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오만과 편견

작성자
Peter
작성일
2020-06-12 10:23
조회
18

지방의 대형 교회 다니는 여성도 하나가 “우리 교회 목사님은 방탄소년단을 좋다고 하는데 왜 신 선교사는 방탄을 나쁘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며 더 이상 자녀 교육 모임에 나오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 왔다는 얘기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예배 시간에 담임 목사가 “여러분, 방탄소년단이 우리나라 품격을 높여 준 것 감사하지요? 우리가 방탄 멤버 중 하나라도 초청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자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난리가 났었다는 겁니다. 그걸 본 이 성도는 얼마 전 대학에서 한 세미나 중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는 자칫 누가 왕이냐를 묻는 주님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헷갈릴 수 있으니 잘 설명해 주라”는 내 얘기가 터무니없이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초신자 수준의 여성도 J는 ‘자기 교회처럼 큰 집단을 이끄는(?) 담임 목사의 말에는 오류가 없을 것이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이 다르다고 느낀 순간 주저 없이 대형 교회 목사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하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내용인데 대형 교회 리더가 심어준 오만과 편견에 갇혀 상식적 이성 활동을 거부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웃고 넘어가려 했으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더군요. 수없이 오만傲慢 편견偏見에 의한 피해를 당하면서도 꾹 참고 넘어간 적이 정말 많았지만 현대 문화에 민감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통찰과 분별을 돕기 위해서라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방탄은 전 곡의 90% 이상을 멤버들 스스로가 쓰는데 이는 한국 아이돌 시스템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지요. 다른 기획사와 달리 방탄 음악의 가사는 방탄 멤버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중심으로 구성이 됩니다.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문제점을 정확히 비판하고 깊이 위로도 해주는 노래 가사는 방탄과 비슷한 세대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교회 안으로 불러들여 아수라장을 만들게 하거나(그렇습니다. 만약 U교회에 방탄 멤버가 온다면 그 일대 뿐 아니라 지역 전체가 마비될 것입니다. 아마 근처 소형 교회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할지 모릅니다) 예배 시간에 특송을 부르게 할 정도는 절대 아니라는 걸 J는 왜 몰랐을까요?


“너를 사랑해라. 네 인생은 네 것이다. 한 번 밖에 못 사는 인생 맘껏 즐겨라.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 등 노래 가사 몇 마디만 들어도 교회에 초청할 만큼 매력적인 가수는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는데 대형 교회 목사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아 왔던 다음 세대 양육의 소명감은 물론, 문화에 대한 기본적 통찰마저 내던져 버리는 J보다 J를 그렇게 만든 U교회에 화가 났습니다.


“동성애란 가증스러운 행위이며 동성 결혼 합법화는 창조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다.”라는 말씀과는 완전 반대로 “성 소수자는 보호되어야 하고 동성애 합법화는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들을 강단에 세운다고?


“한 번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요. 그 후에는 모두가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는 말씀과 달리 DNA라는 앨범을 통해 “삶은 무한히 반복됩니다. 우리는 구세주 없이도 영원을 살 수 있어요.” 하는 아이들을 교회 강단에 세운다고?


주님은 “너는 나의 팬이 아니다. 너를 피로 값 주고 산 이는 나밖에 없다. 너는 나만 의존해야 한다.” 방탄은 “당신의 피 땀 눈물은 내가 다 가져갑니다. 왜냐하면 나의 팬인 당신을 무지 사랑하거든요.”


주님은 “니체가 만든 초인은 허상이다. 초인은 없다. 죄인과 의인이 있을 뿐이다.” 방탄은 “니체는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용감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를 본받으십시오.”


주님은 “우상을 좋아하고 섬기는 건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의 유일한 구원자다. 우상을 버리고 나에게 와야 산다.” 방탄은 “우상이 왜 나쁩니까? 즐겁게 살려면 우상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세상이 속일지라도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방탄은 뱁새라는 노래를 통해 “세상은 썩었습니다. 기존 질서에 반항하십시오. 순종은 나약한 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주님은 “데미안이 무슨 소용 있니? 알이 아니라 나다.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준 적 없다고 했잖니?” 방탄은 “데미안이 말한 대로 우린 악도 숭배해야 합니다. 살려면 알에서 나오세요. 그게 구원입니다.”


주님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단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방탄의 리더인 랩 몬스터 남준은 “어리석은 중생아 너도 신이 될 수 있어. 고개 똑바로 들고 지어 봐. 부처님의 미소 예수님의 걸음 알라신의 기도 마리아의 사랑까지 모두 네 안에 있어”


그뿐인가. “Yo, this is god rap 난 종교 따윈 없어. 나의 신은 나이기에 어떤 시련이 오든지 난 두 손을 모으고 내게 말해 Amen”
이래도 방탄을 교회 강단에 세우겠다는 담임 목사의 말에 열광하겠는가?

그녀는 U교회 근처 대학에서 했던 내 세미나에 꼬박꼬박 참석해 제일 열심히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었기에 분별력 없이 홱 돌아선 모습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제 그의 자녀들은 어떻게 될까….
물론, 개인적 신념을 부추기는 메시지에 칼군무는 물론 N세대를 향한 교묘한 홍보 전략이 최고의 음악과 만나자 엄청난 시너지를 내기 시작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싸잡아 나쁘게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모든 예술과 문화가 그렇듯이 완전히 나쁜 것도 완전히 좋은 것도 없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었다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방탄의 노래 중 일부를 칭찬하는 것과 방탄을 초청해 교회 강단에 세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 차원을 이해 못 하는 J같은 성도가 소형 교회보다 대형 교회에서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제동 씨나 청와대 행정관 출신 탁현민 씨는 한 번 강의에 천오백만 원 이상을 받았다는데 방탄소년단을 데려오려면 도대체 얼마를 주어야 한답니까? 가사 내용은 그렇다 치고 예배 때 강단에 서서 여러분이 원하기만 하면 방탄을 데려올 수 있다고 외치는 건 대형 교회 목사만이 할 수 있는 돈 자랑 아닙니까? 그걸 본 소형 교회, 개척 교회 다니는 아이들은 뭐라 할 것입니까? 왜 우리 부모는 지지리도 가난한 교회를 다니게 해 좋아하는 방탄 얼굴도 못 보게 하는가? 따지다가 교회를 옮겨 달라고 울지 않겠습니까? 그걸 보는 개척 교회 지도자 마음은 얼마나 미어지겠습니까?
오만입니다. 가진 자만 드러낼 수 있는 오만입니다.
개척 교회도 개척 교회지만 이 땅에서 삼십 년을 사역해 온 우리 역시 사역비가 모자라 오늘도 은행에 가 천오백만 원 대출을 받기 위해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 까다로운 심사를 일주일 넘게 받은 후로도 요구한 돈이 다 나올지 안 나올지, 이율은 얼마가 될지 가슴을 졸여야 합니다.
방탄 초청할 돈의 십분지 일만 우리에게 준다면 수많은 아이들을 게임 중독에서 건져낼 수 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돈을 하루에 다 써 버리는 건 아무리 부자 교회의 허세라도 너무하지 싶습니다.


“낮은울타리처럼 작은 곳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나? 대출받아 살아가는 주제에 사역은 무슨…” 흔히 성공했다는 분들이 자기 교인 못 나오게 막으면서 하는 말입니다. 생각 좀 하는 성도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면서 나보다 더 혀를 차기도 합니다. 이는 편견입니다. 크거나 작거나 간에 낮은울타리 사역은 전부 주님이 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런 사역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부산 지부만 해도 잘 훈련된 부모가 수십 명이나 됩니다. 교회 교육에 절대 필요한 교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터에 복음 사역과 회복 사역과 문화 사역으로 잘 훈련된 부모들이 구속사와 언약 중심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성경 공부가 아닙니다) 틴즈 흠스, 키즈 흠스 같이 깊이 있는 회복 사역은 물론(치유가 아닙니다), JPA라는 전문 주말 학교, 캠프나 수련회를 운영해 직접 자녀들을 세워 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소형 교회는 교육 인프라가 약하다는 이유나 있지만 모든 것이 갖춰졌다고 허세를 부리는 대형 교회에서 죽었다 깨나도 이런 양육 훈련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 시간의 법칙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오랜 세월 한 길만 걸어오게 하신 주님의 뜻은 반드시 규모가 커야만 확인되는 게 아닙니다. 전문성은 지역 교회보다 선교 단체가 더 깊게 쌓아간다는 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주님을 의존하여 사는 자는 결코 오만과 편견에 빠질 수가 없는데 설교를 자랑하고 영성을 자랑하는 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오만과 편견에 대해 얘기하자니 18세기와 19세기 영국을 무대로 사랑의 엇갈림을 그린 소설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결혼을 둘러싼 당대의 물질 지향적인 세태와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풍자해 낸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으로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9년 영국 BBC 방송국은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작가에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요.

죽은 지 이백년이 넘었지만, 오늘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얻은 제인 오스틴은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6남 2녀 중 일곱 번째이자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겨우 열한 살까지에 불과하지만 어려서부터 습작 훈련을 받아 열다섯 살 때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스물한 살 때 첫 장편 소설을 완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1796년 첫사랑에 빠진 오스틴은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첫인상>의 집필에 몰두하지요. 일 년 만에 완성한 이 소설은 출판사에 원고조차 보여 주지 못하고 거절당해 묵혀 있다가 1813년에야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되어 간신히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녀의 처녀작이 오히려 <이성과 감성>보다 늦게 출판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평생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던 오스틴은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친척과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초턴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사전에 보니까 오만은 ‘태도나 행동 따위가 방자하고 건방짐’,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라고 나와 있더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은 대개 가진 자의 전유물로 나타납니다.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을 업신여기기 쉽습니다. 무시하고 압박합니다. 그 때 나타나는 몹쓸 태도가 오만과 편견입니다.
한국 사회가 유난히 성공주의에 열광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교회마저 그렇게 변해 가는 건 너무도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학교 세미나 때 제일 먼저 와서 맨 앞줄에 앉아 자녀 양육에 관한 강의를 열심히 듣던 J가 “대형 교회 설교자인 우리 목사님 말은 맞고, 작은 선교 단체 운영자인 신상언이는 틀렸다”라고 선언한 뒤 가차 없이 비판자로 돌아선 건 “대형 교회 목사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 편견은 리더로부터 흘러나온 게 분명합니다.
십계명 강해라면 모를까,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는 자기 담임보다 내가 더 많이 연구하고 분석했을 거라는 합리적 이성은 거부한 채 일방적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대형 교회 성도라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합니다. 목사나 성도나 대형 교회 병에 걸리면 생명력은 물론 통찰력과 분별력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지요.


신광은 목사라는 분은 대형 교회를 이렇게 정의했었죠..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갑작스럽게 특이한 종교 사회적 현상 하나가 출현했는데 그것은 주일 예배 출석 2천 명 넘는 교회들이 보편적 교회 형태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들 거대한 메가 처치 영향력은 너무도 강력하여 전체 기독교회가 이들의 영향력 아래 포섭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메가 처치 중독 증세는 2차 대전 이후 종교 및 사회 일반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대형화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겠으나 개신교회 내에서 현저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정상적으로 볼만한 하등의 근거가 없다는 게 문제다.”

에이레네라는 필명의 크리스천은 인터넷 카페에서 “신약 성경에 나와 있는 초대 교회는 관계적 공동체로, 대형 교회와 같은 기관 중심이 아니었다. 성부 하나님의 가족이 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 신부로서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한 신자들의 모임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대형 교회 만들려는 목회자나 분별없이 대형 교회 리더를 추종하려는 성도들은 이런 유기적 관계가 아닌, 거대 조직의 구성원에 불과한 채 자칫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욕망의 전차가 되기 쉽다. 과속으로 달려가는 이 기차를 멈추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기차이기 때문에 연료가 공급되는 한 끝없이 달려가기 때문이다.”


박영돈 목사는 또 다른 인터넷 카페에서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10년 후 지금의 교회를 해체하여 절반 이상의 교인들이 약한 교회로 가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반가워하며 “교회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본질을 구현하기 힘들어지는데 성령 안의 친밀한 교제와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천수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 담임 목사와 밥 한 번 먹은 적 없는 군중에게 어찌 정상적인 목양牧羊이 가능하겠는가? 대형 교회 무리 속에 안일하게 묻혀 살아가고 있는 익명匿名의 크리스천들은 불쌍하기 짝이 없다. 교회가 대형화되면 그 구조가 안고 있는 생래적 속성상 시대적 가치관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종말적 영적 신앙생활보다 성공주의 중심의 세상 정신 공격에 속수무책인 토양을 조성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대형 교회는 겨자씨처럼 미미한 존재의 갈급함을 통해 은밀하게 진행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보다 물량주의와 성장제일주의라는 세속화에 매몰되기 쉽다. 그리하여 겸손과 애통이 본질인 성령의 능력으로 산출되는 영적 영향력을 세상에 흘려보내기는커녕 거대한 건물과 막대한 재정, 수적인 위력으로 세상을 압도하려는 패권주의적 오만함의 구린내를 풍겨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쉽다.

 

이뿐인가? 대형화된 교회는 영적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지도자와 장로들의 허영심, 종교적 야망과 권력에의 욕망을 끝없이 분출하는 가운데 이 땅에서 대형 교회 이루는 것이 목회 성공의 척도라는, 하나님 나라와 상반된 가치관으로 수많은 젊은 목사를 오염시켜 그 허욕의 길을 따르도록 강력한 영감을 불어넣는 과오를 범하기 쉽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데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라 안타깝기만 하다. 대형 교회 교인들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한 대형 교회 해체는 불가능할 것이다. 교인들이 좋은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 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목사에게 떼거리로 몰려들어 대형화에 일조하는 교인들 보면 과연 그들이 살아있는 백성인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왜 그들은 담임 목사에게 직접 양육 받지도 못하고 심지어 마주 앉아 밥 한 번 먹지도 못하는, 군중 속 이름 없는 무리로 취급받는 자기비하를 스스로 자처하는 것일까? 대형 교회 안에서만 누릴 어떤 이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명한 목사가 시무하는 대형 교회에 속했다는 알량한 자부심,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허영심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드러난 것 아니겠는가? 그들은 대형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서 자신을 정당화하지만 대부분 노회나 총회를 통해 연합 활동을 하면 다 해결될 것들이라 궁색한 변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 이상 이 땅에서 대형 교회 이루는 것이 목회의 목표며 그 꿈을 실현한 목사를 이상적으로 떠받드는 희한한 풍토가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대형 교회 목사들이 건강하지 못한 변칙적 목회를 하는 이들로 취급받아 목에 힘을 주지 못하고 몸을 바짝 낮출 수밖에 없는 새로운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대형 교회 다니는 것에 자부심 갖기보다 세속화・집단화에 사로잡혔던 걸 부끄러워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해 본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대형 교회 반대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면 대형 교회나 소형 교회나 무슨 문제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낮은울타리 사역을 하다 보니 대형 교회가 갖고 있는 폐단이 더 잘 보이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오늘 언급하는 오만과 편견입니다.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무시하고 쉽게 정죄하는 태도는 물론, 수백억 들여 지어 놓은 예배당을 결코 빌려주지 않겠다는 자세, 혹 빌려주더라도 눈물 날만큼 까다롭게 구는 걸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닙니다. 규모가 큰 교회나 선교 단체 리더는 극진히 대하면서 작은 교회 목사나 사역자 우습게 보는 걸 목격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자기도 교인을 얻어 오거나 뺏어 왔으면서 신천지 빙자하여 교회 밖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건 유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선교 단체도 엄연한 교회인데 너무나 쉽게 교회 밖이라고 단정하는 건 일종의 횡포지 싶습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던 제인 오스틴.
시대의 풍랑과 동떨어진 채 영국 중류층 계급 남녀의 연애와 결혼을 그린 그녀의 작품들은 연애 소설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일견 도덕과 예의범절을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으로는 당대 여성의 지위와 관련된 영국 사회의 모순점들을 날카롭게 비평하고 풍자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몇 구절을 인용해 봅니다.

“종종 오만이 허영심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사실은 아주 달라. 허영심 없이도 오만할 수 있어. 오만은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평가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우리에 대해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바와 더 관련이 있거든.”

“돈이 목적인 결혼과 분별 있는 결혼의 차이가 뭘까요? 어디까지가 신중함이고, 어디서부터 탐욕일까요?”

“난 오만함이란 인간에게 아주 흔한 결함이라고 생각해.”

“그 정도면 오만할 만도 하지 않겠어. 집안 좋겠다, 재산 많겠다, 원하는 건 전부 갖췄겠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자기를 대단하게 여긴다고 이상할 것도 없잖아.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 정도면 얼마든지 오만할 자격이 있다고 봐.”

내가 쓴 글이 제인 오스틴의 발밑도 못 간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제인 오스틴만큼 오만과 편견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큰 교회라고 다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큰 교회 목사라고 모두가 함부로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큰 교회 다닌다고 해서 한결같이 담임 목사를 우상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인터넷에만 들어가도 큰 교회 폐단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글이 넘쳐나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썩는 게 문제일 것입니다. 크면 썩기 쉽다는 것. 썩음의 징조 가운데 하나는 오만과 편견이라는 것. 자기가 제일 낫다고 우기느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겸손함을 잃어버리는 것.
오늘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J라는 자매,
자녀 양육을 잘하고 싶어 낮은울타리에 왔다가 은혜도 받고 소명도 깨달았다면서 좋아하다가 담임 목사 말 한마디에 홱 하고 돌아선 건 너무했지 싶습니다. 방탄 아니라 연탄이라도 전문가가 따로 있는 법인데 어떻게 대형 교회 담임 말이라고 다 믿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peter-eon@hanmail.net

월간 낮은울타리 2019 9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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