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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은이네 망고나무

작성자
peter
작성일
2017-12-01 12:11
조회
936

이번 시드니 방문은 예전과 다른 무엇이 있었습니다.

우선 자녀양육 세미나에 참가한 사람들의 반응이 진지해 보였고 아침 저녁으로 계속 참석하는 사람들 숫자가 줄지 않는 것도 그랬습니다. 여러 번 겪어본 시드니 상태로는 드문 현상입니다. 흔히 말하는 ‘때가 찬’ 걸까요?

하긴 시드니 오기 전 양재동 어느 선교원에서는 물론 멀리 중국 사천성의 성도 한인교회에서 초청강의를 할 때도 엄청 뜨거운 반응이 일어나 두 번 혹은 단 한 번에 지부 성격의 모임이 결정된 것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전에는 다음세대 사역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호소를 해도 시큰둥한 반응이더니 이젠 어딜 가나 내가 제시하는 복음 회복 문화라는 전략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쉽게 마음을 엽니다.

얼마 전만 해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억누르기라도 하듯 냉랭해 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젠 강의 듣는 눈빛도 다르고 강의 후 반응도 달라졌습니다.

때가 되자 주님께서 낮은울타리 사역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시더니 함께 갈 사람들을 이곳저곳에서 붙여주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눈이 쏟아지던 날 시드니는 완전한 여름 날씨를 보였었죠

비행기로 아홉 시간 반을 날아오자마자 그 날 밤 시드니 순복음 철야기도 설교를 마치고 두세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JFC 새벽설교, 다음 날 청년사역으로 유명한 주안교회 두 번의 강의 때에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무엇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이번 방문의 주목적인 학부모 교사 세미나가 목요일 아침부터 시작이 되었죠.

스트라스필드에 있는 연합교회를 빌려 첫날 세미나를 마치고 지부장 맡고 있는 이수경 자매와 아보츠포드에 있는 로잉 클럽으로 점심 먹으러 가던 중 콩코드에 있는 옛날 규은이네 집을 둘러보자고 한 건 나였습니다.

추억을 더듬어보고 싶었죠

시드니 순복음교회에서 삼일 간의 집회 후 규은이네 집에서 모임이 시작된 건 벌써 이십년이 넘은 이야기입니다. 그 땐 규은이는 물론 규현이 규원이 모두 태어나기 전이었죠

규은 아버지가 손을 드는 바람에 큐오스CUEAUS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규은이네 집에서 문화공부를 하러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새파란 청년들이 찾아와 문화 리더십 공부를 하며 밥도 해 먹고 피자도 시켜 먹고 하며 새로운 사역에의 꿈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석달에 한 번 꼴로 날아와 그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전수해 주었죠

서울도 아니고 시드니에서 시작된 문화연구 모임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곤 아무도 예측 못했습니다. 규은이 엄마 아빠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 해도 한 번 모임에 집 전체가 엉망이 되기 마련인 오픈 하우스를 기꺼이 자청하고 서울에서 온 나그네 위해 신혼부부 옆방을 그렇게 쉽게 내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늦깎이 결혼임에도 그 많은 후배 청년을 섬기기 위해 그렇게 많은 밥을 해대는 신혼주부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것도 시드니라는 이국적인 도시에서

그러다가 첫째인 규은이가 태어났습니다.

나는 시드니 와서 오상원 조은실 홈에 묵을 때마다 규은이를 업어주곤 했죠

어느 날 아침을 먹고 이층 방에 앉아있는데 규은이 엄마가 청과시장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망고나무 묘목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넓지 않은 마당 한 켠에 망고나무를 심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온 것입니다.

그 말에 나는 얼른 방에서 나왔죠. 넓은 마당은 아니었지만 환상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손으로 망고나무를 심는다?

그렇게 해서 규은이를 등에 업은 규은이 엄마와 청과시장에 가 어린 묘목 하나를 사다 땅을 파고 심었다는 이야기.

손가락 굵기만큼 가늘고 무릎 정도 밖에 오지 않는 어린 묘목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여기서 망고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을 거에요”

규은이 엄마는 열심히 땅을 파는 내 등 뒤에서 의미심장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럴 것 같지 않아 웃음만 나왔습니다. 저렇게 작고 가는 나무가 언제 자라 열매를 맞을꼬. 한국도 아니고 이 먼 데까지 와 잘 익은 망고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낮은울타리에 위기가 찾아오고 재정문제로 밑바닥까지 내려가 시드니 따위는 까맣게 잊고 살던 시절. 망고나무는 내 기억에서 아득히 멀어져 갔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정말?

그래요. 그 날 눈물로 심은 망고나무는 아니지만 얼마 후 눈물을 흘리며 조국을 떠난 건 사실입니다. 재정문제로 발목이 잡혀 그 소중한 사역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패잔병처럼, 낙오자처럼 울면서 조국을 떠나는 내게 망고나무와 함께 시드니 사역도 막을 내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수년의 세월이 흘러 낮은울타리 사역의 포맷과 내용이 회복사역 중심으로 완전히 바뀐 후 점차 안정이 되어갈 무렵 규은이 아버지와 다시 연결이 되어 오랜만에 시드니를 방문하게 되었고 주님한테 새로 받은 사역을 알리려 동분서주하다가 실망도 하고 절망도 느낄 무렵 어린이 사역 하는 이정환 선교사와 공동주최로 부모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보였습니다. 윈야드의 항구를 떠가는 작은 요트 같다고나 할까요. 시드니 기차는 서울과 달리 이층으로 되어 있는 데다 지상을 달려 낭만이 있었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 밑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도시는 온통 보라색 꽃으로 덮이고 밤에도 자스민 향기가 장난이 아니었죠

첫날 세미나 마치고 점심 뭐 먹을래요? 묻는 수경 자매에게 아보츠포드의 로잉클럽을 가고 싶다고 말했죠. 아마 처음 현정이 데려가 준 곳이었을 겁니다.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휘시 앤 칩스를 먹는 기분은 낙성대 국밥집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옛날 규은이 집에 들러볼까요?

수경 자매가 물었죠

정말, 그럴 수 있어요?

아아,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가는 길이에요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그 때 보았던 집 분위기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스트라스필드에서 아보츠포드로 넘어가노라면 콩코드 로드와 만나고 이층으로 된 낡은 카이로프라틱 건물을 돌면 그 아련한 러드게이트 길이 있었습니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15 러드게이트 콩코드

시드니 올 때마다 입국서류에 적어 넣었던 규은이네 집 주소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팔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지만 반투명의 무늬유리로 된 현관 문 열면 청년들과 밥을 해 먹던 부엌이 보이고 왼 쪽에는 예의 보라색 소파가 얌전히 놓여있을 것입니다.

저 마당에서 규은이 규현이 규원이와 칼싸움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그랬지

이층집 내가 자던 방에 엷은 미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아아 그래요. 규은이네 빼고 시드니의 추억을 말할 순 없습니다.

팔 다리 각질세포는 날마다 죽어나가도 마음 속 기억만은 그대로 있어,

더 놀라운 건 옛날 규은이네 집 마당에서 자라고 있던 망고나무를 보는 때였습니다.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평생 수많은 나무를 봐 왔지만 이번엔 특별했습니다.

세상에 가늘고 여리여리한 묘목이 자라 저렇게 큰 나무를 이루다니

내가 없는 사이에도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엄청난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두근거리기까지 하는 심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내려 드릴까요?

수경자매가 웃으며 물었죠

잠깐요. 여기서 사진 마음껏 찍고 나가 볼게요

차 안에서 나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누가 살고 있을까?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문 곁에 하얀색 도요타 승용차가 서 있고 집 안은 조용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마당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 볼까도 했지만 여긴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외국이지 하면서 멀찍이 선 채 내 머리보다 높이 키가 자란 망고나무를 비밀스럽게 바라다 보았습니다. 감격을 색깔로 표시하면 어떤 크레파스를 쓸 수 있을지

어느 날 천국에 들어갔을 때 내가 심은 영적 나무들이 저렇게 자라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주의 생명을 전하고 생명력을 흘려보내기 위해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떠돌이 생활을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싸인 같아 눈물이 다 났습니다.

아 규은이네 망고나무

아 내 인생의 느티나무

아 주님이라는 포도나무

때로 나는 이 길이 힘들어 후회하기도 했었죠

아무리 외쳐도 반응 없는 사람의 얼굴 앞에서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 망고나무를 만나다니

갈망하되 절망하지 말 것

망고나무는 혼자만의 시간을 들킨 것처럼 수줍게 서서 작은 소리로 속삭여 주었습니다.

눈물로 씨를 심더라도 나무는 절대 잊어버리지 말 것

타라무라에서 떠난 기차가 월스턴크라프트를 지나고 있네요. 망고나무처럼 노란색의 시드니 기차는 덩치도 큰데다가 창으로 푸른 하늘과 싱싱한 나무들을 마음껏 볼 수 있어 낭만적인 데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손가락만한 묘목이 저렇게 큰 나무로 자라다니. 자라서 주먹만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서있다니. 서서 자기를 심어준 사람을 수줍게 바라보고 있다니. 얌마 넌 인사할 줄도 모르니. 나는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죠. 그러고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혹 절망이 몰려올 때 규은이네 망고나무를 생각할 것

누군가 비난의 화살을 쏠 때 규은이네 망고나무를 생각할 것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외로운 시간에도 규은이네 망고나무를 생각할 것

혹 혼자서 이 세상의 마지막을 맞이하더라도 규은이네 망고나무를 생각할 것

울며 씨를 뿌려야 할 때도 규은이네 망고나무를 생각할 것

주님 인식이 안 될 때면 콩코드 러드게이트 스트릿에 있는 규은이네 망고나무를 누가 키우는지 생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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