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당신은 간절히 원하는 것, 꿈이 있습니까?”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12 13:57
조회
19

 

위 제목과 같은 질문을 누구에게 받아 본 적 있으신지요?

꿈과 비전의 선언문처럼 인식된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누가 어디서 했는지 아십니까?

“오늘 창세기 37장 19절,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를 읽으면서 우리 같이 무명하고 무능한 교회가 하나님의 꿈을 꾸고 견뎌 와서 오늘 이렇게 큰 교회로 성장했구나, 우리처럼 하나님의 꿈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꿈은 잃어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의 꿈을 우리처럼 끝까지 지키고 견뎌 내세요. 하나님은 꿈꾸는 자와 새 일을 행하십니다. 이사야 60장 22절에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약속하셨잖습니까?”

이 설교가 감동되시는지요.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응답해서 바라는 것이 현실이 된다.’는 시크릿 열풍이 불었었지요. 오죽하면 대통령의 입에서까지 이 말이 나왔을까요.

“누구나 발전하려면 제일 먼저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 가치를 품은 자는 꿈을 보석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어느 유명 설교자가 네온 십자가 멋지게 달린 강단에서 외친 말인데 뭐가 문제일까요?

꿈은 사람이 잠자고 있는 상태에서 보는 특이한 체험으로 잠에서 깬 후 형성되는 일종의 회상 같은 것입니다만, 대개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같은 ‘바람’이나 ‘소원’을 꿈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꿈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꿈이 가진 신비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문제는 그 꿈 이야기가 거의 성공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업에의 성공, 학업에의 성공, 연애에의 성공, 목회에의 성공을 바라는 이들에게 성공과 꿈 이야기는 아메리칸 드림이란 단어처럼 늘 가슴을 울리게 마련입니다.

성경에 꿈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모두 밤에 자다가 꾸는 꿈 이야기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비멜렉의 꿈창20:3, 야곱의 꿈창28:10~17, 라반의 꿈창31:24, 요셉의 꿈창37:5~11, 바로의 꿈창41:1~45, 솔로몬의 꿈왕상3:5~15, 느브갓네살의 꿈단2:19~23, 마리아 남편 요셉의 꿈마1:20,2:13,19,22, 동방박사들의 꿈마2:12 등으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총 65절이나 꿈 얘기가 나오는데 성경 속 꿈 얘기를 할 때 제일 많이 거론되는 것이 요셉의 꿈일 겁니다.
“보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이 제목으로 설교한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문제는, 이런 제목의 설교가 원래의 하나님 의도와 많이 다른데도 상당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들은 설교 중 한 편을 부분적으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꾼다는 것은 지금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속에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삶의 목표를 분명히 삼고 소원하고 노력하며 그것이 이뤄지는 모습을 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꿈은 마치 암탉이 품고 있는 계란과 같아서 오래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깨어 나오는 것처럼 성취되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그의 가슴속에 있는 꿈입니다.
유태영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미래의 꿈을 잉태하자고 외칩니다. 임신한 어머니는 반드시 아기를 낳습니다. 마찬가지로 꿈을 잉태한 사람은 일정한 기한이 지나면 반드시 그 꿈을 해산할 날이 다가옵니다.’ 유태영 박사의 말을 참고하면서 요셉의 꿈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성경에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째인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이 좋을뿐더러 행실이 단정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두 번 꿈을 꾸었습니다. 창세기 37장 7절에 보면 한번은 형들과 함께 들에 나가 곡식을 거두는데 자기 곡식 단이 가운데 서고 열한 형의 단들이 자기를 둘러싸더니만 자기 단을 향해 절을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꿈을 꾸고 깨어나서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하자 형들이 그 말을 듣고 심기가 편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또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두 번째 꿈은 그가 하늘을 쳐다보니까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쭉 일직선으로 서더니 자기를 향해 절을 넙죽 한 것입니다. 그것도 깨어나서 아버지와 형들이 있는 앞에서 이야기했더니 설상가상으로 형들 마음이 더욱 완악해졌습니다. “네가 우리들의 왕이 되겠다고? 이런 고약한 놈!” 이번엔 아버지까지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잉태했고 그 꿈이 요셉을 이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운명과 환경이 꿈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 꿈이 우리를 만들어 가고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요셉을 부르더니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데 음식 가지고 가서 대접을 하고 안부를 묻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음식을 들고 형들 찾아 들로 나가니 형들이 요셉을 보고 “저기 꿈꾸는 놈이 온다. 우리 저놈을 잡아 죽여 버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작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 말을 하는 자체가 벌써 꿈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자기들은 자기가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요셉이 꾼 꿈이 그 형들의 언어, 심사,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형들은 달려들어서 다짜고짜 요셉의 음식을 빼앗고 요셉의 옷을 벗기고 마른 우물에 던져 넣어 버렸습니다. 그 후 그들은 희희낙락하면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때마침 아라비안 상인들이 향품을 싣고 오는 걸 보고 “요셉을 마른 우물에 던져 죽게 할 필요가 있느냐. 저를 종으로 팔면 돈이나 받을 게 아닌가?”라고 공모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우물에서 이끌어 내 아라비안 대상에게 30냥의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요셉이 종으로 끌려가면서 “형들아! 날 살려 달라!”고 애걸해도 모른 채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가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것도 꿈이 인도한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1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모함을 받아 시위대 감방 뜰에 들어가서 3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 사건조차도 이미 꿈이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0살이 되었을 때 왕의 꿈을 해석하여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살던 야곱과 그 아들들이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길 없으니 양식 구하러 애굽에 내려와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일단 우리 마음속에 꿈을 품으면 그 꿈이 모든 운명과 환경을 지배하고 만들어 가고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을 말씀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긍정적인 꿈을 꾸면 긍정적인 미래가 만들어지고 부정적인 꿈을 꾸면 부정적인 미래가 만들어지고, 아무 꿈도 꾸지 않으면 잡초가 만발한 미래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발 꿈을 품은 성도가 되십시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 “야! 저 꿈꾸는 사람이 온다.” 고 평가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향해 “우리 엄마는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 아버지는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 자녀는 꿈꾸는 사람이다”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품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꿈이 없으면 아무런 미래도 창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아무리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가난해 헐벗고 굶주렸을지라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받게 된다는 꿈을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일이 있다. 나는 축복받을 수가 있다. 나는 잘될 수가 있다. 나는 부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성공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의 저주와 낭패와 실망과 고통을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아 내일이 밝을 수가 있다”라고 꿈을 품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꿈을 품으면, 죄를 극복하고 세속과 마귀를 극복하고 질병과 고통을 극복하고 저주와 가난을 극복하고 죽음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고 꿈꾸는 자가 온다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이 꿈을 품고 이 땅에 온 것처럼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해 꿈꾸는 자가 되었고 또 되어야만 하고 또 될 것입니다. 꿈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 가고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제발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십시오.

 

어떻습니까? 감동적이지 않나요?
전체 내용은 이보다 길지만, 요점만 옮긴 것인데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해야 할 분이 축복, 형통, 부자라는 기복적 요소를 양념처럼 뿌려 넣었다는 것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성경의 원래 의도를 왜곡하여 전달하는 경우가 이분 말고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건 성경이 예수님의 구속사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이런 기복적 설교의 늪에 자주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에서의 성공 욕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시는데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역사의 주관자다. 나 외에 역사를 만들어갈 자가 없다. 나는 사람을 들어 쓰기도 하고 나라와 민족을 없애기도 한다. 그것을 내 종 요셉에게 아주 조금 알려 줬을 뿐이다. 요셉은 너희를 구원할 예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요5:39.”
이런 설교를 해야 하는데 요셉을 본받아 꿈을 꾸자는 쪽으로 설교를 하니 생명력 없는 구호가 되어 메아리만 울릴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산다는 설교가 아니라 꿈을 꾸어야 성공하는 쪽으로 빠지면 원래 의도했던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 됩니다.

또 다른 이의 설교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꿈꾸는 자를 조롱한다. 인류의 역사를 바꿨던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꾸었으며 그로 인해 조롱을 당했다. 때로는 바보로, 때로는 미치광이로 여겨졌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 의해 꿈꾸는 자로 여겨졌다. ‘저기 꿈꾸는 자가 오고 있다.’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들은 요셉의 비전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들은 꿈이 없었고 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군거리며 꿈꾸는 자를 비웃었다. 이사야 56장을 보라.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사56:10’ 요셉의 꿈과 비전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이야말로 헛된 꿈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꿈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이런․․․.
성경에 나오는 꿈은 어느 경우에 있어서도 꿈 자체가 어떤 객관적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꿈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의사를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8장 6절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라는 말씀은 ‘꿈은 하나님의 의사를 전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의 방법’ 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예레미야 23장 25절 이하를 보십시다.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그들이 서로 꿈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으로 인한 폐해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지적한 말씀도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설교나 훈계를 살펴보면 꿈을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심적 현상의 연속으로 보는 데서 나아가 자기가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 사항이나 이상, 혹은 현실을 떠난 듯한 즐거운 상태나 분위기로 승격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02 월드컵 당시 월드컵 4강 달성의 꿈은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믿었던 태극전사들과 온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꿈을 세계가 지켜보았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 꿈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박세리는 골프로 희망을 주었다. 그녀로 인해 수많은 후배들이 지금 세계 골프 대회를 지배하고 있다. 박태환이 한국 역사상 수영에서 금메달을 땄고 거구의 장미란은 세계를 들어 올렸다. 세계 피겨 대회를 석권한 김연아의 꿈은 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이들 모두의 위대한 역사는 꿈꾸는 자이기에 가능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 저들처럼 꿈을 꾸어야 성공한다.”

 

비전은 어떤가요?
범위가 다르긴 하지만 위와 같은 성공을 전제로 한다면 꿈이나 비전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비전은 영어로 ‘내다보이는 미래의 상황’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전을, 실현 가능한 결과를 눈앞에 그리고 이뤄나가는 것이며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비전을 시력, 시각, 상상력,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속에 그리는 통찰력, 직감을 통한 상상도, 미래도, 보이는 것, 눈에 띄는 광경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직장이나 가정, 인간관계 영역에서 자신과 약속한 행동 전략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 포고하는 자기 경영 전략이 필요한 때 아닙니까? 그러니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꿈과 비전의 실현을 위한 자기 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겠지요. 한심한 건 이런 책을 교회 지도자들이 설교에 인용하거나 필독서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꿈을 찾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방법과 성공적인 자기 변화를 위해 잠재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법 등을 다양한 실례를 통해 제시하려는 시도는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지요. 특히 난관에 봉착해 자포자기하고 있는 사람, 의지가 박약한 사람, 청중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비전을 주제로 한 책과 강의에서 자신감을 얻으리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주권 하에서 신부의 영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 크리스천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셀프 리더십 교본 같은 것에 눈이 팔리는 꼴은 도저히 못 봐주겠습니다.

생명이 없다면 비전이나 꿈이나 인간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매한가지 아닙니까?
요셉의 별명이 꿈꾸는 자였고 요셉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는 경우가 성경에 여러 번 나와 있으나 하나님이 꿈을 해석하는 자에게 가져가는 것을 금지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신13:1~3.
무엇보다 성경이 주어진 후로는 더 이상 꿈에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는다면 대적에게 속기 쉽다는 걸 몇 번이나 알려 줘야 하는지․․․ 지금이나 그때나 꿈을 통해 위대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지만 성경은 오직 그분과의 연합요15:5을 통해서만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걸 부디 잊지 마십시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주님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단언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느 유명 목사님이 자신의 저서에서 “꿈을 성취하기 원하는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꾸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꿈꾸는 사람을 좋아해야 합니다. 꿈꾸는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특성을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성공을 향한 자신의 꿈을 버리고 오직 신랑인 예수와 침궁에 들어가 한 몸 되는 것을 소망하는 게 건강한 비전너리의 삶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가 2002년 월드컵 이후 수많은 사람의 구호가 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 한때 이 말이 월드컵 경기장을 수놓고 불꽃 축제에서 빛이 나고 대학 캠퍼스, 심지어 초등학교 교실에서조차 목이 터져라고 외쳐졌지만, 아직도 교회 안에서 이런 말 하는 분 있으면 제발 정신 차리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꾸는 꿈은 안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해야 정상 아닙니까? 주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은 “십자가로 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면류관이 아니라 단두대로 가라” “부모와 약혼자가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인데 “네가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긍정적 사고가 힘이다” “예수 이름으로 고지를 점령하고 부자 되기를 꿈꿔라” 등 소원 성취나 만사형통을 외치는 분들이 큰 교회를 이루고 있으니 대체 그들은 복음을 어떻게 이해한 것입니까?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 속 요셉이나 여호수아처럼 꿈꾸는 자들을 높이 평가하며 본받아 살기를 강요하지만 나는 성경 안에 존경할만한 선배는 많지만 바라보아야 할 선배는 단 한 명도 없음을․․․ 바라봄의 법칙이나 꿈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의존하는 것만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굳이 강조한다면 꿈 보다 비전, 그것도 나의 비전이 아니라 주님의 비전, 곧 복음인 예수를 먹고 복음인 예수에게 먹힘으로요4:32,34 이 땅에 온 목적 발견할 수 있음을 새해 인사말로 전해 드리며 샬롬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부디 이번 달에도 은혜 가운데 평강하시기를.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20 1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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