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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교회에서의 정말 소중한 3일

작성자
신상언
작성일
2019-10-22 10:16
조회
48
 



 

LA 소중한교회Precious Community Church 3일간의 부흥회를 마쳤습니다.

 

사실 ‘회복’을 주제로 한 부흥회 인도는 내 생애 처음입니다.

나는 부흥회 강사가 절대 아닙니다. 실력도 없는 데다가 부흥회에 맞게 소리를 지르거나 힘차게 찬양 인도하는 것도 버거운 터라 부흥회 인도자로 부름 받는 일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소중한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민 교회 사정상 성도들의 회복이 절실하다며 낮은울타리 흠스HMMS 사역을 목회에 접목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역 시작하기 전 부흥회 인도를 통해 성도들을 일으켜 주면 어떻겠냐’ 하시는 김 목사님 제안에 얼떨결에 ‘예스’라고 대답한 게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기동 목사님은 고구마 전도 사역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국제 고구마 사역 창시자로 전 세계를 다니며 엄청난 부흥을 일으키는 동시에 백인들만 사는 캘리포니아 ‘요르바 린다’라는 곳에서 이민 목회를 견실하게 하고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미 30년 전 과천교회 교사 강습회 강사와 부장 집사로 만난 바 있지만, 그동안 여러 일로 각자 바쁘던 중 작년 가을 LA에서 조우遭遇한 후 흠스 사역에 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게 이번 집회를 여는 계기였지요.

이민 목회를 해 보니 회복 사역이 절실한데 기존의 그 어느 것보다 낮은울타리 흠스 사역이 복음적이라 생각되어 강사로 초청하고 싶다는 말에 덜컥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던 게 사실입니다. 부흥회라니. 세미나도 아니고 부흥회라니. 부흥은 말 그대로 영적 각성을 일컫는 말 아닙니까? 침체되었던 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아닙니까? 물론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부흥회 강사는 그 통로 역할을 잘해야 하는 사람 아닙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전교인에게 3일 밤낮 총 여섯 번의 집회를 통해 영적 도전을 하고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도우며 회복 사역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은 엄청나게 부담되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부흥 사역의 대가인 김 목사님 면전에서 3일간 집회 인도를 해야 하다니, 미쳤다는 후회가 들 정도였죠. 그러나 다행히 최근 들어 나에게 부어진 놀라운 은혜는 복음의 개념 정리와 흠스를 통한 회복 사역에의 확신, 그로 인해 주님의 임재로 깊이 들어가면서 갖게 된 영적 안정감이었습니다. 그러니 전 같으면 부흥회라니요, 라고 거절할 것을 네 알겠습니다, 로 대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올해 여기저기서 흠스를 통한 열매가 풍성함을 목격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지성소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직면을 함으로 성품의 회복을 경험하는 흠스”

단순한 이 하나의 문장에 들어 있는 의미를 해군 사관 학교 출신에 서던 뱁티스트 전도학 박사인 김기동 목사님이 알아봐 주었다는 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미 필라델피아 제일장로교회 강학구 목사님이나 수지 선한목자교회 강대형 목사님 같은 분은 흠스 사역을 목회에 접목해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지만, 이번 소중한교회에서의 3일 간 집회는 또 다른 의미의 역사하심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까다롭고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이민 교회에서 나 같은 사람을 불러 3일간 새벽부터 밤까지, 주일 1·2·3부 예배를 다 맡기면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일은 김 목사님에게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모험이었을 겁니다. 물론 나에게도 엄청난 모험이었죠. 이번처럼 긴장하고 이번처럼 집중한 적은 아마 없을 겁니다. 시차가 안 맞은 탓도 있지만 밀려오는 영적 긴장감 때문에 숙소인 익스텐디드 스테이 아메리카 호텔에서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눈은 빠질 듯하고 허리는 부러질 듯이 아팠지만, 영은 밤하늘의 별처럼 또렷이 빛이 났습니다. 이상하게 부흥회 기간 동안 밤이면 캘리포니아의 여름 날씨답지 않게 폭우가 쏟아지고 아슬한 추위가 몰려와 온몸을 시려 하면서도 호텔 방이 의외로 작아 식탁용으로 들여놓은 키높이 의자에 앉아 다음 시간 전달할 설교 내용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은 부담감과 행복감을 함께 맛보게 해 주었습니다.

 

‘주님 오늘 할 얘기를 정해 주십시오. 주님 이 순서가 맞는지 저 순서가 맞는지 컨펌해 주십시오.’

‘주님 여기서 이 찬양을 부르는 게 맞을까요’

‘이 단어는 복음과 상치되지 않을까요’

‘주님 오늘 밤 참석자 모두가 주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 주십시오.’

수없이 부르짖고 기도하고 질문하다가 정확한 시간 호텔 방문을 열면 단정하게 양복 입은 김 목사님 내외가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태우고 갔습니다.

 

요르바 린다 갈보리 채플이라는 백인 교회당은 오랜 역사와 함께 리모델링을 잘해서인지 정갈하고 깊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조명은 약간 어두운 편이었지만 집회 내내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세미나보다 부흥회 형식의 집회 인도가 한층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흠스 사역이 어떤 열매를 맺는가! 지난 십여 년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에 첫 시간부터 담담히 회복의 필요성과 지성소 예배의 중요성을 풀어나갔습니다.

의사이신 하나님 앞에 가 직면했을 때 부어지는 은혜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하나님 마음, 입장에서 차근차근 전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역사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거는 두 번째 밤 지성소 예배를 함께 드릴 때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강단에 올라 지성소 예배를 인도하는 나에게 부어진 성령의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세상에, 집회를 인도하는 단 위에서 성령에 사로잡혀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밤에 주님이 나를 만지시는데 온몸이 떨리고 뼈마디가 다 해체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은사주의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기에 그런 경험은 나 스스로를 놀라게 했습니다. 영혼을 울리는 찬양과 함께 주님께 토로하는 기도를 시작하자 오장육부를 헤집고 올라오는 핵심 감정의 비릿한 냄새.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62편 8절에 순종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숨어있던 육의 것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토설 기도를 하는데 가슴이 아파 제대로 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 한 채 하나님이 만져 주시기만을…. 하나님이 내 모든 문제를 처리해 주시기만을…. 핵심 감정에서 비롯된 나의 부정적 성격을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바꿔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죠. 이번 부흥회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은 차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밤 나만 그런 은혜를 받은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 많은 이들에게 성령의 은혜가 축복의 샤워처럼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집회 후 눈이 부은 채로 예배당을 나가는 성도들의 뒷모습이 산타 모니카 해변의 물새처럼 아름다워 보였던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은사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냉혹할 정도로 계시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양육 받는 지체들이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감정은 중요하지만 감정에 흔들리지 말 것.

영적 예배와 혼적 예배를 혼동하지 말 것.

말씀에 의한 확언이 아니면 개인적 경험을 공동체에서 한마디도 발설하지 말 것.

그러나 예배가 제대로 드려진다면 이성뿐 아니라 감정과 의지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게 무슨 감출 일이겠습니까.

아무튼 3일 동안 모두 여섯 번의 집회를 마치고 났을 때 나는 애벌레에서 나비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날아 오른 느낌이었습니다. 회복에 대한 갈망과 그 갈망이 은혜로 바뀔 때 밀려오는 기쁨. 흠스를 통한 회복에의 더 큰 확신이었습니다. 고구마 사역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김 목사님 교회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감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도와 제자 양육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는 김 목사님 입에서 이젠 흠스를 통한 회복 사역이 우리 교회에 필요하다는 걸 실감했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울 뻔했습니다. 집회를 정리하며 “신 선교사님은 외로운 분입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그 오랜 시간을 주님만 붙들고 이 사역을 해 오신 분입니다. 이 시간 간절하게 신 선교사님과 낮은울타리 사역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는데 또 한 번 울 뻔했습니다.

주님이 김 목사님 통해 위로해 주신 거죠. 아직도 순응형의 때가 남아 있어 그렇게라도 위로가 필요했던 거죠. 십자가를 전하고 복음을 가르치고 문화를 분별하는 범위를 넘어 흠스라니! 흠스를 통한 회복 사역이라니! 이런 깊이 있고 생명력 넘치는 사역을 나처럼 같잖은 인간에게 값없이 주신 주님과 이름 없이 빛없이 흠스 사역을 같이해 온 울타리 간사, 평신도 리더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흠스는 끼·충·가·상·나(끼어들기, 충고하기, 가르치기, 상담하기, 나누기)를 못합니다.

그래서 똑똑하고 말 많은 사람이 리더를 하기엔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흠스는 옷도 맞춰 입지 않습니다.

그래서 튀는 것도 없고 일사불란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흠스는 8주 동안 본부에서 강사 한 사람 보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명 강사 위주인 국내외 사역 환경에서 한참 뒤떨어져 보입니다. 아니 정말 없어 보입니다.

매뉴얼 한 권만 주고 이대로 해 보라면 긴가민가 의심까지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예배만 잘 드리면 지성소에 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닌데 그대로 따라 하기엔 망설여집니다.

나눔보다 다룸이 필요하고 상담보다 직면이 중요하다고 말해 줘도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치는 걸 수없이 보아오던 터에 LA 소중한교회에서의 삼일 집회는 그동안의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한 번에 날려 보내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홈런 한 방에 승리가 역전되는 야구와 비슷하달까요.

“흠스는 내 사역이다. 내가 이 사역의 주인이다. 내가 필요한 사람을 붙여 줄 테니 흔들리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하는 주님의 격려와 위로와 확언의 시간이었기에 이렇게 감사의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편집인의 글은 시작하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뭔가 가슴에 채워진 것은 많은데 그걸 표현할 단어가 진부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안나가 재촉하지 않았다면 그냥 묻어 두는 게 나을 뻔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이라는 단어 외에 이 감격을 확 하고 느끼게 해 주는 무엇인가를 찾을 때까지 침묵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내가 편집인의 글을 안 써주면 월간지 편집이 늦어진다는 재촉에 시차로 잠 안 오는 이국의 밤 어둔 창가에 앉아 급하게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확실히 캘리포니아는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부흥회 참가자들뿐 아니라 이곳에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지체들을 여럿 만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중 저스틴과 엘렌 부부는 나를 각별히 아껴 줍니다. 어제는 저스틴 형제가 내 속옷 빨래를 다 해 주었죠. 그와 사랑하는 아내, 자녀는 이층에서 자고 나는 발레 연습실과 붙어있는 아래층 게스트 룸에 머물면서,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돼 밤 열두 시에 올빼미같이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편집인의 글 쓸 때마다 한국의 맥스 루케이도가 될 거라고 예언(?)한 정현구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오다가다 만난 나를 이젠 영역별 선교 시대라며 당회에 올려 정식 파송 선교사로 임명하고 매달 후원비를 보내 주시는 서울 영동교회 담임으로 이 세상에서 나를, 믿어 주는 몇 안 되는 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진 사랑의 빚이 너무 많네요.

나는 이제 머지않아 명님씨 남편 김창근 형제처럼 이 땅을 떠나게 될 것 입니다. 무려 삼십 년 전 재정 부족으로 엄두도 못 내던 낮은울타리 간사 소풍을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몸소 차를 가져와 일산 쪽 야외까지 우리 모두를 운반(?)해 준 다음 냄새나는 논두렁에서 밥을 같이 해 먹었던 김창근 형제는 바로 며칠 전 암 투병을 하다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암이 발견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요즘같이 건강 진단이 체계화되고 요즘같이 의술이 발달한 시절에 무슨 멜로 영화처럼 갑자기 암이 발견되고 갑자기 입원하더니 심방 갈 틈도 주지 않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형제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듣자 내 차례가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이상한 일이지요. 누군가의 죽음은 그냥 부고訃告일 뿐인데 누군가의 죽음은 내게 메시지로 다가 오다니 말입니다.

 

‘순응형’과 ‘할 수 없어형’과 ‘경쟁형’과 ‘비판형’이 고루고루 섞여 있는 나의 부정적 성격은 낮은울타리 사역을 많은 사람이 이해해 주지 않은 것에 실망, 무척 속상했었죠. 다음 세대 부흥을 위해 복음 사역과 회복 사역과 문화 사역의 틀을 잘 잡아놨다고 외쳐 봤지만 아무도 묻는 이 없고,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안전한 회복 사역 흠스를 알리기 위해 직면 책도 쓰고 오픈 강의도 하고 그랬는데,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반응에 속상해하던 중 이번 3일간의 부흥 집회는 하나님의 컨펌을 받는 소중한 기회였다고나 할까요.

죽음과 삶 / 상처와 회복 / 육과 영 / 욕망과 은혜

그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너덜대기 일쑤였는데 하나님이 흠스를 주셨습니다. 지성소 예배와 직면을 주셨습니다. 거기에 따라 회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캘리포니아 드림….

지금 나는 여기, 저 유명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 나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서 내게 임한 은혜를 적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중입니다. 오늘 낮은 오랜만에 따뜻해서 캘리포니아에 와 있다는 걸 실감했었죠. 홍콩 영화가 전성기이던 시절 다큐, 혹은 MTV 스타일의 《열혈남아》, 《아비정전》과 연장선상에 있는《중경삼림》은 사실 작은 소품으로 기획된 영화였다고 하네요. 그러나 예상 외로 세계적인 큰 히트를 기록한 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적인 왕가위 스타일이 뜨겁게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영화입니다. 《중경삼림》은 왕가위의 전작들과 다르게 국제도시 홍콩에 사는 사람들의 활기와 그 속에 숨은 불안감, 곧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있는 홍콩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담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두 번째 에피소드에 사용된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양조위의 여자 친구 왕정문이 좁은 식당 안에서 춤추는 장면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영화는 잘 만들었지만 거기 나오는 사람 모두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 아닌가요. 왕가위가 흠스를 알았더라면 영화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무튼 빼빼 마른 귀염둥이 소녀 왕정문이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캘리포니아에서 이 글을 마칩니다. 내일모레면 이곳을 떠나 다시 조국으로 돌아갑니다. 국회의원들은 맨날 싸우고 북쪽에 있는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아 불안한 땅으로 가서 여생을 마쳐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 황금의 땅에 와서 말리부나 오렌지 농장, 바다 한 번 못 보고 가는군요. 그래도 소중한교회에서의 부흥회 결과와 LA 지부 멤버들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 때문에 더없이 행복한 여행을 마칩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주님이 만들어 주시는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오늘 낮은울타리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어 더욱 감사합니다. 이번 달에도 샬롬을….

peter-eon@hanmail.net

 

- 월간 낮은울타리 2019년 8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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