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나방과 잡초의 생존력에 대한 고찰

작성자
신상언
작성일
2019-09-27 10:08
조회
40

 




 

검은색 나방과 잡초의 생존력에 대한 고찰


 

‘VR 시대 성인물 시장이 미소 짓는 이유’라는 신문 기사가 있었습니다.


삼성에서 출시한 가상 현실 기기를 사서 동영상을 검색하던 대학원생 이 모 씨가 고화질 영화로 보이는 동영상을 다운로드받았다가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씨가 내려받은 것은 일반 영화가 아니라 VR용으로 만들어 진 성인물이었는데 해당 영상의 화질과 분위기 등이 일반 영상보다 훨씬 고품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그동안 봐 온 야한 동영상과 차원이 달랐 다”며 “너무 실감 나는 영상이어서 놀랐다”라고 말했답니다.


최근 가장 큰 관심사가 유튜브라면 그다음은 VR, 즉 가상 현실 기술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화면이 부착된 VR 전용 고글과 이어폰을 끼고 VR 동영상을 재생하면 마치 그 세계에 순간 이동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술입니다.


게임과 영화 업계에서는 VR 기술을 이용해 몰입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 업계 관계자들이 “현재 VR 콘텐츠가 활발히 생산, 소비되는 분야는 바로 성인물 시장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VR 성인물과 일반 성인물의 가장 큰 차이는 시선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 성인물의 경우 촬영자가 찍은 각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VR 성인물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시선을 돌릴 수가 있고 앞에 말한 대로 시간 이동해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몰입도가 한층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짜릿함도 배가가 되겠죠.


 

일본에서는 이미 눈으로 보는 것만 아니라 성인물과 연동되는 하드웨어 신기술까지 선보였다고 하니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혀를 차게 만듭니다.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열린 성인 VR 페스타 전시회에서 영상에 맞게 신체에 자극을 주는 장비 등이 소개되었다니 성인은 물론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자녀들에게 이것이 노출되는 날 음란물 중독의 양상은 차원 자체가 달라져 버리겠죠. VR뿐 아니라 작금의 상황은 자녀를 키우는 성도의 입장에서 난처한 일들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크리스천 영성에 도움 되는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내가 오려 낸 신문 기사의 몇 개 제목만 뽑아도 이 정도이니 우리 아이들 주변을 전수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대중문화는 이 모든 것들을 눈앞에 갖다 주며 그 옛날 지식 나무 열매처럼 하나씩 따먹을 것을 유혹합니다.


 

■ Z세대 유도하는 유튜브에 6070 할프리카 TV까지


■ 이외수의 졸혼 선언, 한 사람과 결혼 생활 너무 길어


■ 안전한 ‘수퍼 지능’은 없다… 통제할 방법 당장 연구해야


■ 천만 영화 시대 일상이 된 독점 자본주의


■ 동성애자끼리 우정은 가능한가


■ 집중력이 쑥쑥 마음 챙김 명상,


하루 한 번 호흡으로 신의 경지에


■ 종교는 벽에 갇힌다. 그러나 영성은 거기로부터 자유롭다


- 종교 이젠 패러다임 깨야 스님·목사님도 내 강의 듣죠


■ 페이스북과 구글, VR 생태계 선점에 사활 걸었다


■ VR 시대 성인물 시장이 미소 짓는 이유


■ 신이 되려다 데이터교 신자로 전락한 인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이기도 한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미 오래 전에 ‘계몽의 변증법’이란 책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내비쳤습니다.


그에게 대중문화는 그저 문화 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치 치하의 독일뿐 아니라 전쟁도 학살도 없었던 미국 상황을 연구한 후에 “대중문화의 단계에서 새로운 것이란 새로운 것을 배제하는 일이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은 하자 없는 규격품을 만들 듯이 인간을 재생산하려 든다”, “대중 매체는 단순히 사업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박우성이라는 영화 평론가가 쓴 글을 읽어보니까,


“최근 몇 년간 흥행한 대개의 한국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상황, 메시지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높은 영화적 교양으로 대중의 영화 감식안을 고양하는 게 아니라 낮은 수준으로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전략이 고착되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영화는 사업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가고 있고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라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뭐 그 정도야 생각 좀 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위험성과 세속화를 경고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신기한 눈으로 그의 글을 읽어 나가려니까 대자본에 잠식된 대중문화 판에서 무당이 춤추듯이 진리가 난타당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사실 오래 전에 「사단은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낸 바 있는 나로서는 상업 자본주의 정도가 아니라 진리가 왜곡되고 교회가 세속화되는 모습에 더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그래요. 세속화로 주님의 교회가 기반부터 흔들릴지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오스 기니스는 「악마의 비밀문서를 훔치다」에서 세속화를 사회와 문화의 연관 분야들이 중심부에서 시작해 외곽까지 종교적 사상과 제도의 결정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죠.


다시 말해 세속화는 과학, 경제, 기술, 관료제 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핵심 영역에서 종교의 사회적·문화적 중요성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으로, 그렇게 해서 종교 사상의 의미를 탈색시키고 종교 제도들을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리면 생활 속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비중을 없애고 진리에 기반한 규칙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화는 교회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세운 규칙의 핵심적 조건이 통합성이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삶 전체의 통합, 즉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믿음의 가족들과 공유하는 조건이 바로 이 통합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혼동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세속주의는 일종의 철학이지만 세속화는 과정이라는 것.


세속주의를 받아들이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나 생각 혹은 의지가 필요하지만, 세속화는 그 뿌리가 지성적 개념에 있는 게 아니라 제도적 변화, 사회 구조 속에 기인하는 것이라서 사유나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는 영향이라는 것.


마치 소낙비와 이슬비의 차이 같은 거죠.


세속화는 세속주의와 다르게 전염성이 강해 현대화가 진행된 여건일수록 강하게 나타납니다. 소형 교회보다 대형 교회, 1990년대보다는 2010년대, 마산보다는 부산, 부산보다는 서울이 세속화의 위험에 더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기니스는 세속화와 세속주의를 이해시키기 위해 스키용품 판매를 늘리려는 스키장의 스키용품 판매점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스키용품 판매량 증대를 위해서는 디자인도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눈이 오는 기후 조건도 중요하다는 점을 들어 세속화는 세속주의가 심화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즉 세속화는 세속주의라는 오래된 개념을 보완해 줄 새로운 상황을 계속 제공함으로 마침내는 세속주의를 자연스러우며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스 기니스가 사단의 입을 빌려 “세속주의를 확산시키려고 수천 년을 노력했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맹위를 떨친 것은 처음 있는 일” 이라며 “요즘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 충족되었다”며 좋아하고 있음을 밝혀 냅니다.


19세기 영국이나 유럽에서 유행한 회의주의 혹은 계몽주의는 소수의 문제였지만 오늘날의 세속화는 다수의 문제라서 더 좋아 날뛴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아도르노가 현대 대중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오스 기니스의 지적에 의하면 아도르노는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니스는 종교가 없는 것보다 나쁜 종교가 낫다는 적의 발언을 공개했었죠.


중요한 건 세속화가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세속주의보다 파급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세속화가 무서운 건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철학이 아니라 조용히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동지 엥겔스가 풍자적으로 비꼰 말을 들으면 더 생생해 질 것입니다.


 

“샐러드 오일이 생기면서 기독교 영역에서 대륙의 회의주의가 치명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아는가”


샐러드 오일과 회의주의의 관계를 이 한 마디로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세속화는 회의주의보다 더 세련되게 위장하고 있어서 훨씬 파괴적이라는 데에 충분히 동의합니다.


산업 혁명 시절 영국 맨체스터 지방에 검은색 나방이 번성한 적이 있었지요.


원래 나방은 밝은색 날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검은색 나방이 나타났고 얼마 후에 밝은색 나방이 전멸, 못생기고 천대받던 검은색 나방이 세상을 점령하게 된 데에는 기가 막힌 사연이 있습니다. 산업 혁명의 결과로 도시 전체가 굴뚝에서 나온 연기로 시커멓게 물들 무렵 밝은색 나방은 금방 눈에 띄어 천적들 에게 쉽게 잡아먹힌 반면 검은색 나방은 연기 사이로 숨어들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관련 학자들이 추적 조사해 보니 밝은색 나방이 검은색 나방을 만들어 낸 건 생존을 위해 분산 투자한 본능에서 나온 결과라는 것 입니다.


도시가 오염되기 전에는 밝은색 나방의 생존 확률이 높았지만, 도시가 검은 색으로 오염되자 밝은색 나방이 천적에게 노출, 전멸의 위기로 빠져갈 때 본능적으로 검은색 나방을 만들어 냄으로 후손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잡초의 사례는 또 어떻습니까?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잡초의 경우처럼 - 잡초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씨앗을 만들 때 껍질 두께를 똑같이 만들지 않고 다 다르게 만들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는 것입니다 - 주님 오실 때까지 사단이 분산 투자까지 해 가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간다면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잡초가 씨앗의 두께를 일정하게 할 경우 싹 틀 무렵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면 전멸할 우려가 있어 본능적으로 두께를 달리해 한 방에 다 죽지 않고 살아남을 궁리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는데 아, 이건 안일에 빠진 우리의 대적 얘기 아닌가.


요즘 같은 격변의 시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바보라고 여겨지더군요. 생명력과 함께 통찰력과 분별력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최고의 선물 아닙니까?


검은색 나방과 잡초의 생존력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있자니 자연의 생존 본능에 혀를 차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새롭게 태어난 영에게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는 육의 끈질김과, 인간이 만드는 모든 발명품 - 특히 미디어와 문화 - 에 기생해 하나님 백성을 유혹하려는 사단의 전략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故 옥한흠 목사의 장남 옥성호는 「신의 변명」이라는 책에서 내 이름을 거론해 가며 사단은 전략을 짤 존재 가치도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지만 사단은 이 세상의 것을 훔쳐다 자기 것인 양 과시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유혹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도대체 옥성호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부족한…> 시리즈를 낼 때만 해도 교계의 존경을 받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예수가 가짜 메시아일 수도 있다는 폭탄선언을 해버렸으니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거기다 예의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나이를 따지지 않아도 새카만 후배 격인 그가 아버지 후광에 용기를 냈는지 내 책에 대해 과도한 비판은 둘째 치고 사단이 좋아할 정도로 문법이 엉망인 사람으로 매도하는 건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책 내용에 대한 비평과 사람에 대한 비판은 달라야 한다는 점을 그가 모를 리 없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일부 사랑의 교회 관계자처럼 그와 적대 관계에 서 있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부족한…> 시리즈를 읽으며 그의 총명함에 존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묶인 거룩한 백성이라는 동질감은 차치하고라도 공개적인 저서에 그 정도로 무서운 비판을 하려면 전화라도 한 통 걸어 사실 확인을 한 다음 써도 될 텐데 유명 아버지를 둔 데다 글 좀 쓴다는 자만심이 그를 오만하고 무서운 비판자로 전락시키고 만 것 같습니다. 오정현 목사에 대한 분노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상처로 눈이 멀면 감정 영역에 먼저 벽돌이 쌓이고 다음엔 지적 영역, 나중엔 영적 영역에까지 벽돌이 쌓인다고 부르스 탐슨은 말했지요.


어쨌든 나는 옥성호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갑자기 오래된 내 책을 들고 나와 귀싸대기를 갈기듯 무섭게 비판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겠지요(「복음과 상황」을 통해 민망할 정도로 무시한 청어람 양희송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옥성호는 내가 주어와 서술어도 모르는 인간이라 했고 양희송은 세계관이 무엇인지 모르고 떠들어 댄다고 했었지요. 유식을 자랑하는 그들 앞에 무식함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무시함에 대한 아픔이 참 컸었습니다.).


 

 

나는 그저(무식하나마 부득불) 교회의 가장 무서운 적은 세속화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사단이 세속화를 심화시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과 효용성을 지키는데 필수적인 영역들에서 그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데에 있다는 기니스의 말에 동의합니다. 현대 사회의 핵심 분야에서 기독교 영향력을 제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권위에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한 무서운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는 자신을 따르는 성도의 전 인생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할 거라는 사단의 자신감. 일단 이 일이 성공하고 나면 그리스도인들의 나머지 신앙은 제한적이고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적에게 저항할 정신적, 도덕적 동력이 사라지고 말 거라는 기니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옥성호가 나와 기니스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그런 조짐이 현대 한국 사회뿐 아니라 한국 교회 안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기니스가 말한 대로 무덤 파기 작전이나 수면 효과 작전, 체셔 고양이 작전, 사설 동물원 효과 작전 등이 착착 진행되어 세속화의 거대한 물결이 교회를 덮고 있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세속화된 교회는 복음의 능력뿐 아니라 현대화 영향을 받고 자란 다음 세대를 효과적으로 양육할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젊은이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예배 시간에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건 그들이 구원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사단의 최고 전략은 거듭난 사람의 골수 건조시키기 운동이라는 기니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요즘 돌아가는 상황은 너무 심각해 말이 안 나올 정도입니다. 신학이 실종되고 복음이 사라진 교회, 세상 정신에 대한 경각심보다 문화에 대한 포용과 관용을 강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보다 지역 사회 봉사를 더 중요시하는 교회에서 철없는 아이들은 예배에 대한 관심을 끊고 설교나 교육에 귀를 막아 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런 면에서 흠스와 틴즈 흠스, 키즈 흠스, JPA 등 낮은울타리 사역을 통해 부모와 다음 세대가 함께 세워져 가는 건 고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 검은색 나방과 잡초의 생존력을 통해 사단의 유혹과 도발을 경고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진 감이 있네요. 그래요. 자녀 양육과 다음 세대를 잘 세우는 것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디 교회 지도자가 아니라도 생명력 없으면 생명 없는 자처럼 살게 되고, 통찰과 분별력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적군 나라 스파이로 전락하게 된다는 걸 역사를 통해 깨 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peter-eon@hanmail.net


 

- 월간 낮은울타리 2019년 7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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