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제일 큰 혜택자는 접니다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12 13:15
조회
15

대한 항공 126회 탑승 기록(아시아나나 다른 항공사 빼고) 중 대부분이 미국 갔다 온 기록이니까 미국만 백 번 넘게 다녀온 셈입니다. 그만큼 이민 사회를 잘 안다고 자부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미국에 건너가 사는 동포들의 삶을 겉핥기로만 알고 왔습니다.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국내에 사는 사람보다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면으로 보면 불행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이렇게 태평양을 건너와서 고생하고 살까? 한국에 있으면 제법 고생 안 하고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미국 안 왔으면 큰일 났겠다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미국까지 비행기 타고 가는 체험은 정말 어렵습니다.
인천에서 뉴욕 케네디 공항까지 지상에서 제일 큰 여객기인 A380 타고 꼬박 열네 시간 가는 길은 나에겐 즐거움이 아니라 무덤에 내려가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냉동고처럼 차가운 에어컨 공기, 닭장처럼 느껴지는 이코노미 좌석에 꼼짝없이 붙어 있어야 하는 답답함, 몸살기가 도져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비행기 굉음을 견디며 마스크에 안대에 핫팩까지 덕지덕지 붙이고(미국 공항 엑스레이 검사에 늘 걸리는 게 이 핫팩이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 먼 길을 날아가야 하는 일은 젊었을 때와 달리 갈수록 지치고 힘들게 합니다. 그놈의 시차時差는 또 어떻구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을 말하라면 주저 없이 시차라고 답을 하겠습니다.
주님기쁨교회 새벽 설교만 아니었다면 삼사일 정도 미리 가서 시차에 적응할 여유가 있었을 텐데 약속한 설교 마치고 떠나야 해서 빠듯한 일정, 무려 열세 시간이나 시차 벌어진 곳에 내리자마자 다음날부터 강행군을 했으니 육십 넘은 육체가 제대로 감당할 리 없습니다.

 

도착 당일 뉴욕 공항에서 뉴저지로, 다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로 가 고색창연한 왝WEC 본부 선교사 숙소에서 잠을 자는데 드디어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알다시피 미국에서는 원주민이나 여행객이나 몸이 아프면 안 됩니다.
병원비가 워낙 비싸 고가의 보험에 들어 있지 않은 한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만약 밤중에 일이 생겨 앰뷸런스를 부르기만 해도 삼천 불이 그냥 날아갑니다. 어떤 분은 자동차 사고로 헬리콥터에 실려 가야 했는데 운반비만 오만 불이 나왔답니다.
한국에서는 만 원도 안 되는 일반 택시 타고 근처 대학 병원 응급실로 가 죽는 소리 섞어 애원하기만 하면 당직 의사가 긴급 처방을 하고 링거 주사라도 맞게 해 주지만 미국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주사는커녕 늦은 밤이라 약 한 톨 못 먹고 밤새 떨다가 첫날 강의 장소인 필라 제일교회로 갔는데 너무 힘들어서 앞이 안 보입니다. 온몸에 오한이 일어나 바람만 스쳐도 피부가 따끔거리건만 모인 사람들 때문에 에어컨을 꺼 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특성 때문인지 어딜 가나 난방은 잘 안 해도 냉방은 철저히 합니다. 소음인 체질인 나는 에어컨 바람을 한 시간 정도만 쐬어도 목이 퉁퉁 부어오르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 배려하느라 목에 붕대만 감고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몸 전체가 쇠 같은 거로 때리는 것처럼 너무 아파 쉬는 시간 잠깐이라도 리모델링한 교회 구석 한 방으로 가 잠을 자는데 연체동물처럼 땅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합니다.
얼핏 잠들었다가 손목시계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발을 질질 끌고 나와 밥을 먹는데 모래알 씹는 것 같습니다.
멀리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부터 가까이는 버지니아와 볼티모어에서 강의 들으러 온 분들 때문에 아프단 말 못 하고 간신히 간신히 참아 내어 낮은울타리 사역 한 축인 3일간의 복음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야말로 무슨 말을 했나 기억도 안 날 정도인데 그 3일간의 복음 사역이 죽음과 부활의 역사가 되었음을 안수경 사모가 증언해 주었습니다. 필라를 떠나기 전 카톡으로 보내온 그분의 편지로 간증을 대신합니다.

선교사님…
길고 긴 머나먼 고단한 여정을 지나 필라까지 복음 들고 달려오셔서 연일 계속해 육의 한계 상황과 싸워 가시며 모든 것을 풀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과 상관하여 선교사님 그 모습 그대로 큰 은혜와 감동이 되었습니다.
감격이었습니다.

이번 필라 사역의 제일 큰 혜택자는 저입니다.
선교사님 강의에 정말 놀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이루시기를 기뻐하시는 복음·회복·문화 사역을 선교사님 통해 놀랍게 연결, 통합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영·혼·육(혼=신의 확실한 개념… 혼과 영의 착각과 혼에 머무르지 않는 것)과 지·정·의(인격)의 개념이 확실히 정리가 되었으며 또한 이들의 상관관계 정리 감사합니다.
로마서 7, 8장 율법이 아닌 복음을 날마다 들어 영이 살고 육을 죽이고 다스리는 것과 더하여 인격에 있어 감정 다룸의 중요성과 지성이 감정과 함께 의지까지 온전히 주께 드려지는 데까지(예수를 닮은 인격자·성품자) 교체시켜 주시기를 (가르쳐 주신) 지성소 예배 통해 사모하고 사모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살리러 오신 참 신랑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엄청난 결혼 지참금 피값으로 사신 신랑이 신부를 위해 입혀 주신 의의 옷을 날마다 빨며(소원한 관계의 회복-죄와 상처로 인한 나의 잘못된 인식의 전환) 나와 결혼하신 아름답고 멋진 신랑 되신 주님을 사모하여 더 알고 싶어 지성소로 나아가기를 기뻐하며 거기에서 일어나는 (성품의) 교체와 회복을 사모합니다. 회복된 자가 누리는 놀라운 선물 지혜와 계시의 영, 5 JESUS POWER인 생·통·분·창·변, 부르심의 소망과 그 기업의 풍성함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더욱더 체험키를 소원하며 이 시간 그 크시고 놀랍고 섬세하신 나와 우리를 향한 사랑에 감격.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뭔데….

오늘 새벽도 기쁨과 설렘으로 눈뜨고 복음 듣고 지성소로 나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감격, 더 깊이 주님을 야다yada로 알아 가며 그분과 온전히 연합하여 생명을 탄생시키며 양육하는 사명이 이끄는 사역으로 힘차게 전진합니다.
선교사님을 부르셔서 가는 곳마다 복음으로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험난하지만 행복한 사명 주시고 사역하게 하시되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게 하시도록, 또한 약해져 가는 육체를 하나님 나라 위해 꼬옥 붙잡으시기를 기도드리며 주님 이름으로 크게 축복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이어진 뉴저지 양지 수양관에서의 천직 찾기 캠프
큰 이민 가방에 칫솔이며 샴푸며 속옷이며 강의 용품을 싣고 떠나는 길이 마치 유랑극단 같기도 해 아직 몸 상태가 풀리지 않은 채였지만, 그러나 여기서도 주님은 귀한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버지가 목사인 고등학생 아들이 등 떠밀려 왔다가 집에 가겠다고 조르는 걸 담당 선생님이 간신히 설득, 어떻게 3일간을 붙잡아 두겠나 싶었는데 첫날 내 강의에 은혜를 받더니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처럼 살아나는 것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확실히 나는 아이들 사역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자식 문제가 부모 문제라 할 수 없이 부모 사역을 주로 하지만 가끔 현장에서 철부지 아이들을 만나면 그렇게 가슴이 아프다가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이 내 강의 듣고 살아나는 걸 보면 주님이 왜 나를 이 먼 곳까지 부르셨는지 알겠다고 감격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었지요. 어른보다 집중이 안 돼 어른의 두 배는 힘든 게 다음 세대 사역이지만 그들이 내 사역 현장에 와 고맙다며 인사하거나 지긋지긋한 스마트폰에서 눈을 돌릴 때면 살아가는 기쁨을 배로 누리게 됩니다.

 

동부의 라스베가스라는 아틀란틱 시티가 바다 건너 눈앞에 펼쳐지고 미국 내에서도 어마어마하기로 소문난 에드윈 습지 근처 양지 수양관에서 3일 동안의 N세대 캠프 끝나자마자 다섯 시간 정도 떨어진 뉴저지 평화 수양관으로 이동, 쉴 틈 없이 제일 여선교회 수련회 세 번의 강의를 마친 후, 꽃밭으로 둘러싸인 숙소를 뒤로하고 다시 필라델피아 베들레헴까지 가서 화장실 들를 틈도 없이 우버 불러 타고 뉴저지로 옮긴 다음 조 본부장 집에서 마지막 밤, 다음 날 케네디 공항으로 가 스카이팀 멤버인 델타 에어버스 타고 다섯 시간 반 걸려 LA로 이동,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저스틴 형제 집에서 하룻밤 자고 지진 나기로 유명한 북부 지역 유카이파까지 엄청난 트래픽 뚫고 가 갈보리 힐 리트릿 센터에서의 큐 밀리터리 캠프 인도, 돌아와서는 LA 지부 멤버들을 위한 양육 타임 갖고 두 시간이나 연착한 대한 항공 공일팔 편 삼십일 디이 좌석에 앉아 열두 시간을 견딘 끝에 어제 인천에 돌아왔습니다.

백 번 넘게 간 미국에서 경험한 은혜 중 가장 특이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문화 사역보다 복음 사역과 회복 사역의 열매가 더 확실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전공(?)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 사역이었지요. 그래서 내가 받은 직분도 대한민국 최초의 문화 사역자였습니다. 지금도 어딜 가나 팔십 년대 말 내가 시작한 문화 사역의 열기熱氣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복음 사역과 회복 사역이 이민 사회 부모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안수경 사모 같은 분은 매일 남편의 복음 설교를 카톡으로 실어 나르는 분인데 나의 복음 강의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하고 랄리에서 온 진순 자매나 버지니아 김 목사 부부의 진지한 반응, LA의 지체들도 시간만 나면 복음 강의를 해 달라고 조릅니다. 그뿐인가요. 팔주 간의 흠스 한 번에 엄청난 은혜를 받고 다들 지성소로 들어가는 예배자가 되는 놀라운 일이 계속하여 일어납니다.

여러 번 이 지면을 통해 낮은울타리 사역의 초점과 관점, 지향점을 말씀드렸죠.
이제는 복음 사역과 회복 사역과 문화 사역이 융합되지 않고는 자녀 양육이 힘들어질 거라고 여러 번 강조했었죠.
복음 사역을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이 누구신가?’, 회복 사역을 한마디로 하면 ‘나는 누구인가?’, 문화 사역을 한마디로 하면 ‘세상 정신은 무엇인가?’인데 이를 다시 세분하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가 복음 사역의 초점이고 영으로 육을 이기는 방법, 신의 성품으로의 교체와 유지가 회복 사역의 초점이며 세상 정신에 속지 않기와 미디어 리터러시가 문화 사역의 초점이라는 걸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자녀 때문에 눈물 흘리던 부모들이 생수 맞은 풀잎처럼 일어나는 걸 보게 됩니다.

 

낮은울타리가 받은 소명은 다음 세대 부흥입니다.
부흥이란 말은 구약에 딱 한 번 나오는 용어라 우리는 건강한 다음 세대 양육이란 말을 즐겨 씁니다.
교육과 양육은 다르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양육이 되어야 하는데 주님이 낮은울타리에 주신 것은 복음 사역·회복 사역·문화 사역의 융합입니다. 통합이 아니라 융합입니다. 통합과 융합은 다릅니다. 셋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셋, 생명력과 통찰력·분별력·창의력·변증력을 갖추기 위해 복음과 회복과 문화는 같이 가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융합해 현장에 맞게 재구성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우린 해내었습니다. 그 혜택을 부산이나 서울, 뉴욕이나 LA, 시드니 등지에서 몇몇 지체들이 맛보고 있는 것이지요. 이 성공 사례를 국민일보 같은 데 광고를 하고 유튜브 같은 데 띄우면 보다 많은 사람이 달려들겠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쉽습니다. 뭔가 크게 한 방을 내야 성공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해결책을 갖고도 조용히 지내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은 소수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나는 여생을 그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진짜 형제 같은 이들. 피붙이보다 더 소중한 이들. 천국에 가면 같은 동네에 살 사람들. 주님 오실 때 함께 손을 잡고 기다릴 사람들. 그들에게 놀라운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이번에도 목숨 건, 아니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내일은 케이티엑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합니다.

 

문화 사역에는 여러 캠프와 학교들이 포진되어 있지만, 복음 사역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주로 맥베이Mcvey가 쓴 교재나 아가서·복음서 등을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과 신부의 영성을 확인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부모가 복음대로 살고 자식에게 복음을 설명하려면 그리스도가 주인인 복음이 부모 머릿속에 철저히 개념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전에 회복 사역 통해 사랑의 결핍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복음이 생수가 되어 흘러넘치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것. 낮은울타리 회복 사역에는 흠스와 틴즈 흠스, 키즈 흠스가 있는데 요르바 린다의 소중한 교회 김기동 목사께서 흠스만한 회복 사역이 없다 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이 일어나고 있으니 제가 어찌 흥분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문화 사역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이렇게 세 사역이 융합을 이루어 먼저 부모에게로 흘러가고 다시 그들 자녀에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사막 같은 다음 세대 삶에도 생수가 넘쳐날 것을 기대하는 일은 내 작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관광은 딱 하루, 그것도 마지막 날 오전 강의 마치고 멋지게 통역했던 하원이를 비롯 여섯 사람이 해 지기 전 부리나케 라구나laguna 비치로 가 라스 브리사스Las Brisas 맞은 편 유어쓰 카페U’rth cafe 에서 저녁 식사 한 게 전부지만 이번 삼 주 간의 미주 사역은 천국 가서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 주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엘에이까지. 우정의 도시에서 영화의 전당까지. 지상에서 영원으로. 광야에서 천국 문에 이르기까지. 섭리 가운데 만난 지체들의 얼굴이 펜실베이니아의 단풍나무나 캘리포니아 햇살처럼 떠오르네요. 펜실베이니아란 이름이 윌리엄 펜에 ‘숲속’이란 뜻의 베이니아가 합성된 거라면서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는 물론 포코노와 해리스버거, 아이비리그인 펜스테이트 강당에서 밤늦게까지 강의했던 기억이 소롯이 떠오르네요. 펜스테이트 가는 길에 지루할 정도로 늘어선 옥수수 밭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태평양 건너 머나먼 곳에 살다가 주의 은혜 가운데 서로 만나서 일박 이일 혹은 이박 삼일이나 삼박 사일 동안 함께 보내었던 지체들로 인해 나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졌습니다. 고난에 찬 삶을 살아가다가도 나를 통해 보내 주신 생명의 메시지에 감사해 하며 감격해 하던 얼굴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내 입에서 나온 복음을 듣자 깊이 전해 오는 울림 같은 것. 그 깨달음으로 인해 진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 무시무시한 사춘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아 한국어와 영어로 전개되는 강의에 지루해 하다가도 내 아재 개그 몇 마디에 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하루 종일 앉아있는 걸 힘들어하다가도 알라딘 패러디 영화를 만들며 환성을 지르던 이민 가정 아이들의 모습. 하루하루가 벅찬 이민 생활.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자녀와 힘든 관계로 살아가다 나를 만나 희망의 세계로 들어선 부모들의 경이에 찬 모습 등.

 


마치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들의 재깍거림.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주님 안에서의 사랑하는 지체들과 함께 한 추억의 사진첩이네요.
앞으로 또 어떤 사진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될지.
몇 장이나 더 보태야 이 세상의 삶이 끝나게 될지.
LA에서의 마지막 날 울산의 형제로부터 받은 문자는 아내가 암에 걸려 병원에 있다는 것, 그렇게 건강하던 아내가 어쩌다 암에 걸려 수술실에 실려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주님 섭리와 보호하심이 없다면 인간의 생명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내용을 읽는데 얼마나 숙연해지던지….
아직도 감기와 몸살 기운에 시차 문제까지 겹쳐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모를 정도지만 겸손하게 마쳐야 할 보케이션vocation 콜링calling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새벽입니다.
샬롬.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19 11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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