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ry Starry Night

작성자
신상언
작성일
2019-07-24 10:38
조회
57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직업 찾기 캠프에 대한 준비 때문에 러빙 빈센트란 영화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무려 10년의 기획, 전 세계 4천여 화가 중 오디션 통해 뽑힌 107명 화가가 수년에 걸쳐 그린 그림 62,450점의 유화로 만든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아르망 룰랭은 빈센트의 죽음을 추적해 갑니다. 극도의 정신병을 앓으면서도 화려한 물감으로 푸른 밤하늘의 별을 그리고 갖가지 모양의 자화상은 물론 하늘까지 올라갈 듯한 삼나무와 타오를 것 같은 해바라기를 쉴 새 없이 그렸던 사람. 그림 그리다 먹으려고 싸 간 점심을 몰래 훔쳐 먹는 까마귀를 용서하거나 사랑하는 창녀에게 귀를 잘라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 했던 빈센트.


 

로스앤젤레스는 천사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엘에이 하면 다운타운을 일컫는 말이지만 보통은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의미합니다.


 

오스 기니스는 무덤 파기 작전에서 적의 목소리를 빌려 엘에이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부국장이 로스앤젤레스 지부장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된 무덤 파기 작전을 처음 읽었을 때 문화를 통한 사단의 전략이 이렇게 치밀하고 실제적이었던가? 혀를 내두른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씨에스 루이스를 현대 최고의 변증가로 꼽지만 나는 아닙니다. 나는 씨에스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보다 오스 기니스의 ‘무덤파기 작전’을 더 평가하는 편입니다. 부산 지부에서 이 책을 공부하고 있는데 다들 좋아합니다. 적군 나라 스파이로부터 그들의 전략을 듣는 것만큼 흥분 되는 일이 있을까요.


 

오스 기니스는 전향한 적군 스파이 입을 통해 무덤 파기 작전이나 최면 효과 작전, 잔상 효과 작전, 사설 동물원 효과 작전 등을 적나라하게 파헤칩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우리가 얼마큼 적의 전략에 노출되어 있었던가, 한숨을 쉬게 됩니다. 특히 문화를 통한 적의 전략을 과소평가하는 크리스천 지식층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 현실 속에서 잠깐이나마 오스 기니스의 경고를 되새기게 되는 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오스 기니스를 통해 우리의 선배 격인 서구 교회가 문화를 가벼이 여기다가 문화를 통한 교회 전복 작전에 휘말려 들어간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왜 늘 자유주의나 진보주의자들이 문화를 장악하게 되는 걸까요. 세상은 그렇다 쳐도 교회 안에서까지 보수주의가 문화 세대를 놓치는 건 무지에서일까요, 무관심에서일까요?


 

그들은 복음으로 문화를 이기자는 그럴듯한 말로 문화에 약한 청년들을 현혹합니다. 하나님은 문화의 하나님이라며, 문화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주의 나라를 위해 마음껏 사용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문화 속 메시지와 메타포를 분석해 경고하는 일을 이원론이나 분리주의라고 몰아붙이면서 교회 안에 화려한 카페를 만들고 연극 무대를 세우고 기독교 영화제까지 엽니다. 겉으론 대범하고 세련돼 보이지만 세속적인 것과 복음적인 것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더 심각한 건, 분리는 나쁘지만 분별은 필요하다는 말을 우습게 여깁니다. 문화 진보주의자 중에 유학이나 갔다 온 사람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오스 기니스의 트로이 목마 작전을 빗대어 우리 적들이 문화를 조용히 갖고 들어와 교회를 세속화시키려 한다고 경고를 해도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니 겁낼 것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들은 헤르만 헷세를 비롯, 알랭 바디우나 어슐러 귄, 대니얼 데닛 등 시대를 넘나드는 작가들과 철학자, 인문학이나 지식 사회학을 인용하며 우리 같은 사람을 전근대적인 수구 꼴통파로 몰아갑니다.


 

엘에이 지부를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건 오스 기니스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해외 사역을 놓지 않겠다면 엘에이를 포기하지 말라.


 

오하우에 살던 응구, 향숙 부부로부터 캘리포니아로 이사 간다는 말을 들었던 건 하와이 역사상 엄청나게 폭우가 쏟아지던 밤이었지요. 엘에이 가서도 낮은울타리 사역 계속할 테니 기도해 주세요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수년의 세월이 흘러 아득한 기억으로 사라져 갈 즈음 향숙과 관계된 목사 한 분이 비행기 표를 보내준 게 계기가 되어 실로 오래간만에 엘에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실수인지 방문 목적에 혼란이 와 방문 기간 내내 힘들었지만, 주님은 그런 실수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시차 적응이 안 돼 혼란스런 상태로 녹음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이대연이라는 분이 접속 되어 엘에이에 자녀 교육을 놓고 애타게 기도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만나볼 테냐 해서 그곳을 떠나기 하루 전 날 베리타스라는 기독 학교 부모들을 만나게 되었고, 아니 어디 숨어있다 이제 나타난 거요, 경성대 강의를 마치고 한 달 후에 올 테니 그 때 봅시다.


 

화요일 아침이었죠. 꼭 한 달 만에 다시 태평양을 건너가 아침 여덟시 반 LAX 도착, 마중 나와서는 안 될(?) 시영의 차를 타고 엘렌 집에 닿자마자 숙소 와 붙어 있는 발레 교실에서 복음 공부를 시작, 그날 오후 내내, 그리고 다음 날 오전과 오후, 그 다음 날 오전과 저녁, 다음다음 날 오전 오후, 다음다음 다음 날 오전 오후 저녁, 다음다음다음 다음 날 시영의 집으로 옮겨 오렌지카운티 팀 오전과 오후 그 다음 날 오전과 오후와 밤, 다시 엘렌 집으로 이동… 이런 식으로 아흐레 동안 복음을 기본으로 회복 사역, 문화 사역 브리핑을 끝냈을 때 아, 어떻게 이런 일이… 해외에서는 처음 다가오는 감동. 그렇게 오랫동안 이민 사회를 도우려고 애를 썼는데 마이동풍馬耳東風에 우이독경牛耳讀經에 화를 삭이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사람들을 만나다니. 열흘 가까이 힘을 다해 수고한 후 고개를 들고 보니 빈센트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을까요. 아니 별빛이 있는 카페가 더 나을 것 같군요. 함께한 그들 얼굴에서 보이던 확신과 결의에 찬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 이들은 많았지만 이번 같은 사례는 없었습니다. 복음에 반응하는 모습이 이렇게 뜨거운 적도 없었고 낮은울타리 회복 사역이 그 간의 내적 치유나 상담과 무엇이 다른지 분명히 이해하는 사례는 없었습니다. 문화에 대한 부분은 어떻구요. 하루 시간을 내어 자녀들 위한 강의를 해 주었는데 그 좁은 방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와서 진지하게 강의를 듣는지 평소 그들의 관심 정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민 사회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던 건 정말 많은 가정이 이민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 피폐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 언어가 안 통하는 문제는 기본이고 세계관의 차이, 마약 중독과 같은 극단적 선택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자녀 앞에 오열하는 부모를 볼 때마다 어떻게든 돕고 싶었지만 저들이 나서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발길을 돌린 적이 참 많았는데 드디어 함께 독립운동할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정도 글 밖에 안 나오는 게 한심할 정도지요.


 

낮은울타리 사역의 시작은 문화 영역이었습니다.


 

왓처Watcher가 다 그렇듯이 무조건 수용하지 말라 경고하는 일은 극단주의자로 오해받기 쉽다는 걸 경험할 만큼 경험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동안 얼마나 주님이 낮은울타리 사역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셨는지 아는 사람은 나보다 더 놀라는 걸 봅니다. 감사하지요.


 

이번 엘에이에서 만난 지체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낮은울타리의 모든 것을 가져다 사랑하는 자녀를 건강하게 키울 준비가 끝난 것 같았습니다. 이제 당장 다음주부터 흠스 리더 훈련에 들어갑니다. 계속해서 지저스 파워 아카데미나 틴즈·키즈 흠스, 큐 밀리터리나 직업 찾기 캠프 등 부산 지부가 오년에 걸쳐 경험한 것을 내년 한해에 경험하겠다고 각오를 다집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완벽하고 다음 세대에 관심 있는 청년 간사 한 사람만 뽑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 사역 전반이나 엄청난 영상 활자 콘텐츠가 영어로만 번역되면 중국어 스페인어 스와힐리어로 옮겨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야말로 글로벌한 사역이 여기서 시작이 되는 셈이지요. 사랑을 넘치도록 받은 볼티모어에서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새로 부임한 이상한 담임 목사가 비토하는 바람에 엘에이로 빼앗긴 것 같습니다.


 

엘에이가 가진 영향력은 오렌지를 비롯한 식량 뿐 아니라 산호세 중심의 실리콘 밸리, 할리우드를 통해 만들어지는 문화의 힘에 있습니다. 그러니 사단이 총력을 기울여 이곳을 사수하려 드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부산 지부에서 오스 기니스의 책을 함께 읽으며 엘에이를 향한 사단의 전략을 꿰뚫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지 싶습니다. 세상에, 아이나 키우는 부모들이 이 어려운 책을 술술 읽고 내용을 이해한다니 믿어지시겠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속히 문화를 통한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자식들과 이 책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수진, 성은, 계원, 선애, 누리, 조엔, 데보라, 은회, 대연, 엘렌, 루스, 그리고 저스틴.


 

저스틴은 엘렌의 남편으로 스페이스 엑스에서 우주선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형제입니다. 엘렌은 신학을 전공하고 인도에까지 선교를 다녀 온 후 부전공인 발레를 살려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이미 오래 전에 울타리 문화 아카데미를 수료했다는 것입니다.


 

저스틴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창업자 일런 머스크의 사인이 들어간 액자를 보고 호기심이 일었는데 시애틀 보잉 본사에 근무하다가 스페이스 엑스로 옮긴 최초 멤버라 그런 선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열세 살에 부모 따라 이민 와 쉽지 않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후 미국 최고의 회사에서 대우 받으며 산다는 건 어느 정도 장래가 보장되었다는 뜻 아닌가요. 대개 그런 사람들은 백인 사는 동네에 숨어 한국 사람과 접촉도 하지 않으려 드는데 엘렌과 저스틴 부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집을 오픈하고 거의 매일 사람들이 바글거리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겪어 봐서 알지만 끼리 문화와 또래 문화가 정으로 엮인 한국에서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며 기꺼이 지부장을 맡아준 누리. 처음 이 모임의 중개자 역할을 한 후 오고 가는 거리가 장난이 아닌데도 간사로 자원해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대연. 통역을 멋지게 한 민정과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데도 끝까지 참석한 루스와 서원, 선애.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목사와 연결해 모델 교회의 희망을 갖게 만든 데보라. 루스보다 한국어 청취가 더 어려운데도 마지막 강의까지 귀를 쫑긋하니 수강한 조엔. 엘렌보다 더 적극적으로 집을 오픈해 자칫 소외감을 가질 뻔한 오씨(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준말)팀 멤버들에게 새해 선물을 안겨 주었던 시영, 딸 문제로 가슴 아파하면서도 시종 웃는 얼굴로 나타나 가슴을 뭉클하게 할 뿐 아니라 하우스라는 식당을 찾아내 그 비싸고 맛있는 파스타를 먹게 해 준 은애. 사모이면서 사모가 아닌 자매라 불러 달라는 헬렌 황, 머리가 명석해 조금만 도와주면 나보다 더 잘 가르칠 기원, 저스틴 형제와 두 톱이 되어 엘에이 사역을 일으킬 게 확실한 시몬 형제를 비롯,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낮은울타리 사역에 관심과 호의를 보여주던 마이크와 샘, 필립 같은 형제들의 얼굴이 인천으로 돌아오는 018편 비행기에서 글을 쓰는 지금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갑니다. 저스틴은 마지막 공항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갔습니다.


 

그와 헤어져 가방을 밀며 터미널로 들어서는데 그의 하얀 색 테슬라를 찍어둘 걸 하고 생각했습니다. 부산의 은혜나 뉴저지의 희창처럼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편이라 최신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도 사진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데 오늘은 후회가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타 보는 테슬라 안에서 잘생긴 그와 사진이나 찍어둘 걸,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의 특징이 그의 얼굴에 묻어 있어서 한국 토박이인 나와 처음엔 서먹했지만 결코 돌아서지 않을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촛불로 들어선 대한민국 정부가 최저 임금을 대폭 올려 내년 이후의 사역이 불투명하지만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는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는 건 아름다운 추억 때문입니다. 추억이 밥이 되진 않습니다. 추억은 추억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신 추억은 그냥 추억이 아닙니다. 오스 기니스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라고 명명한 엘에이에서 이렇게 감동적인 모습으로 동역자를 붙여주신 건 아무에게나 허락된 은혜가 아니지 싶습니다. 저스틴은 이번 복음 공부가 자신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고백했죠. 그동안 안 만나본 사람이 없고 그동안 안 해 본 공부가 없지만 이번처럼 뚜렷하게 자신을 안내해 준 복음 공부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와 함께 멋진 차에 앉아 오리지널 미국인처럼 사는 그의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추억이란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이것은 곧 추억이 될 거야. 헤어져 먼 길을 간다 해도 추억에 담아둘 수 있다면 떨어져 있는 건 하나도 슬프지 않을 거야. 나쁜 추억도 있지만 좋은 추억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을 아름답게 하는지.


 

로맹 가리였던가 ‘자기 앞의 생’을 써서 슬픈 내 청년기를 설레게 했던… 그때 그 책을 전해 준 소녀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잠시 쉬는 시간에 엘렌의 발레 교실에서 나와 빛깔 선명한 인조 잔디 앞 아기 얼굴처럼 앙증맞은 정원에 서면 코를 통해 신체 내부로 들어와 영혼까지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너무도 상쾌해서 새로 태어나는 심장이며 폐며 근육이며 백혈구까지… 성실하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리비추던 캘리포니아의 화려한 햇빛. 눈부시게 파래서 장엄하기조차 한 하늘과 결코 사치하지 않은 새털구름과 하와이에서부터 친근해진 야자나무들. 서울 내가 사는 동네는 미세 먼지로 오염되었고 내가 만나야 할 아이들은 안개 속에 길을 잃기 일쑤지만 오늘 저 바람과 구름과 태양은 오래 된 약속 하나를 추억이란 이름으로 불러내고 있네요. 추억은 영원성을 보장 받을 때 아름답게 빛나는 법.


 

그러나 복음이 없으면 영원이 무슨 의미가 있답니까. 아, 복음이라니. 영원의 이름조차 생소해서 부끄러움에 젖어 있는 나에게 복음이 들어오고 그 복음이 정리되어 나의 변변찮은 언어로 꽃들과 바람과 구름과 넓은 바다를 넘어 처음 만난 이들에게 생명처럼 흘러가다니.


 

이번 엘에이 여행이 아름다웠던 건 내 안에 복음이 정리되고 정리된 복음이 흘러가자 어떤 한 무리의 사람과 추억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생수가 되어 영원이란 액자 속에서 빛을 내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습니다.


 

내게 정리된 복음이 얼마나 강력한 파워를 내는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없다면 회복 사역도 문화 사역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개념화되지 않은 복음은 복음이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은 개념이 아닙니다. 왜 자녀 양육에 실패하냐면 복음이 개념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개념화되지 않자 설명이 불가능해지고 설명이 불가능하자 상처 문제, 욕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한증막의 열기처럼 다가오는 세상 정신에 빠져 소명을 놓치거나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자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부모들. 그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알았다는 것만으로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습니다. 시차와 피곤으로 몸의 생기를 앗아가는 여행에 대한 공포감도 이런 추억만 있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지금 나는 충분히 경험합니다.


 

하긴 인천에서 엘에이를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닙니다.


 

최신 비행기로도 열 시간 넘도록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인천에서 갈 때는 제트 기류를 타 열 시간이 안 되지만 올 때는 맞바람 영향으로 열세 시 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비행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하지 정맥류라는 병을 얻을 정도로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어쩌다 비즈니스로 승격되면 훨씬 편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의자에 묶여 있는 강아지처럼 눈만 굴리고 있어야 합니다. 간호사인 누리 자매가 시차 적응에 효과적이라며 아마존에서 산 약을 쥐어 주었지만 그리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이젠 약으로 해결하기 힘들만큼 나이가 먹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선배가 몇 살 때 돌아가셨던가요. 아, 그렇다고 감히 바울 사도의 반열에 들어볼까 은근 주접을 떠는 건 결코 아닙니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나이 먹어 체력이 딸리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운동하면 나아진다지만 공해로 유명한 남부순환도로 일대에선 숨이 차도록 뛰는 게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캘리포니아 지체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아예 미국으로 이민 올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영원을 그리워하는 자가 공기 때문에 사역지를 옮기는 게 어디 말이나 되나요. 그나저나 이번에 들은 얘긴데 저스틴 회사가 개발하는 스페이스 엑스가 대중화되면 인천에서 엘에이까지 삼십 분밖에 안 걸린다니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려나 볼까.


 

나이가 들어가는 데다 비행기 타는 게 너무 힘들어 어디든 안 가고 싶지만 이번처럼 추억이 별이 되고 별이 추억이 된다면 비행기 아니라 구름을 타고라도 날아가야지 싶습니다. 스타리 스타리 나잇. 빈센트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돈 맥클린이라는 가수가 1971년에 고흐에 관한 책을 읽고 그해 6월에 발표해서 다음해 영국 싱글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12위에 올랐던 노래입니다.


 

작년에 상영해 40만을 동원했던 러빙 빈센트라는 그의 영화를 보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이렇게 사람을 스포일 시키는구나. 선교사로 실패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뒤돌아보던 고흐 아버지의 차가운 얼굴. 그도 목사였다던데 왜 그랬을까요. 왜 고흐의 엄마는 차남인 고흐의 손을 뿌리치고 먼저 간 큰아들 무덤 앞에서 울기만 했을까요.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는 일찌감치 세상을 등졌을 겁니다. 고갱과 멋지게 살아 보고자 떠났던 프랑스 아를에서 고갱과도 헤어져 테오가 보내오는 피 같은 돈으로 최저 생활을 살며 깊은 고독 속에 그림을 그렸던 고흐의 그림이 지금은 수십억 원에 팔리고 고흐의 전시회에 엄청난 사람이 몰려드는 걸 보면서 고흐, 아니 빈센트 당신이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사실은 나도 화가가 되고 싶어 한때는 매일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나의 꿈은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며 사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는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걸 보면 고흐가 왜 선교사의 삶에 실패하고 자살을 택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나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음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 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 되는 것이 아닐까”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안에는 하나님 인식이 없거나 모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흐는 목사 고시에 떨어지고 선교사로서의 삶에도 실패한 후 그림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그렇게 몸부림을 치다가 비극적인 모습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가 그린 그림들은 오늘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나도 고흐만큼 그림을 사랑합니다. 유화를 그릴 때마다 특유의 물감 냄새가 좋아 미칠 지경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속에 정리된 복음 전하는 일과 건강한 아이들 양육하는 일 때문에 그림 그리며 사는 걸 포기했습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그림 그릴 때면 그렇게 행복해지거든요.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바닷가는 물론 지나가다 멋진 나무만 봐도 내 머릿속에선 슥슥슥슥 그림이 그려질 정도이니 짐작이 가겠지요. 그렇게 큰 재능을 주셨지만 복음 사역이나 회복 사역이라는 은사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과감히 내려놨던 겁니다. 그래도 오늘은 유난히 징크 화이트나 크롬 옐로우 아이보리 블랙이나 프러시안 블루 같은 물감 냄새가 그립습니다.


 

- 월간 낮은울타리 2019년 3월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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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5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