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까닭>

겸손한 마음으로 주를 청할 때 그 분의 계신 그곳,
하나님의 법과 언약이 있는 곳,
지성소로 나아가네.

주의 손의 은혜가 하늘의 별사탕처럼 부어지는 곳.

그곳에서 나는 주님과 친밀히 입술로 대면하네.
고집 세고, 우두커니 있었고, 어딘가에서 거절당해
자유를 꿈꾸던 나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가듯,
지성소를 찾고.

성령의 지우신 짐으로 당당히 말해보네.
“이곳이 내 쉼터라고”

그 때
나는 살아나고, 회복되네

 

 

지성소 예배 연재 글을 통해 지성소와 조금 더 가까워 지셨나요? 지식으로서만 아니라, 그 생명을 누림을 도입의 시를 통해 소개해드렸습니다. <하늘의 별사탕>이 있는 지성소. 그곳이 마른 봄의 땅에 촉촉히 내리는 비처럼 여러분의 모든 것에 빛을 비출 것입니다. 그 지성소의 빛을 <연합>이라는 주제로 함께 읽어봅시다.

 

 

Ⅱ. 연합의 실제

 

1. 성막. 임재의 표시

성막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성막문을 지나면 뜰이 나오는데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고 다음에 성소가 나오는데 성소에는 떡상과 등잔대와 분향단이 있고 성소와 지성소를 휘장이 막고 있고 휘장을 지나면 지성소가 나옵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법궤)가 있습니다.

예배는 실제로 내가 지금 성막문을 들어서서 번제단을 지나서 물두멍을 지나서 성소에 들어가서 주님과 연합이 된 다음에 그분의 품에 안겨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스러운 시간입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성막은 임재의 표시입니다. 임재란 ‘이름을 두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임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신명기 14:23 상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열왕기상 9:3 하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 1:9 하

 

주님은 또한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0:21

 

예레미야 30장 21절에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부분의 원어의 뜻을 살펴보면 “감히 내게 나아와 자기 모든 감정과 마음으로 나와 친교를 나눌 자 누구냐?”(흠정역 원어의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배를 통해 무엇을 바치는 것을 원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와 깊은 친밀감intimacy, 하나 됨을 주님이 먼저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난다는 것은 “내가 너와 감정을 나누는 친교를 가지리라”(흠정역 원어의 뜻)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예배 때 우리의 감정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감정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마음이 지성소가 되면 마음과 감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과 감정이 상해 있거나 더러워져 있거나 악해져 있으면 그것을 주님께 전달합니다. 이것을 다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다룬다는 것은 자기 문제를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환자와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루려고 합니다. 자기 입으로 증상을 상세히 이야기하면 의사는 즉각 처방을 합니다. 지성소는 그런 곳입니다.

나눔은 사람 간의 친밀감을 느끼게 하지만 다룸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느끼게 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환자끼리의 나눔은 서로를 공감하고 위로하며 약간의 도움은 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가 기대할 분은 한 분 병원의 원장이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지성소에 계십니다.

성도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예배를 통해 언제든지 하루에 몇 번이든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병원의 원장님은 조건이 딱 하나입니다. ‘나를 만나려면 나를 찾아와야 한다. 언제든 와도 좋다. 그러나 네가 직접 와야 한다.’ 주님을 찾아가는 그 자체가 믿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그분을 찾기 위해서는 성막까지 가야 했습니다.

성막의 맨 앞에는 성막을 관리하는 레위 족속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성막을 거둬서 따라가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이 일만 했습니다. 다른 일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 사람들이 십일조로 레위인들을 먹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서 죄를 용서받고 싶다면 가축을 끌고 가야 합니다. 광야 저 끝에서 성막문 앞까지 끌고 가는 것입니다. 천막의 맨 끝에 있는 사람은 성막에 가서 제사를 드리려면 가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더구나 자기가 키우던 가축을 제물로 끌고 가야 했습니다. 천막을 유지하면서 가축을 키우던 그들에게 가축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의 제사는 생계를 걸고 목숨을 걸고 드리는 것이었습니다(레위기 1장).
그런데 성막문 앞에서 레위인이 서 있다가 제물에 흠이 있나 없나 검사를 합니다. 흠이 있다면 제사는 고사하고 다시 집으로 끌고 가야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예배는 성도에게 특혜 중의 특혜입니다. 광야에 있을 때 성막은 하나님의 설계도로 인간이 만든 것으로 장소적 개념이 분명했지만, 신약시대에는 그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히브리서 8:10 중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브리서 9:24

 

히브리서에 있는 이 성소는 구약시대에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성령이 오신 후에는 성막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지성소예배는 하나님과의 대면입니다. 말씀과 말씀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오늘의 소개가 그 만남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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