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아름다운 생이겠습니까?

작성자
신상언
작성일
2019-09-03 09:52
조회
88



지금 와 생각해 보니 1980년은 나의 천직과 관련해 아주 특별한 해였습니다. 평생 교직에 몸담겠다고 살아오다 진로 수정에 대해 도전을 받은 건 80년 여의도에서 열렸던 세계 복음화 대회 때 김준곤 목사님이 “선교사로 가라”라고 명령할 때였습니다.


“오늘 여기 참석한 모든 사람은 모두 해외 선교사로 가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나는 선교사 체질이 아닌데 어디 가서 살라는 거지”


그러나 일주일간의 집회 중 마지막 강사로 오른 김 목사님은 나에게 고민하거나 기도할 기회를 주지 않고 지금 당장 일어나라고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대순장 신분으로 경서중학교 책임자를 맡았던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낙타 무릎으로 눈을 감은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교사가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해외 선교사가 나의 천직이다?


이 땅을 나의 사역지로 알고 살아왔는데 해외로 나가 평생을 살아야 한다?


성격이 예민해서 기후가 안 맞거나 양념만 달라져도 어지럼증에 구토가 나는데 전혀 모르는 나라에 가 이상한 음식 먹고 말 안 통하는 사람과 살아라?


더군다나 추위를 너무 타서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면 살 소망마저 잃어버리는 체질인데 믿음으로 감내하며 나아가라?


별똥별처럼 숱한 질문들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 해외 선교 못 갈 이유를 이백 개쯤 중얼거리다 어느 순간 사람 움직이는 기색이 느껴져 살짝 눈을 떴는데 아, 앞 옆만 아니라 뒤에 있는 사람 모두가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일어 서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간 내가 돌보았던 귀한 분들입니다. 집회에 참가해 은혜를 받으려고 멀고 먼 지방에서 상경해 일주일을 같이 보냈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당시 여의도는 아스팔트로 된 허허벌판이었고 숙소는 주변 학교의 교실 맨 바닥이었습니다. 대회 본부에서 빌린 학교마다 수백 명씩 배당이 되어 그중 수학여행 기차 사고로 유명해진 경서중학교 책임자였던 내 밑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일주일을 오직 감사로 지낸 아름다운 사람들이 전부 선교사로 가겠다고 일어서 있는 것입니다.


CCC 대순장의 호칭으로, 경서중학교 책임자로, 존귀한 영적 리더로 그들 모두에게 극진한 대접 받아왔던 내가 어떻게 혼자 바닥에 앉아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무서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교사에서 선교사로 직업이 바뀌는 순간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낮은울타리를 창간하게 되었고 자랑삼아 보고하러 들어간 교장실에서 교사는 그런 일 하면 안 된다고 쫓겨난 뒤 안젤리 뮤지컬팀을 창단하고 월요 문화 학교, 화요 교사 대학을 비롯해 울타리 웨딩까지 시작하면서 나의 직업은 완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세계 복음화 대회의 주 장소인 여의도에서 따뜻한 나라 아프리카 선교사로 서원했지만 지나간 30년 동안 아프리카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한 건 아프리카에서 강의 부탁이 와도 얼마 후 취소되는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나, 주님이 아프리카행을 막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5년 드디어 처절한 일이 발생…


간사 사례와 거래처 대금이 밀리면서 낮은울타리 재정이 바닥나고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보수를 받지 못한 일부 간사들의 고소로 감옥행이 다가오자 “이러려고 저를 부르셨습니까” 부끄럽게도 그렇게 문화 선교사라는 직함에 전혀 천직 의식 없었음을 폭로 당했던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쩌다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는 정도의 생각이었을까요, 문화 사역자의 삶을 시작하기 전 그렇게 자랑했던 교사직이 사실은 낭만으로 포장한 거짓이었을지도…. 아이들과 교실에 있을 때는 좋은데 수십 가지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교장, 교감이라는 권위자와 마주 서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현실, 그래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싶었는데 여의도에서 김준곤 목사님의 끝없는 콜링, 시골에서 상경한 어른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선교사로 헌신, 로버트 레드포드 때문에 아프리카행 결심, 아쉽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정말 아쉬운 건 누군가 천직 찾기에 대해 귀띔만 해 주었어도 극적인 순간을 한층 뜨겁게 맞이할 수 있었겠지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했다면 그렇게 준비 없이 엄청난 일을 덥석 떠맡지는 않았겠죠.




칭찬해 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부담스러워 선교사로 헌신하고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 한 편으로 막연히 아프리카라는 곳을 상상하다가 인재를 모은다는 말 한마디에 온누리교회로 간 뒤 뉴 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아이돌 그룹 때문에 여학생이 깔려 죽는 사건으로 낮은울타리 사역 시작, 설렘과 흥분 속에 십여 년을 정신없이 보내다가 재정 문제로 올 스톱하게 되었을 때에도 나의 행로를 깊이 묵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천직이니 걱정 말라고 한마디만 해 주었어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을 텐데….




교사에서 선교사로…


아프리카라는 나라에서 문화라는 영역으로….


한 번도 안 가 본 길을 가면서 누구 하나 조언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해 무지무지 방황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아마 나를 스카우트해 간 하 목사님이 두란노를 설립하지 않았다면 좋은 멘토가 되어 주었을까요. 규모 면에서든 인력 동원 면에서든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음에도 문화 사역의 멘토 역할을 거절하는 바람에 혼자서 광야로 나가 안개와 같은 길을 삼십 년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역시 광야는 힘들었습니다. 나침반도 없이 사막을 헤매는 고통을 아십니까. 막연하게라도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거기서 죽거나 뛰쳐나왔을 겁니다. 멘토가 없어도 막연한 천직 의식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나침반 대신 별빛이 나를 인도했습니다. 혼자 가는 길이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안경 쓴 외봉 낙타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가지고 있던 나의 천직 의식을 끊임없이 방해했던 건 방향과 재정이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이 길이 맞나, 이 방법이 맞나, 이 말이 맞나, 이 해결책이 맞나, 수없이 물으면서 한 발 한 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작년 직업 찾기 캠프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가겠지요.





아마 비비에스(Bring up Builders School의 약자로 낮은울타리에서 진행하는 부모 통찰력 학교) 강의 중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에 변화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현재 직업의 반 이상이 없어지는 걸 감안하고 직업 찾기를 도와줘야 합니다.” 한마디 했던 게 강북 지부 지체들에게 꽂혔던가 봅니다. 나 자신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직업 찾기 캠프를 혼자 진행해야 한다는 현실이 막막해서 혼자 캠프를 진행하고 나면 발바닥 무좀이 더 심해질 것 같았지만 낮은울타리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지부 사역에 감격해 하고 있던 터라 “그럽시다” 하고 자료를 모아 3박 4일 분량의 강의를 준비하는데 생경함도 이런 생경함이 없었습니다. 2018년 벽두 불광동 수양관에서 열었던 제1회 직업 찾기 캠프를 마치고 완전히 뻗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나서 올해 2019년 새해 부산 남부교회에서의 2차 직업 찾기 캠프!


나에게는 지난 30년간의 모든 일이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솔직히 말해 직업 찾기 캠프처럼 신선하고 의미 있는 사역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부 멤버들의 자녀가 문제가 아니라 나부터 도전이 되고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직업 찾기 캠프의 강의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특히 청소년기에 반드시 생각해야 할 3가지가 있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중 첫째 질문이 삶의 방향성을 묻는 거라면 두 번째는 직업과 소명의 문제, 세 번째는 배우자와 동역자를 얻는 문제입니다. 물론 셋 다 중요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맞습니다. 초 중학생 시기는 자신의 성격과 적성, 천직이 무엇인지 알고 찾아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십 대를 마치기 전 부모가 반드시 정립하게 도와주어야 할 것으로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기, 자기에 대해 바로 알기, 5 JESUS POWER 받는 법 알기, 복음 사역·회복 사역·문화 사역의 중요성 알고 체험하기 그리고 하나님 나라 완성적 측면으로 천직과 직업의 차이 이해하고 찾아가기.


그래요. 아무리 거듭난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직업에 대한 바른 가치관이 없으면 엄청난 갈등에 휘말릴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천직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구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천직으로 부르십니다. 천직은 구원의 확신은 물론,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해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 땅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사느냐 타락한 욕망의 화신으로 사느냐가 천직에 대한 확신으로 갈라진다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실 겁니다. 자녀의 천직을 찾아 주는 부모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한 것입니다.





천직을 찾아가는 과정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데서 출발하게 되니까 천직 찾기가 단순한 일이 아님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한 가지 감사한 일은, 이 엄청난 내용을 제대로만 설명해 주면 나이 어린아이들도 제대로 이해하더라는 것입니다.


직업과 천직의 차이는 물론이고 천직을 찾으려면 자신의 재능과 은사와 적성 파악은 물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조용히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걸 어찌나 잘 알아듣는지 원맨쇼처럼 계속되는 강의에 피곤이 극에 달하는 데도 새 힘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창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시는 분이 아니라, 창조 후에도 끊임없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임을 주님의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노동을 죄의 결과라고 잘못 말하지만, 노동은 타락 이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며 다만 타락 이후 고통이 더해진 것일 뿐,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서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요?





무엇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일과 예배는 같은 것이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주 안에서 기쁘게 일하며 사는 삶 자체가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는 걸 친절하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라는 말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일과 직업의 현장이 예배 처소라는 의미에서 볼 때 공무원의 섬김과 가정주부의 설거지 하는 일이 다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 예배 따로 직장 따로는 없다는 걸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싶었습니다(누가 나에게 그런 말 한마디만 해 주었어도 살아가는 의미가 완전 달라졌을 텐데).


이번 직업 찾기 캠프를 진행하면서 내가 느낀 소감은 자녀와 부모가 함께 참여할 때 엄청난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녀와 부모가 따로 떨어져 캠프를 할 게 아니라 함께 캠프에 참여하여 강의를 듣고 워크숍에 참가하고 액티비티를 같이 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 확실시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자녀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부모의 영양분을 받아먹고 자랍니다.





직업 찾기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의 현장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직업, 아니 천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한다면 더더욱 미뤄서도 안 될 일입니다.


정치,경제,과학,교육,미디어,예술,종교,가정이라는 8개 영역을 정하고 그 영역에 맞는 직업이나 직업군 선택, 그 직업을 준비하기 위한 학교를 찾아 입시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초중고생 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생이겠습니까? 천직은커녕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이 병든 권위자에게 받은 상처와 욕망으로 인해 게임 중독에나 빠져 간다면 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천 갈래로 찢어지겠지요.


개념 없이는 믿음이 없다는 말.


에베소서 1장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바로 이런 것 아닙니까!


삼십 년 걸려 정리한 것을 이 박 삼 일에 받을 수 있는 것.


낮은울타리 독자의 자녀들만이라도 천직 찾기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eter-eon@hanmail.net



- 월간 낮은울타리 2019년 5월호 편집인의 글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