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광야를 지나며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12 12:27
조회
18

 

어젯밤에는 너무 더워서 잠을 못 잤습니다.
습도가 너무 높아 온몸이 끈적거릴 정도였습니다.
새로 얻은 지하 채플에 물이 배어 나와서 에어컨 두 대, 선풍기 두 대, 공기청정기 두 대, 환풍기 일곱 대를 돌렸는데도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습기가 제거되지 않아 새벽부터 점검하러 나갔더니 팔십몇만 원 주고 산 가야 제습기 상단에 문신처럼 91이라는 빨간 글씨가 나타나 섬뜩해 보이기까지 합니다(91은 현재 습도 91%라는 표시입니다). 이제 곧 여기서 서울 본부 빌더스 모임을 해야 할 텐데 다들 눅눅하고 호흡 곤란하다고 돌아서 가지나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옛날에는 흙바닥에 가마니 깔고 앉아서도 일주일 부흥회를 치렀는데 요즘은 에어컨 없는 데서 모임을 갖거나 지하에 교회를 개척하면 눈 마주칠까 봐 아는 사람도 멀리 돌아서 갈 정도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지하라도 그렇지 그냥 놔두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물로 모내기를 할 정도니 그러잖아도 새가슴인 나는 비싼 돈 주고 인테리어 한 수고가 날아가는 것 아닐까 조마조마합니다.
너무 놀라 유경 시켜 건물주에게 전화했더니 “지하 생활은 처음이지?” 하고 놀리는 듯한 질문만 들었답니다. 지하 생활이 처음이라뇨?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내 인생 십 분의 구는 전세이거나 월세였고 그중 상당한 시간을 지하나 반지하에서 보냈는데 처음이라뇨. 이번 건물주는 유난히 까다롭고 유난히 돈에 애착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건물에 문제가 생겨 전화라도 걸면 돈 쓰는 일 생길까 봐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입니다. 세입자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달 들어오는 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이 동네에 왜 이렇게 많은지 지역 역사라도 뒤져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엔 친절한 척하더니 계약서 쓰고 나자 태도가 변하는 중개소 직원도 그렇고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 달면 볼품없어진다고 실내로 끌어들이게 해서 고생은 고생대로 시키고 애먼 돈 십오만 원을 날리게 만든 새 사무실 주인도 그렇습니다. 지하 세입자용 화장실이 2, 3층에 나 있는 데다 시설이 엉망인데도 약속과 달리 찔끔 고쳐 주는 흉내나 내고 사무실 창문 유리가 밖이 안 보일 정도로 상했는데도 바꿔 줄 생각은커녕 이삿짐이 왜 이리 많으냐고? 이러다가 집 내려앉겠다고 엉뚱한 불평을 해댑니다.
왜들 이러시는지….
건물 하나로 평생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교회 공간 같이 쓰기로 해 놓고 갑자기 짐 싸 갖고 나가라는 선포는 또 무엇입니까?

평생을 갑으로 산 사람은 을의 공포를 모릅니다.
얼마 전에 청량리 쪽에서 강북 지부가 사용하던 교회에서 쫓겨나는 황당한 일을 겪었는데 이번엔 본부가 빌려 쓰는 교회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표현은 정중했지만 인사하러 보낸 자매들로부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줄줄이 예정된 학부모 교육과 자녀 교육을 어디 가서 한단 말인가. 근처 안 가 본 교회가 없는데 어디 가서 장소를 빌리라고….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예배당 안에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해 놓을 정도로 어마한 건물에 성도도 별로 없어 늘 한산한데 방 하나 빌리러 가면 불법 방문 판매원 쫓듯이 쫓아내는 건너편 하무슨교회 목회자였죠.
지하 중등부실 하나 빌려 쓰는 것도 오만 눈치 보게 만들었던 염무슨교회는 또 어떻구요. 매주 한 번씩 그 교회 지하실로 모임 인도하러 갈 때마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 받을까 봐 상당히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수백억 들여 새로 지은 교회 건물 이럴 때 쓰라고 주님 허락한 거 아니겠어요? 처음 말은 그럴듯해서 ‘아, 이제 이 교회는 얼마든지 빌려 쓸 수 있겠구나’, 웬걸 한 달도 안 돼 외부인이 왔다 갔다 해서 자기 성도들 불안해한다고 다신 오지 말라고 쌀쌀맞은 어조로 내쫓는 무무슨 교회는 기가 막힘의 절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외부인이라니.
천국 가면 같이 살 사람인데 우리가 외부인이고 경계 대상이라니… 정말 기가 막혔지만, 그뿐이 아닙니다.
아예 학부모 교육받으러 온 성도에게 전화 걸어 담임 목사님이 교회 밖에는 얼씬대지 말랬는데 무슨 일로 거기까지 갔냐고 호통을 쳐서 겁에 질린 교인 거두어들이는 소무슨교회도 있습니다. 낮은울타리 사역하느라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로 삼십 년을 살아온 나는 우리나라 교회가 왜 이렇게 바닥을 헤매는지 그 이유를 압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성도를 우물 안에 가두어 두고 같은 아버지 형제인 선교 단체 향해 이상한 방법으로 갑질 해대는 것 보면 ‘아직 더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야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평생을 인싸 대신 아싸로, 갑 대신 을로 살아온 나는 갑의 무심함에 시달릴 대로 시달렸습니다. 특히 큰 교회 예배당 빌려 쓰는 데는 질릴 대로 질렸습니다.
서울 안무슨교회 다닐 때 안수 집사 비용으로 얼마 내라고 해서 빚까지 냈었고 교육관 지을 때 건축 헌금하라고 예배 때마다 강조해서 소득에 비해 어마한 헌금을 냈는데도 낮은울타리 행사를 하려고 신청하자 안면 몰수하는 모습에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습니다. 그뿐인가요. 서울 강무슨교회에서는 외부 사역 금지라는 담임 말 한마디에 교회 학교를 돕던 사역이 하루아침에 중단이 되고 지방 새무슨교회에서는 부모 사역이 불같이 일어나는 중에 장로 한 분의 모함으로 노점상처럼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성도 수 많고 좋은 건물 가진 교회는 우리 같은 외부인(?)에게 대부분이 갑입니다. 갑도 슈퍼 갑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오셔도 갑질을 해댈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하룻밤 엠티MT를 하려 해도 당회 허락을 받아야 하고 당신들은 외부인이니까 우리 교인 마음 상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하고 두 번 이상은 아예 빌려 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집회 후에는 베드로나 요한 불러다가 왜 바닥에 무교병 가루와 무화과 껍질 흘렸냐고 야단도 칠 것입니다. 마지못해 예수님이 앞으로 나와 “내가 이 교회의 주인이다” 그러면, “웃기고 있네. 우리가 이 예배당 짓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하고 삿대질해 댈 것입니다.

 

결국, ‘주님 주시는 소명에 따라 학부모와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체 공간이 있어야 한다. 힘들더라도 마음껏 쓸 수 있는 건물을 빌려야 한다’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생 우리 건물 갖지 말자. 부동산에 돈 잠기게 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교회 건물 빌려 쓰자. 일주일 내내 풀full로 사용하는 교회는 별로 없으니 그 틈새를 절묘하게 이용하자. 지역 교회도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우리도 아버지가 하나님이니 같은 형제 관계로 웃으며 잘 빌려주겠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같은 형제 관계는 맞지만 성공한 적자嫡子와 가난한 서자庶子는 신분 차이가 하늘과 땅이었습니다. 홍길동이 대감인 아버지 앞에서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다’며 자신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게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설교 시간에는 원수도 용서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던 분들이 형제요 동역자인 선교 단체에 교회와 사람 빌려주는 일에는 어찌 그리도 매정한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다행히 개미 같은 몇몇 학부모 빌더스들이 헌금을 해 주었고 서민의 왕이라는 서울 신용 보증 재단에서 최고 한도 액수까지 신용 보증을 해 줘 하나은행에서 큰돈을 대출받은 뒤 지하철역 근처 지하 공간을 얻었는데 불법 다단계에 보이스 피싱 하던 사람들이 야반도주를 하여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곳을 완전 개조, 인테리어비만 사천만 원 넘게 들고 추가 제습기 구입이며 떨어져 나간 곳 페인트칠이며 어린이실 난방 시설이며 입구 철문을 다는데 또 얼마가 들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놀고 있는 기존 교회 건물 빌려 쓰면 이렇게 돈 낭비 안 해도 되는데 늘 재정에 허덕이는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쩌다 우리가 영적으로 형제 관계인 사람들에게 외부인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
보증금을 꽤 많이 냈는데도 사무실 및 강의실 월세가 적지 않게 나와 고민하다가 ‘새로 얻은 지하에서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예배드리자, 얼마 안 되는 헌금이라도 월세에 보태자.’ 그래서 신학교 나온 전도사 간사와 목사가 돌아가며 설교하기로 하고 눅눅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대책 없는 개척입니다. 이것 또한 기존 교회 건물을 빌려 쓰면 편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을 텐데 또다시 광야로 내몰린 것입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부산 지부 어린이들이 목청을 높여 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는데 전율이 일어나더군요.
저 녀석들이 광야廣野를 알기나 알까?
작년 여름 캠프 때 가르쳐 준 노래인데 <너는 내 아들이라>와 함께 이번 가족 캠프의 주제가가 되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부자 교회들은 우릴 밀어내도 가난한 아이들은 우릴 사랑합니다. 각 지부에서 살아남은 부모의 자녀들은 나를 스승처럼 따릅니다. 부산에서 새로 시작한 NCS집중력 학교라는 월요 학교 학생들은 SOTSchool Of Tomorrow 교재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을 영어로 줄줄 외울 뿐 아니라 <소원>이나 <광야>같이 어려운 노래도 자연스럽게 따라 부릅니다. 같이 온 부모들은 뒷자리에 앉아 앞에서 자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지난주에는 에베소서 1장 3절을 가지고 공부했는데 어린아이들이 어찌나 말씀의 의미를 잘 파악하는지 누적된 피곤이 한꺼번에 날아갈 정도였습니다.
이번 낮은울타리 가족 캠프에서는 수준 높은 PPT 영상을 통해 ‘방탄소년단 읽기’와 ‘알라딘 읽기’를 통해 주님의 통찰력을 배웠습니다. 문화 통찰력을 뒷받침하는 말씀 공부는 당연지사, 예수님 오신 목적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과 풍성하게 살게 하려는 계획’이라는 걸 알려 주자 조무래기 손으로 노트에 열심히 받아쓰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울컥 무엇인가가 올라왔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첨단 문화 수업에 이어 연필이나 볼펜으로 많게는 하루 다섯 장 넘게 받아쓰는 아이들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요? 스스로 핸드폰 반납하고 손 글씨로 강의 내용 받아 적고 조별 모임 후 나와서 발표까지 하는 아이들 몇이나 된답디까? 수영장 안 가고 놀이동산도 없이 힘들게 빌린 교회당 한구석에서 행여 쫓겨날까 봐 “떠들지 마라. 뛰지 마라”를 귀에 단 채 하루 종일 강의 듣고 영화 만들고 어른도 어려워하는 아가서 복음 듣고 토론해서 발표력 향상하는 아이들 보고 감사해하는 게 그리 잘못된 일인가요?
큰 건물 가지고 있다 해서 그렇게 교만하면 소금이 제맛 잃은 것 아닌가요. 불필요한 권위주의와 복음 없는 설교 때문에 권사, 장로 자녀들 슬금슬금 교회 떠나게 하고 인공 지능이 직업의 반을 빼앗아간다고 아우성치는 시대에 고생해야 사람 된다고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 산골짝에 데려가 <성령의 밤> 열고 내용 파악해 보면 이십 년 전 수준으로 아이들 수련회 때우면서 빚내서 지은 예배당 자랑하는 건 주님도 웃을 일 아닙니까.

 

자체 건물 하나 없는 우리는 삼십 년 동안 광야에서 비바람 맞으며 큰 교회가 못하는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복음 사역·회복 사역·문화 사역의 융합을 통한 N세대 양육에의 전문성입니다. 그중 복음 사역은 새로 시작할 때마다 애틋한 반응,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필라델피아까지 소문나 거기서 세미나를 열 예정이고 지역 목회자까지 참석한다니 황송할 뿐입니다 흠스를 비롯한 회복 사역은 수지 선한 목자 교회나 시드니 지부 등에서 놀라울 정도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으며 문화 사역은 캠프, 잡지, 개인 강의만으로도 삼십 년간 독보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걸 주님과 우리 간사들, 빌더스라 불리는 학부모들만 아실 겁니다.
물론, 우리의 전문성은 온전히 다음 세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소명은 자식을 비롯한 다음 세대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일입니다. 저들을 위해 우리는 양육 전문가로 엄청난 훈련을 받았고 그 전문성이 깨어 있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생명력으로 나타나는 걸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가족 캠프는 그동안의 낮은울타리 사역 노하우가 부모의 사랑과 맞물려 제 기능을 발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가족 가장을 맡고 어머니가 영화 시나리오를 짜는 어려운 일을 캠프에 온 부모들이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이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지성소 예배와 계시의 복음은 물론 방탄이 세계 주요 무대를 점령하고 <알라딘>이 관객 천만 명을 넘긴 시점에서 말씀을 통한 문화 읽기는 정말 시기적절했습니다. 더구나 8주간의 부모 통찰력 학교BBS, 다시 8주간의 부모 회복 학교 흠스HMMS, 자녀에게 복음을 문화로 가르치는 주말 학교 JPAJesus Power Academy와 주니어 회복 사역인 틴즈 흠스, 어린이들에겐 심오하기 그지없는 키즈 흠스를 6주간 마친 상태에서 열린 가족 캠프는 기쁨과 은혜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곧 주니어 집중력 학교인 NCSNajonwooltari Concentration School, SOT를 교재로 하고 낮은울타리 사역 노하우가 총집결된 데일리daily 학교가 시작되면 낮은울타리 생명 공동체는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에베소서 1장 17절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은 아이들과 부모가 모여 내일을 향해 멋진 비행을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 주신 기득권을 자기 방어용으로 남용하는 사람들의 횡포에 시달리다가도 눈앞의 아이들과 부모를 보면 새로운 소망이 생기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참새도 제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죠. 우린 그 정도 아니니 형편이 좋아도 아주 좋은 거지요.

 

그래요. 거기서 무슨 선한 것 나겠냐며 비웃는 사람들. 우아하게 지은 대리석 건물에서 눈을 돌리면,
아, 이렇게 우리에겐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구나.
각자 섬기는 교회는 달라도 주님 안에서 하나라는 일체감이 우리를 한 가족으로 살게 합니다.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나라에 게임 중독자가 위험할 정도로 늘어나고 꿈을 잃어 자살하는 청소년이 줄을 잇고 역기능 가정, 역기능 교회가 독버섯처럼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생명력·통찰력·분별력·창의력·변증력으로 살아가겠다는 부모와 자녀가 있는 한 누가 갑질을 한대도 포기하진 말아야 하겠구나. 이전과 달리 휴가를 내 참석한 아버지들 중 강무성, 안종훈, 김영현, 이승헌, 박준호 아빠가 조장을 맡자 캠프에 온 아이들이 한층 순해지고 열심을 내는 걸 보면서 앞으로는 아빠를 대상으로 사역을 해 나가야 하겠구나. 아빠들에게 복음과 회복과 문화를 통한 영적 리더십을 심어 준다면 가정이 살고 바닥을 기던 저들 교회 학교도 비상飛翔할 수 있겠구나. 같은 편에게 수없이 쫓겨 다니고 외면당하고 오해받아도 저 아이들, 저 아빠들, 저 엄마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구나. 하긴 예수님도 그 당시 완전 아싸가 아니었던가!
우리를 아싸로 알고 왕따 시키면 드디어 예수님 반열에 올랐다고 좋아해야지 투덜거리긴…

광야를 지나며.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19 10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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