력 얻는 법을 알려 주시고 세상을 떠나십시오. 죽더라도 눈은 감고 죽으셔야지요.
부디 부모를 위한 흠스 뿐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틴즈 흠스, 키즈 흠스를 맛보여 주시고, 이번 호에 소개하는 JPA 통해 원하는 곳에서 똑같은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든 문의하시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샬롬.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20 3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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